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 어느 날 갑자기 가십의 주인공이 돼 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
세라 자르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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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디에나 램버트는 홀든 콜필드의 아픔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다.
샐린저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퇴학 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3일간의 홀든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소녀가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디에나의 고백을 듣기 전까지 우리는 아예 소녀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손가락질부터 먼저 할지 모른다. 그래서 제목이 '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라는 건 매우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제이슨은 침대 안에 있었다. 나는 바닥에 앉았다. 아빠가 우리를 감시카메라로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가 같이 뒹군다거나 코카인을 흡입한다거나 서로의 젖가슴에 피어싱을 뚫는다거나, 그밖에 내가 자투리 시간에 하고 있을 거라고 아빠가 상상하는 수많은 일들 대신, 순진하게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 아빠가 얼마나 놀랄까. (83쪽)

진심으로 좋아했던 오빠 친구 토미가 그녀를 심심풀이 헤픈 소녀로 만들어 버린 뒤로 모두들 손가락질 하는데... 그녀를 이해해 주는 친구는 어릴적부터 알고 지냈던 다정한 제이슨 뿐이고, 제이슨과 함께 있으면 그저 마음이 편하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제이슨처럼 매너있는 남자 친구를 원할 것이다.

이게 내 삶이야. 바로 이게. 내가 서른다섯 살이 되었을 때, 편의점에서 탐폰과 식빵을 집어 들고 소품목 전용계산대에 줄을 섰다가 졸린과 마주치면, 졸린은 그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할 것이다.
"가게에서 디에나 램버트를 봤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알던 앤데, 아주 헤픈 애였거든요. 겨우 열세 살 때 중학생들 전체와 잤다지 뭐예요."
내게 친구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대런 오빠와 스테이시 언니가 과연 나와 함께 살게 될지 모르겠다. 아빠가 그날 몬타라에서 잇었던 일을 생각하지 않고도 나를 볼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120~121쪽)

시니컬, 시니컬~ 성인이 되자마자 애 아빠가 된 오빠 대런의 독립을 도와 지긋지긋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지도 않는 집을 벗어나는 게 꿈인 디에나. 그녀는 주변을 둘러 보면 모두들 자기를 향해 온통 손가락질을 해대고 너무도 슬프다.

"좋은 질문이야. 나는······ 어디 보자······ 마흔 여섯이거든. 내 장담하건대,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만큼 얼빠진 짓을 많이 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리고 아직도 난 그 게임 속에 있으니까."
나는 마이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이클은 그저 가게를 운영하는 마음씨 좋은 중년 남자일 뿐이었다. 그는 잘 살아가고 있었다. (199쪽)


모든 것이 너무너무 힘든 디에나는 일하는 피자집에서 상처를 준 토미를 만나 괴롭지만 지긋지긋한 삶을 바꿔 보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을 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피자집 사장 마이클을 진작에 만났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10대를 보내지 않고 있을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빠를 잘 보란 거야. 아빠는 너나 나나 스테이시나 페이퍼 회사나 다 용서하지 못해. 진심으로는 못하지. 아빠 자신마저 용서 못할지도 몰라. 아빠는 그 중 어떤 것에서도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진정한 삶을 누릴 수도 없오. 아빠는 심장발작을 일으킬 듯한 모습이 아니고서는 우리 모두와 식탁에 앉아 있을 수 없어." (239쪽)

분명히 우리와 정서가 다른 면이 없지는 않지만 10대들을 이해 하는데, 이처럼 멋진 소설이 있을까?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녀의 이야기... 10대 미혼모를 다룬 영화 '주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게이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그저 마이클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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