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저녁, 앙젤리크는 때때로 즐겼듯이, 자신의 손에 키스를 하던 중에 분명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너무도 부끄러워 당황하여 돌아섰다. 그리고 아그네스가 그녀의 몸짓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그네스는 그녀의 육체를 수호하는 성인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앙젤리크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어 있었다.-51쪽

"행복은 너무도 단순해요. 우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행복해요. 왜냐고요?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게 다예요! 어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기다리는 사람이 찾아오는 날, 어머니는 아시게 될 거예요. 우린 곧 서로 알아보게 될 거예요. 한 번도 그를 본 적은 없지만 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요. 그는 그러면서 대답할 거예요. 그러면 다 끝나는 거예요. 영원히. 우리는 어떤 궁전에 가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침대에서 잠을 자겠죠. 오! 너무도 간단해요!"
"넌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그만해!" 위베르틴이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꼬리를 잘랐다. -78쪽

꿈속에서 그녀는 그가 그녀의 침실 커튼의 희끄무레한 히드 덤불 사이로 소리없이 들어오는 것을 분명 보았다. 그녀의 뇌리는 꿈속에서든 깨어 있을 때든 온통 그로 가득했다. 그는 그녀의 그림자 곁에 늘 함께 있는 정다운 그림자였다. 그녀는 비록 혼자였지만 꿈속에서는 두 그림자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만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위베르틴에게 모든 것을 말해 왔다. 그러나 그것만큼은 위베르틴에게조차 비밀이었다. -105쪽

"어머니, 잠시만, 잠시만요!······ 수건들 위로 이 커다란 돌을 얹어야겠어요. 이 도둑질 잘하는 개울물이 옷을 갖고 달아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109쪽

모녀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알아보고 칭송했다. 검소한 면직으로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어머니, 흰색의 얇은 원피스를 입고 대천사의 우아함을 풍기는 딸. 그녀들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그렇게 의자 위에 올라서 있던터라 너무도 눈에 띈 나머지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그럼요, 부인, 그럼요. 저 청년은 주교님의 아들이에요! 그걸 모르셨수?······ 참 잘생겼어. 게다가 부자이기까지 하고. 아! 원한다면 도시를 통째로 살 수 있을만큼 부자지. 백만장자야. 백만장자!"-196쪽

"아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결혼 계획이 서 있었던 거지. 모든 게 결정되었던 것 같아. 코르니유 신부님이 오는 가을에 그가 부앵쿠르 가문의 클레르 아가씨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고 확언을 해 주시더구나······. 부앵쿠르 저택 알지? 저기, 주교 관저 옆에. 그 집안은 주교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란다. 쌍방 모두 가문으로나 재산으로나 그보다 더 좋은 걸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이 결혼에 대해 신부님의 칭송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217쪽

그는 울었다. 그리고 울면서 외쳤다.
"아! 당신은 지금 저기 위층에 있는 우리 아이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는 거요······. 당신은 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처럼 펠리시앵이 우리 아이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아. 당신은 그 아이가 당신처럼 겪기를 원치 않고 있어."-263쪽

이제 영혼 속으로 악이 침투해 오는 다섯 창문인 감각에 기름을 바를 시간이었다. 엄지손가락에 성유를 적시고 그 감각이 살고 있는 그녀의 육체 다섯 부분에 기름을 바르기 시작했을 때, 그의 손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맨 먼저 눈에, 감은 눈꺼풀 위에, 오른쪽 왼쪽 차례로, 주교는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십자가를 그으며 라틴어로 기도문을 외었다.
"네가 네 눈으로 저지른 죄가 무엇이든 이 성유와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주 하느님께서 네 죄를 사해 주시기를."
음탕한 시선, 불명예스러운 호기심, 광경의 허영, 사악한 독서, 수치스러운 근심을 위해 흘린 눈물, 그러한 시각의 죄악이 속죄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황금빛 전설' 외에 다른 책을 읽은 것이 없었고, 상당 건물의 후진이 그녀에게 다른 세상을 향한 시선을 차단해 버렸으므로 시야를 뻗을 다른 지평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직 열정에 대항하는 복종의 투쟁 속에서만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296~297쪽

양쪽으로 늘어선 신도들의 울타리 사이로 앙젤리크와 펠리시앵은 성당 문을 향해 느리게 행진했다. 승리를 거둔 지금 그녀는 꿈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들어가기 위해 저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알지 못하던 세계를 향해 눈부신 빛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녀는 걸음을 늦추며 활기찬 집들과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술렁이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너무도 허약해졌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거의 안아 들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보석과 여왕의 옷이 가득한 그 왕자의 저택을, 신혼의 방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그 저택을 상상했다. 그녀는 숨이 차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차렸다. 그녀의 시선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 머물렀다. 그녀는 그 영원한 결합이 행복했다. 대성당 문의 문턱, 광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꼭대기에서 그녀는 비틀거렸다. 행복의 끝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존재의 기쁨이 마감하는 곳이 거기였던가?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켜 펠리시앵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 그 입맞춤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318~31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