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스바루 - 뉴욕 촌놈의 좌충우돌 에코 농장 프로젝트
덕 파인 지음, 김선형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어이 없게도 부시와 MB까지도 바이오 연료, 저탄소 녹색 성장을 부르짖는 세상...
환경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의 단어들마저도 오염될대로 오염 되어버린 21세기...
오염된 언어가 아닌 진짜 몸으로 실천하겠다는 친환경-저탄소-녹색-싱글남이 있었으니, 바로 덕 파인~!!

책의 제목처럼 그가 굿바이(farewell) 하고자 하는 스바루(My Subaru)는 무엇이란 말인가?
스바루~ 한글로 쓰면 얼핏 욕설 같기도 하고 ㅡㅡ;; 
그것은 미국에서는 매우 대중화된 4륜구동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의 이름이라고 한다.
도요타 보다 약간 저렴한 휘발유 팍팍 소비하는 바로 그런 자동차...
십년 넘는 기자 생활을 함께한 분신과도 같았을 자동차와 결별선언 한다는 것, 대단하지 않은가?



스스로 작명한 뉴멕시코의 '펑키 뷰트 목장'에서 문명의 이기를 벗어날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급자족과 탈도시의 꿈을 실천해 보기로 결심한 황야의 친환경-저탄소-녹색-싱글남의 삶... 목장에 둥지를 튼 부엉이 커플의 활발한 성생활을 거론하던 본문 첫 페이지에서부터 나는 이 스테미너 넘치는 싱글남의 성욕이 오지에서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독서는 그렇게 나의 속물적인 관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Never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태양열이 풍부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뉴멕시코...
월마트의 지배에서 벗어나 단계적으로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풍부한 영양의 염소였다. 정착하자마자 투산에서 염소 자매를 구입하여 돌아오던 친환경-저탄소-녹색-싱글남은 갑작스러운 큰 비로 물이 불어난 밈브레스 강을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건넌다. 염소 자매와 함께...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본 게 전부인 염소를 선택한 삶은 도시에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던 것에 비할바가 아니다. 코요테부터 염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준비해야 했고, 병든 어린 염소 나탈리를 위해 직접 수의사가 되기까지 한다.

롱아일랜드에서는 아무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장보기 목록에 이런 물건들이 오른다. 오렌지 주스, 와사비, 전기구이 통닭, 아이스크림...
이제 나는 부시 지지자들이 소유한 가게드를 훑어보며 다음과 같은 물건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건초, 엽총 탄창, 살아있는 병아리들, 아이스크림... 마지막의 아이스크림은 빨리 목록에서 지우고 싶어 나는 안달이 났다. 제발 내 삶에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해주면 좋겠다. (63쪽)


이제는 제법 폼 잡고 자신만의 친환경 황야토피아가 모양을 갖춰가는 것 같아 두 손 불끈 쥐고 읽기에 열을 내려는 순간, 아직 아이스크림을 떨구지 못하다니... 그래서 더욱 진솔한 인간미가 느껴짐과 동시에 바람도 맥없이 휘익~ 빠져 나간다. 그래, 모든 걸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을테니까 이해해 주기로 하자.

"저는 애국자입니다." 이것이 식용유 엔진 정비사가 페르시아 만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창고에서 내게 해준 말이었다. "어느 날 거기 착륙하는데, 우리한테 발포하고 있는 저 사람들이 우리가 자동차에 넣고 다니는 원유를 팔아서 재원을 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도 안 되는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자동차에 뭐 다른 걸 넣을 수 있는지를 좀 봐야겠다 싶었어요." (94쪽)

휘발유 승용차인 스바루와 굿바이 한다는 것은 당장 차를 안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스바루 대신 포드 트럭을 구입하여 식용유로 구동할 수 있도록 개조한다. 걸프전 참전용사 출신의 대안에너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데, 그의 식용유를 사용하게 된 동기가 덕 파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고, 정치적 색깔로 달랐지만 그래도 잘 뭉쳐 일을 끝낸다.

허비가 이 프로젝트의 고귀한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어이, 드릴을 석탄과 가스에 좀 꽂아주겠나?" 그가 내게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국가 송전망을 추방함으로써, 내 인생에서 석유를 없애고자 일하고 있다는 사실. 초기 단계에서는 흠 없는 이미지를 흐리는 유독성 보라색 물질이 끼어 있다 해도, 미래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나가자. (166쪽)

자작나무와 같은 영원한 히피 노인이 이웃에 있다는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높은 풍차 탑에 올라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는 작업 중에 태풍이 불어와 생명의 위협도 느꼈다. 지하수를 퍼 올리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물 웅덩이가 생기자 인근의 뱀이란 뱀들이 죄다 몰려오는 공포 상황이 연출되었다. 방울뱀을 물리치기 위한 덕 파인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유머로 포장되어 있다. 태양열 활용의 멘토로 두려움 없는 환경 운동가 허비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궁금했던, 이 혈기왕성한 남자의 여자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어린 염소 나탈리가 병들었을 때, 인터넷으로 긴급 약품을 주문하지만 택배 직원은 배달을 못하겠다고 주저 앉아 버리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하여 데이트를 신청한 여인이 있었으니...  철인3종 경기 참가의 전력에 빛나는 위풍당당 금발의 루피였다. 환경운동단체 간사인 그녀는 덕 파인이 기자 시절 내놓은 어떤 책의 독자로서 데이트를 신청했고, 이 비열하고 염치없는 싱글 친환경녹색남은 데이트 장소로 펑키 뷰트 목장을 지정한다. 물론 오는 김에 배달받지 못한 소포까지 가져다주면 고맙겠노라는 아름다운 주문까지...

"좋아." 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섹스와 우정과 우리가 함께 했던 일들 다 고마워. 그런데 달걀 값은 1달러 25센트야."
"어머 그렇게 깎지 마. 시내 생협에 가면 3달러89센트라고." (183쪽)


이 대화는 루피와의 공식적 결별 뒤에 친환경 달걀을 팔아먹는 거래의 장면이다. 쿨하다!!

궁할 때는 모든 여자에게 친절하지만, 본디 남자란 이용해 먹는 여자 따로 있고, 이용 당해주고 싶은 여자 따로 있는 법, 루피 또한 내 예상대로 단지 스쳐가는 여인일 뿐이었다. 몇몇 다른 여자를 경유하여 그가 이 책에서 해피엔딩을 이끌어 내는 진정한 여인은 미셸!!

내가 딕체니라고 이름붙인 코요테는 미리 주도면밀하게 조사를 한 게 확실했다. 나와 미셸의 관계가 진척되는 경과를 관찰하고, 우리 스캐쥴은 물론 연애의 내밀한 세부 사항까지도 지켜봤을지 모른다. 그놈은 우리 침실을 근접 염탐할 수 있는 거리에 비밀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고 살고 있었다. (189쪽)

코요테의 습격에도 넘치는 재치, 적당한 사생활 노출, 그리고...

"이 흰독말풀꽃 좀 봐."
꽃을 보긴 했지만, 난 그냥 그녀만 바라보고 싶었다. 지구와 참된 교류를 맺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다. (225쪽)

염소 혹은 코요테와 함께 춤을 추는 바로 이 황야의 저탄소-녹색-싱글남...
오지에서 여자 꼬시는 방법은 인터넷을 통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채팅에서의 농장 자랑?
혹시, 손수 개발한 '친환경 유기농 섹스'를 빌미로? ^^;
아무튼 드러나지 않는 개발이 있으리라... 섹스앤시티가 아니라 섹스앤팜~

이 책 곳곳에 수록된 수 많은 촌철살인의 명언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엔진 연료로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건 오늘날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름은 오늘날 석유나 석탄 타르 제품만큼이나 중요해질 수도 있다. -루돌프 디젤, 1913년 사망 (89쪽)

P.S.
지난 봄,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집의 매끄럽지 못한 번역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이 책 하나로 번역자 김선형 선생에 대한 마음이 풀렸다. 언어유희가 넘쳐났을 어려운 책 번역을 향한 열정과 노력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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