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젖 짜는 사람 -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야기들
라픽 샤미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매우 흡인력 있고 유쾌한 이 소설의 부제는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야기들'이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 하려고 왔던 바울이 성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깊이 뉘우친 뒤 독실한 사도가 되었다는 곳으로 작가 라픽 샤미의 고향이다. 1960년대 초반, 쉼없이 정권이 뒤바뀌는 다마스쿠스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서로 무관하지 않은 13가지 단편들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과거의 회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할머니의 기적적인 벽치기(?)를 회상하는 짧은 추억으로, 배움을 통해 그 시절의 감동과 흥분들이 반감되어 가는데 대한 소년의 가벼운 원망으로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 되고 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표제작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귀머거리 행세를 했던 살림아저씨의 회상이 나온다. 학교 대신 감옥이나 짓는 정부를 위해 자진해서 목숨을 바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바보들이라는 강변을 들은 소년은 상상한다. 얼토당토 않은 직업을 들이 밀면 혹시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콩죽이냐 천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에 있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생계를 위해 닭을 팔러 다니던 소년 유제프가 어느 바람난 부인집에서 순식간에 돈을 벌어 들이는 장면은 배꼽을 빠지게 하는 재치가 있다. 닭값 대신에 몸을 들이 밀던 부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년 유제프가 갑작스런 남편의 귀가로 옷장에 떠밀려 숨었다가 웬 정체모를 벌거벗은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그 하일라이트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한 손에 둘둘 뭉치돈을 들고 서 있던 그 남자가 애원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하라며 다른 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었지만 그것은 유혹이었다.

"20리라예요. 안 그러면 소리치겠어요!"
"그래 알았다! 옜다, 20리라."
그자는 작은 소리로 말하면서 유제프에게 돈을 주고 닭을 받았다. 그 바람에 그의 옷이 맨발 위로 떨어졌다.
"그 말라빠진 닭을 파시겠어요?" 잠시 후에 유제프가 물었다.
"뭐라고 다시 팔라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20리라 다시 다오." 그자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그리고 제발 좀 조용히 해라."
"웬 20리라요? 이런 형편없는 닭은 5리라면 충분하죠!"
"내가 방금 너에게 20리라를 줬잖아!" 그자는 버럭 화를 냈고, 유제프는 희미한 불빛 사이로 잔뜩 성이난 그 사람의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보았다.
"5리라 아니면 소리 지를 거예요."
"알았다, 알았다고!옛다,네 닭.이제 제발 조용히 좀 하자." 
"이 닭 다시 안 사실래요?"
"이거, 완전히 돈 거 아니야? 지금 뭐 하자는거야······?"
"20리라 안 주면 소리 지를 거예요."
여인의 남편이 거실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리자 그자는 돈을 지불했다.
유제프는 봐주지 않았다. 그는 그 닭을 몇 번 더 사고 팔았고, 닭이 오갈 때마다 15리라씩 챙길 수 있었다. (136쪽)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결정적인 한 방이 또 남아 있으니 읽는 이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반드시 읽어 보시라...

이 시대의 약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있는 이야기는 '숲과 성냥개비'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끊임 없는 싸움의 반복들을 지켜보면서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연대만이 희망임을 이야기하는 살림 아저씨의 우화는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키 작은 올리브 나무와 뿌리가 깊지 못한 소나무로 가득했던 울창한 숲이 두 나무간의 무시와 질투로 인해 다 타버린 뒤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이 책을 사서 읽으면 알게 된다. ^^;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암담했을 청소년기를 헤쳐나가는 즐거움...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이 녹아 있으며, 고령의 살림 아저씨와 들려주는 지혜로운 이야기, 심장병으로 죽어 가던 쿠르드인 친구 누흐와의 우정, 자칭 케밥 예술가인 마흐무드의 자존심, 자기 덪에 빠져 망가지는 비밀경찰의 이야기, 시험 답안지의 분량으로 체점을 하는 엉뚱한 선생님, 유부녀 살마와 나이를 더하고 빼며 몸으로 놀아나는 위험한 첫사랑의 추억, 수리할 때마다 부품이 남아돌던 아버지의 라디오가 맞이 해야만 했던 최후, 알리와 함께 과자를 팔아 목돈을 벌던 에피소드 등이 수다스럽게 펼쳐진다.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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