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위대한 서사시들은 악이 만연할 때 신이 내려와 질서를 회복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개소리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지상의 혼란을 정리해주는 축복을 지금껏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우리가 싼 똥은 결국 우리가 치워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구두를 벗고 바지를 걷고 찜찜한 똥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한 일은 그런 것이다. 양심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13쪽)
현대 소나타가 나오고, 김기덕 감독이 나오고... 비중없는 소재라도 우리 문화가 개입되어 특히 반가웠던 인도 소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두번째 작품이 나를 흥분 시켰다. 작가가 외교관이다 보니 다국적 소재를 적절하게 잘 버무려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명작을 만들어 냈다.
"법으론 안된다. 저 놈들을 바로 잡는 방법은 테러 밖에 없어. 테러밖에..."
2년 전, 여의도의 한 술 자리에서 M형은 그렇게 말했었다. 최고의 변호사와 함께 자신들이 저지른 그 무엇이든 합법적인 논리를 만들어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 대다수의 언론인, 재벌, 정치인... 그 유명한 XX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몰려 온갖 억울함이란 억울함은 다 당했고 아직도 그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M형, 결코 자신의 억울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억울함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자비 출판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는 그 말이 너무 과격하다며 한 발 물러서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서 M형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온갖 불의를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오로지 이긴 자들의 만찬...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 아르바이트생, 50명의 증인이 바라보는 그 레스토랑에서 아무런 고민없이 바로 그 종업원을 살해하는 잘 나가는 청년. 너무도 뚜렷한 증거와 증인들을 남겨 놓고도 7년간 질질 끌어 온 그 사건은 재판은 무죄로 끝난다. 정의는 끝났다. 뭐든 하고픈대로 결행하며 살아가는 현직 내무부 장관의 아들이자 재벌 총수인 32세 청년 비키 라이는 편리하게 조작된 사건과 판결에 감사하지도 않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성대한 자축하는 파티를 강행한다. 너무도 대담하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놓고 보자. 비키 라이와 같은 인물을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요새 법치주의를 외치는 무법자 권력을 바라보자. 대다수가 무관심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2년 전 M형의 발언에서 뒤늦은 찬성의 한 표를 보내고 싶어졌다. 법으로 불가능 하다면 테러... 테러라는 단어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들의 법을 피해 간다면 대안은 테러가 아니겠는가...
결국, 법의 보호를 받고 오만해진 비키 라이가 자신의 농장에서 자축 파티를 벌이다가 잠깐의 정전 중에 살해 당한다. 그 현장에서 6명의 다양한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이제 법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양심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이는 놀랍게도 용의자의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그래서 더욱 멋진 소설이다.
누군가 당신의 바카스는 무엇입니까?라고 지금 묻는다면 "이 멋진 소설을 읽게해준 비카스 스와루프다."라고 말장난 하고 싶어졌다.
나도 M형 마음처럼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