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1 - 봉단편, 개정판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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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첫 권임에도 이 책 하나가 그 나름대로 완성된 하나의 작품인 듯 싶다.

벽초의 임꺽정은 80년대 신군부 시절에 출간되어 출판사 대표가 구속될 정도로 문제가 되었던 작품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가면 해방직후 조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인기 절정의 미완성 역사소설이다. 다만 이데올로기가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포장되던 못된 독재 시절에 월북 작가의 작품이 버젓이 출간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체제 전복을 부추기는 이야기도 아니고, 민족 문화의 다양한 표현들이 멋스럽게 녹아난 이 작품이 왜 금서여야 했더란 말인가. 이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이 미완성대작이 우리 독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음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기쁘다.

내가 읽은 '봉단편'은 백정 양주삼이의 딸 봉단이가 연산군 시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살던 이교리와 혼인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정작 소설의 주인공이어야 할 꺽정이의 임자도 드러나지 않는 감칠맛 나는 이야기이다.

임꺽정 시리즈 중 가장 얇은 것으로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봉단편은 참으로 술술 읽히는 명문장의 나열들로... 조선 중기의 역사적 사실들이 여기저기 녹아나는 멋진 작품이다.

가장 매력적으로 기억하는 부분은 174쪽에 있다.
게으름뱅이 김서방이 중종의 시대가 시작되자 사면복권이 되어 동네 사람들에게 사위나리로 불리게 되면서 처가집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 식사 장면이다.

사위 나리가 서울로 떠나게 될 날도 가깝고 하니 집안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어 조석을 같이 먹자고 주장하여 윗방이 조석 먹는 방이 되었는데, 구미 잃은 봉단이가 험한 법 먹는 것을 사위 나리가 딱하게 여기어서 자기의 입쌀밥을 주고 싶으나 여러 사람 보는 곳에서 유난스러워서 주삼의 아내를 보고
"혼자서 좋은 밥을 먹자니 첫째 염치가 없어. 이 밥 좀 나눠들 자시지."
하고 위만 헐다가 만 밥그릇을 내어주니 주삼의 아내가
"고만두고 더 잡수시오."
하고 권하다가 사위나리가 정히 고만 먹겠다고 하니까
"네나 먹어라."
하고 봉단을 내주었다. 사위 나리 맘에는 봉단이가
"녜."
하고 받아먹었으면 좋겠는데 봉단이는 남의 맘도 모르고
"아버지 잡수세요."
하고 주삼을 주고 주삼은
"나는 조밥이 좋아. 당신이 자시오."
하고 아내를 주고 주삼의 아내는
"아재 자시오."
하고 주팔을 주고 또 주팔은
"나도 조밥이 좋아. 너 먹어라."
하고 돌이를 주었다. 입쌀밥 담은 밥그릇이 한차례 식구 앞에 조리를 돌아 돌이에게 간 뒤에 돌이가
"다 싫다면 내나 먹지."
하고 처치하게 되니 사위 나리의 소료˙와는 틀리었다.

이렇게 정다운 이야기를 읽노라면 참으로 즐겁다.
마지막에 양보 없이 덥썩 받아 먹는 돌이를 주목하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맛이다.
아울러 이 인용의 마지막 줄 <소료˙>와 같이 상단점( ˙ ) 이 찍힌 단어나 문장의 뜻풀이를 해당 페이지에서 직접 해주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내용이야 벽초의 문장이니만큼 나무랄데 없고, 그 정신을 이어 편집이 참 잘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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