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일상 -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
백영경.박연규 지음 / 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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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일까?
이 매력적인 제목을 처음 접하면 저자의 의도와 달리 엉뚱한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표지 하단에는 “FEMINISM과 BIOTECHNOLOGY in Everyday Life"가 영문으로 크게 써져 있어서 처음엔 나도 그러한 제목의 외국 책자를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것으로 오해를 했다. 페미니즘과 바이오테크놀로지를 2미터가 넘는 괴물인 프랑켄슈타인과 결부하여 해석하면 어리둥절 할 수 있지만 불행한 삶을 살다간 여류작가가 쓴 인조인간(괴물)의 창조자(프랑켄슈타인)를 이야기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현대인들은 의식주 문제를 벗어나 남부럽지 않은 모습으로 멋지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남들만큼 키가 컸으면 좋겠고, 남들만큼 건강하고 싶고, 남들처럼 건강하고 예쁜 아이도 낳고 싶고,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아름답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며, 현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그러한 이상들을 일상으로 초대해서 차츰 현실화시켜 버렸고, 꾸준히 혁명적인 기술들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체외수정을 통해 배아를 형성한 후 대리모에게 이식한 아이가 어느덧 스무살 청년이 되었을 시기다. 1989년 당시 제일병원 산부인과 노성일 교수팀의 성과인데, 그는 현재 미즈메디 병원의 이사장으로 황우석 박사와 함께 좋지 않은 이미지의 뉴스메이커가 되기는 했지만 동기만큼은 바람직했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영국의 메리 셸리가 쓴 소설 제목이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류에 공헌하겠노라는 이상적인 동기에 의해 마침내 인조인간을 창조해 내지만 스스로 만든 피조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괴물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생명 윤리의 문제는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에 항상 논란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제목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숨겨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의미있는 존재였으며, 그의 아내는 호기심 하나로 상자를 열어 인류에게 불행을 선사한 판도라이다. 유명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첫 번째 부인은 두 번째 아내인 메리(작가)와 남편의 사랑 때문에 자살했고, 세 자녀와 남편마저 서른 살에 요절하는 등 프랑켄슈타인의 생애만큼 같이 작가의 삶 또한 무척이나 어둡고 우울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바이오테크놀로지라든가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시대를 앞서간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의 우울한 삶을 근거로 결국 페미니즘과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생명윤리와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주제로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 자료들을 취합하여 제시한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알고 보면 얼마만큼의 윤리적인 문제들을 지나치고 있는지도 여러 사례들을 예로 설명한다.

어느덧 결혼 6년째인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는데, 주변에서 더 난리다.
이 책에서는 인공수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조선시대 씨받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현대판 대리모의 문제를 흥미롭게 정리해 놓았다. 마누라를 두고도 대리모랑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드라마에서도 얼핏 구경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 알려주는 이야기는 대리모 거래 방식이나 금액에서부터 성관계 혹은 감정 문제 등 처음 의도와 달리 어떤 사건들로 번져 나갔는지 구체적인 사례까지도 제시하며, 그 파장을 경고한다. 제시되는 다양한 관계와 문제점들을 읽다보면 남일이다 싶어서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읽다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준다. 이 책은 남자가 불임인 경우를 일단 화두로 만들어 내지 않고 여자가 불임인 경우에 당해야 하는 상처를 전재로 거기에 따르는 윤리 문제를 지적하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키가 약간 작은 조카 녀석은 키가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데, 우리가 권할 수 있는 것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 먹으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현대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돈만 있으면 키를 키울 수 있다. 제약사들은 성장호르몬 제제를 해피드러그(happy drug)라는 이름으로 선전하는데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모든 약들을 통칭한다고 한다. 제약 회사는 이미 환자의 시대를 흘려 보내고 고객의 시대를 활짝 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어떤 선택이 옳은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지만 제약 회사에는 수 많은 프랑켄슈타인들이 일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늘도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몸이 많이 마른 편인 처남이 군대에 있을 때에는 단백질 보충제를 통해 근육을 키우겠노라고 구입해 달라는 약의 광고와 함께 편지를 보내왔다가 혼이 난적도 있었다. 하지만 손쉽게 멋진 근육을 갖고 싶었을 녀석의 욕망이 우리들 몰래 실천 되었더라면 우리는 별다른 의심없이 녀석의 근육을 멋지다고 칭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팔순의 아버지는 수술을 통해 인공 척추를 삽입 하셨고 예전처럼 건강하게 활동을 하신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지만 벌써 수년째 규칙적으로 챙겨 드시는 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장인어른은 우리가 손을 쓸 여유도 없이 현대 의학의 한계에 이르러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바가 있고, 만약 그것이 의학적으로 해결 방법이 있다면 돈이 얼마만큼 들어가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바랄 것이며, 이 때 생명이 걸린 문제들은 남들의 시선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복잡한 논리와 윤리적인 갈등 등은 우선 순위에 놓일 것이다.

탈모에 좋다거나, 주름을 방지한다거나, 살을 뺄 수 있다거나,  보다 탱탱한 피부를 유지 시킬 수 있는 확실한 약이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만한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약들은 가격과 몇 가지 임상의 이유가 문제일 뿐 이미 상용화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마음 먹기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몸을 가질 수도 있다. 성형은 기본이고, 인공심장을 가진, 인공 척추를 가진 삶은 삶의 질을 높이는 순기능도 하지만 생로병사의 매 순간마다 생명윤리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도 하게 만든다. 이 문제들을 과학자들들의 판단에는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이용자들 스스로가 어떤 한계나 선을 긋고 지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은 키 모임의 성원들은 윤리적인 문제를 위해 노력하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한 행동과 자율 규제의 노력들이 보다 아름다운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안겨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백영경, 박연규라는 두 여성학자의 글임과 동시에 해외의 다른 논문을 많이 인용하였다.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의 패트리샤 카우퍼트 교수는 여성들이 자궁경부암과 유방암을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것이 일종의 '감시테크놀로지'라고 말한다. 소수의 몸에 있는 이상을 발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다수의 몸들과 정신들에 간섭하는 것이 과연 받아들여도 되는 일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라는 주장과 의문 제기이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보자.

자궁경부는 단순히 검경이 삽입될 수 있는 몸의 한 장소인 것이 아니라 출생의 장소이자 성과 죄악 불명예의 장소이다.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여성은 자신의 인생의 서사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양성 판정을 받을 가능성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야 아마도 최선을 다해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동기로 암의 경계선을 점점 앞당기는 것이겠지만, 그 결과 여성은 성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과 생존에 대한 감각이 황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이 전이 전단계라고 진단 받거나 치료받은 후 성적 태도나 행동, 반응에서 중대한 변화를 보이는데, 삽입성교가 불편하거나 덜 즐겁게 느껴지고 좋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성교 상대에게 자주 적대감을 품게 된다.” 목숨은 건진다 해도 정체성은 손상되는 것이다. (193쪽)

여성들만의 검진이 그녀들에게 수치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몇 번 들었을 때, 여자들의 느낌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지만 이런 글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고 안타까웠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헌신적인 것은 여러 통계에도 잘 나와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여자들만 한없이 불쌍해지고 남자들은 천하의 몹쓸 놈들의 집합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든다. 총각들보다는 유부남들이 그래도 더 이해심이 있을 것 같다. 나만 하더라도 결혼해서 몇 년간 아내와 생활해보니 여성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대신 앓아줄 수 없는 것들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철저하게 여자들이 쓰고 여러 자료들을 정리한 책이고 보니 전립선암이나 발기 부전치료제 등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고 여성의 질병인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이 강조된 책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결론? 이런 글에서 무슨 결론을 찾는단 말인가. 앞으로 더 고민거리만 생겼다는 게 결론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고민해 볼 문제들만 늘었다. 난자의 유통이나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여성인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면서 개별적인 이익을 실현해 가는 이야기 등은 새겨 듣고 고민해 봐야 한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에 입각하여 여성의 권익만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학기술의 주요한 대상 혹은 소재가 되는 여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생명공학의 기획에서 여성의 건강과 권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여자들은 사라 섹스톤의 주장처럼 서로들 뭉쳐서 뭔가 여자들의 연대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일상 속의 생명정치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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