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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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노니, 아득한 옛날, 세상의 시작에 대하여 누가 전해 줄 수 있을까?
그때 천지가 갈라지지 아니하였음을 무엇으로 알아낼 수 있으랴. 모든 것이 혼돈 상태, 누구라서 그것을 분명히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 곳에서 떠다녔는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이 책은 위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주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를 세상에 내보냈다.
아담과 이브는 신의 뜻을 거역하여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게 되는데, 그들의 슬하에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들은 바벨탑을 쌓다가 벌을 받았고, 노아의 홍수를 통해 파란만장한 시련을 겪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우리가 교육받은 바로는 나름대로 최선의 답이 아닐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서양 문화의 뿌리일 뿐이다. 우리는 서양문화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내야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에는 성경이 있고, 성경의 창세기에 물들지 않은 서양 고대의 인식체계로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가 있었기에 우리도 뭔가 거기에 합당한 신화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일연의 삼국유사에 정리된 단군신화 정도로는 수천년간 다듬어진 서양의 신화에 맞선다는 것이 너무 벅찬 일인지라 조금 자존심 상하더라도 앞선 중국신화와 전설을 연구해 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로마에 오비디우스(BC43.3.20~AD17)가 있었다면 고대 중국에는 굴원(屈原, BC343~BC278)과 사마천(司馬遷, BC 145~BC86)이 있었다. 토머스 불핀치가 1855년에 온갖 흩어진 자료들을 취합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리 했듯이 중국인 위앤커가 1세기 뒤에 중국의 신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제법 잘 정리되어 내 손에 쥐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황당무계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따져보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들인가? 다만 서양의 신화가 수 많은 이들의 문학과 회화, 조각, 음악 등 다양한 응용 및 수정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발전해 온데에 비하면 동양의 신화들은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우리 동양의 신화가 좀 더 황당해 보이지만 20세기의 중국작가 위앤커가 중국 편향의 동양신화를 이렇게 정리를 해놓아 다행이다.

반호(=반고)는 하늘과 땅을 만든 신이다.
먼 옛날 고신왕(高辛王) 시절, 황후가 갑작스레 귓병에 걸려 3년간 치료를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귓속에서 금빛 벌레가 한 마리 튀어 나왔고, 이후로 귓병은 완치되었다. 황후는 그 벌레를 표주박 속에 넣고 쟁반으로 덮어두었다. 그 벌레는 얼마 후 한 마리 개로 변신한다. 고신왕은 그 개를 매우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여 늘 가까이 두고 지냈는데, 쟁반과 박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이름을 반호(盤瓠)라고 했다. 훗날 방왕(房王)의 반란 때 역적의 목을 베어오면 사위로 삼겠다는 고신왕의 약속에 반호는 방왕의 목을 베어 온다. 짐승인 반호는 뚜렷한 사람 목소리로 자신이 사람이 되는 방법을 고신왕에게 고하고 사위가 된다. 다만 호기심 많은 공주가 금종(金鐘) 안에 밤낮 칠일간만 묻어 두면 사람이 된다는 반호의 부탁을 어기고 서둘러 뚜껑을 열어 버리는 바람에 머리는 개, 몸은 사람인 반호를 맞이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았고 자손은 번성하여 한 나라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반호는 천지창조신인 반고와 발음이 비슷해 반고라고도 불리며, 그에 대한 기록은 이곳저곳에서 헤아릴 수 없을만큼 수 많은 조각들로 전해 오는데, 그 전하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혼돈의 시절 천지를 개벽한 시조로서의 존경심으로 귀결 된다. 중국 남해에는 3백리에 달하는 반고묘가 있다고 전한다.

복희는 중국 신화에서 창조신이다. 복희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목축을 가르친 신이자 팔괘를 창안하여 음양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짐작하게 한 신이며, 그의 아내는 '여와'다. 그 두 사람은 처음에 남매였으나 나중에 부부가 되었으니 근친상간도 그런 근친상간이 없다. 요족의 한 용사가 홍수를 막기 위해 뇌공을 잡아 쇠둥우리 속에 가두고, 두 남매에게 절대 물을 주지 말라고 당부한 후 외출한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 두 남매가 바로 복희와 여와이다. 복희는 아버지 말을 따르지만 목말라 고통을 호소하는 뇌공을 불쌍히 여긴 여와가 물을 한 방울 주게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탈출한 뇌공은 홍수를 일으켜 인간 세상에 큰 재앙을 일으킨다. 다만 뇌공이 주고간 이빨을 땅에 심어 자란 조롱박 속에 피신한 두 남매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게 되었다는 전설이며, 인류 번성을 위해 두 남매는 부부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청지창조의 신화로부터 영웅들의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유감스럽게도 충분한 문헌 자료가 없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신화에도 창조와 홍수에 이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뿌리를 이루지만 과연 역사라고 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수많은 신화의 영웅들은 후대에 도연명의 시재가 되기도 하고, 굴원의 시로 승화되어 전한다. 이 책에는 감히 정의 내리지 못한 저자의 갈등도 여러 가지 입장으로 나열되는데, 그러한 객관성은 후대에 과제를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1916년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출생하여 1950년에 이 책의 뿌리가 되는 '중국고대신화'을 집필하고, 1984년 문화혁명 기간 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보충하여 '중국신화전설'을 완성한다.
1985년 '중국신화전설사전', 1988년 '중국신화사', 1991년 '중국신화통론', 1996년 '원가 신화론집', 1998년 '중국신화대사전'을 출간한 역사학자이다. 위앤커가 처음 중국신화를 정리할 때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고대 중국의 영웅들이 '노동영웅'으로 파악하였는데, 그것은 마르크스 주의 시대를 살던 작가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작가 자신도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였지만 그러한 이유로 신화와 역사는 다양한 시각에서 꾸준히 탐구하고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얼마 전, 나는 일본의 천재 작가 나카지마 아츠시가 쓴 중국의 고대사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중•단편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며 한자어 문화권인 동아시아는 근본이 비슷한 나라이므로 그러한 노력들이 한•중•일 삼국에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양의 신화와 전설이 보다 체계적이고 풍성한 읽을거리들을 만들어 제대로 된 인류의 시작을 찾아가는 이야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신화와 전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필요성에서 이 책은 매우 소중한 시작이라고 생각되며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개벽편 - 세상의 시작 / 반호와 반고 / 복희와 여와의 남매혼 / 세상의 중심과 불의 기원 / 늠군과 염수의 여신 /여와의 인류 창조 / 서방 천제 소호 / 북방 천제 전욱 / 산천의 기이한 동식물들 / 공공과 전욱의 전쟁 / 용백국 거인과 다섯 개의 신산

제2부 황염편 - 남방 천제 염제 / 황제와 곤륜산 / 중앙 상제 황제 / 황제와 치우의 전쟁 / 과보와 치우의 죽음 / 우랑 직녀 이야기 / 우공이산 / 황제의 주변 인물들

제3부 요순편 - 은 민족의 상제 제준 / 후직의 탄생 / 요임금과 허유.소부 / 순임금의 모험 / 순임금과 지혜로운 두 아내

제4부 예우편 - 열 개의 태양 / 열 개의 태양을 쏜 영웅 예 / 하백과 서문표 / 항아와 불사약 / 영웅 예의 죽음 / 대홍수와 곤 / 우임금의 치수 / 우와 도산씨 여자의 결혼 /우임금이 주조한 구정 / 우임금이 다녔던 이상한 나라들 / 이형국 / 이품국 / 두견새와 이랑신

제5부 하은편 - 유궁국의 후예 / 공갑과 용 / 하걸과 이윤/ 은 민족의 선조 왕해와 왕항/ 탕왕의 기도 / 은나라의 멸망과 주 문왕 / 주 문왕과 강태공 / 주 무왕과 백이 숙제

중국 신화에 대한 기억을 위해서 이 책의 목차를 정리해 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음사의 야심작인 세계문학전집의 의미있는 첫번째 작품과 두번째 작품이 1,2권으로 분권 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임을 감안할 때, 민음사세계문학전집 16,17권이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이라는 것은 두 책의 인지도를 벗어나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모두 두 권으로 정리된 이 책은 첫번째가 주로 역사성에서 취약한 신화와 전설의 정리이며, 철저히 중국중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릴만한 것들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쩌라고? 우리가 보다 역사와 신화를 성문화 시키지 않는한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이 정부의 개념없는 역사와 문화 인식이 보다 건전해지기를 바라며, 삼국유사라도 남겨주신 일연 스님께 감사를 드리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늘도 꾸준히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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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묘비망록 2008-11-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세문학전집을 사야한다는 계획을 잡고있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한편으로는 하게되요. 근데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으면 안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