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17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평점 :
품절


멋진 시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나는 프레베르의 '어느 새를 그리려면'이라는 시에 홀딱 반해서 그 시가 수록된 시집을 소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차례 개정되었지만 근본적으로 33년전 봄에 출간된 민음사판의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컴퓨터 조판을 하기 이전의 책이라 폰트가 디지털적이지 않은 것이 더욱 매력적이다. 시집의 좌측 페이지에는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의 한글 번역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프레베르의 원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배를 입에 문 시인의 시선이 누군가를... 세태를... 풍자하며 약간의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표지중앙을 장식하고 있이다.
해학의 시인이자 항거의 시인인 프레베르의 정신이 잘 드러나는 시들이 여러편 수록된 이 시집을 소장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엘자 앙리케즈에게


우선 문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을
뭔가 간단한 것을
뭔가 유용한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새장을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걸어 놓을 것

아무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려서
오기도 한다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한 것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싱싱한 바람과
햇빛 또한 그릴 것

그리고는 새가 노래하기를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것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싸인해도 좋다는 것

그러거든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라.
(86쪽)






꽃집에서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돈은 굴러가도
꽃들은 부서져도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 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 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116쪽)


본문에 수록된 두 편의 시를 옮겨 봤는데, 수록된 시의 전체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아름다운 계절
2. 알리칸테
3. 너를 위해 내 사랑아
4. 하느님 아버지
5. 센가
6. 열등생
7. 귀향
8. 나의 집에
9. 느긋하고 푸짐한 아침
10. 가정적
11. 이 사랑
12. 작문
13. 아침 식사
14.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15.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16. 위대한 사람
17. 멋진 가문
18. 국립 미술 학교
19. 깨어진 거울
20. 자유 지역
21. 크고도 붉은
22. 불어 작문
23. 일식
24. 옥지기의 노래
25. 첫날
26. 메시지
27. 꽃집에서
28. 일요일
29. 공원
30. 꽃다발
31. 바르다라
32. 바른 길
33. 말〔馬〕이야기
34. 낙엽
35. 난 본래 이런 걸 뭐
36. 밤의 파리
37. 가을


자녀를 욕심내어 키우는 부모나 선생님에게, 애인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이에게, 직원들에게 불만이 많은 사장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으면서도 그 자체만으로 생각에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은 압권이다. 그 시를 읽거나 외우노라면 점점 빠져드는 멋이 있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꽃집에서'는 삭막한 동작의 묘사가 그 비극을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집은 결코 두껍지 않으나 읽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프레베르의 詩는 참으로 매력적이라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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