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정'이라 명명된 에곤 쉴레의 표지 그림이 야하다고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 책은 말할 수 없이 야하다.
만약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을 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악마의 일기, 배반의 일기, 동성애 일기 등으로 정할 것 같다.

장 주네는 1910년 프랑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10살무렵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린 경력의 사회 밑바닥 인생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 농부의 손에서 자랐지만 초등학교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을 뿐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거리의 부랑아이자 도둑질이나 해대는 정말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성애의 적나라함을 보여주는 내가 읽은 세계 최강의 동성애 수기이기도 한다. 장 주네는 결코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 나는 수 많은 동성애 문학과 문화들을 접해왔기에 나름대로 그 세계에 대한 사고의 폭이 넓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만큼 파격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이 책은 조리없는 문장에 시간과 공간이 헷갈리는 난해한 서술 방식으로 읽는 이를 힘들게 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이 잘 읽히는 것은 장 주네의 꾸밈 없는 사실 묘사와 밑바닥에서 다저진 진솔한 매력의 글쓰기 탓인지도 모르겠다.

장 주네는 1932년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 자리 잡은 거지이자 좀도둑에 동성애자이다.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결국에 모국인 프랑스로 돌아오는 여정을 회고하면 쓴 전혀 자신을 미화시키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록한 진실성 넘치는 충격적인 장르의 자기 고백서이다.

그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는 일기를 남겼으며 그 일기들을 기반으로 훗날 이 작품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집필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펜을 잡으면서 작가로서 생활의 중심에서 발표한 대표작이 되고 만다. 시간과 공간의 서술이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이 부조리한 기록들은 외팔이 미남 스틸리타노, 우아한 청년 미카엘리스, 완강하고 난폭한 젊은이 아르망, 마르세이유에서 만난섹시한 경찰관 베르나르디니 등과의 성적 교섭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들은 작가의 시선에 결코 추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교황청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악마와 같은 등장 인물들은 장 주네의 화려한 문장에 의해 고귀한 존재로 그려질 정도이다. 다만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전혀 달라 그들의 행동을 쉽게 수긍하기 힘들고 이상하다 못해 추악한 삶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연약하고 수동적이었던 그가 어느날 한 남색가를 포박하고 강도질하면서 시작되는 강인함은 하나의 전환기였고, 그가 더욱 악마다움으로 자신을 지켜가는 과정이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잔혹성과 무관심한 태도를 지켜 나가는데 비렁뱅이의 엄격한 규율을 체험한 것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나는 그 후에도 새로운 범행을 모색하였다. 강도짓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부끄러운 좀도둑 생활의 엉큼한 버릇에서 해방되었다. (259쪽)

그는 권태로운 교도소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으며, 처참한 방랑 생활의 기억을 떨궈내기 위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유를 찾은 뒤에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의 글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노숙자의 시선으로 노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형수의 입장에서 사형수를 대변하고, 창녀의 입장에서 창녀를 대변하며, 배우의 입장에서 배우를 대변하고, 운동선수의 입장에서 운동선수를 대변한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진실이 아닐까?

작가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가 이 책의 근본 주제이다. (245쪽)

내가 존경하는 장 폴 사르트르나 장 콕토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 만큼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문학이다. 또한 그는 젊은 날에 앙드레 지드와의 인연도 있었을만큼 문화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한 악마의 세계로 치부되는 어둠의 전도사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의 적나라한 일상...
장 주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생생하게 남겼을까? 이 책은 결코 권장할만한 도서는 아니다. 괜히 이런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했다가는 욕 먹기 십상이다. 다만, 주관이 뚜렷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게 환영을 받을만한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을 다시 정리해달라고 요청 한다면...
세계 최강의 동성애 기록? 노숙자이자 절도범이자 동성애자인 장 주네의 생생한 자기 고백!

나는 흥미롭게 읽었으나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이나 스펙트럼이 고정된 고집스런 청년들에게는 절대 권장하기 힘든 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탄남자 2008-09-2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19쪽1줄(기가->그가), 81쪽3줄(기의->그의), 271쪽12줄(그들->그를) ......... 오타가 흔한 것은 기본이고, 최근 만들어지는 민음사세계문학집 제본 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이번에도 30페이지쯤 읽었을 때 책이 갈라져 버렸다. 본드로 붙이고 조심스럽게 신경 쓰면서 읽었는데, 제작 과정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