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을 위한 협주곡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0
김승희 지음 / 민음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서강대학교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영희 선생님이 있지만 동년배인 또 한 사람의 멋진 시인이 있었다.

한 달 전에 내가 구입한 '왼손을 위한 협주곡' 표지를 얼핏 보면 그다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전여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김승희 시인의 시집은 전혀 전여옥스럽지 않은 진솔한 고백같은 작품의 묶음이고, '일본은 없다'처럼 도둑질한 작품도 아니면서 수년이 지나도록 아직 2쇄에 들어가지 않을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삭막한 시대에 시집이 어찌 2쇄를 욕심내랴? 그저 자비 출판만 아니면 다행일만큼 사람들이 바쁘고 그만큼 시를 일상에서 멀리 있는데...

서강대 국문과 김승희 교수의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아직 초판 1쇄 그대로일만큼 안 팔리는 책 중에 하나이다.
태양과 사랑 및 죽음, 배꼽이 떠오르는 이 시집은 편안하면서도 일면 페미니스트들에게 잔잔한 동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멋진 작품이다. 요새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살자가 많은데, 신세 한탄하는 이들에게 그녀의 시 '유서를 쓰며'와 '자살자의 노래'를 추천하여 마음을 바꾸게 해주고 싶다.


유서를 쓰며

내 뼈에 가득찬
죄악을 비우기 위하여
나는 유서를 씁니다.
독한 청산가리같은 잉크에
내 넋의 붓을 적셔
한자 한자 공들여 적어봅니다.

선언합니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에게
시시한 추억들
못잊을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유품을 나누어 놓고
이것이 최후라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문틈을 샅샅이 레이스로 봉합니다.
그리고 가스마개를 틀고
더러운 부엌바닥에
냉정히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아직 너무나 젊기에
더 살고 싶다는 푸르른 나의 육신에
못을 탕- 탕- 박고
망치를 허공으로 던져버립니다.
살점이 튀고
아까운 피가 양수처럼 따뜻이 고입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기역- 니은- 디귿! - 하고
어머님께 매를 맞으면서
처음 글씨를 배웠던 일이
첫애를 낳을 때의
현란한 극한 사랑의 고마움이

번개처럼 일어나
창문을 열어봅니다.
달빛이 초설처럼 흘러내립니다.
나의 해골을 집어들고
달빛을 한바가지 가득 떠서 마십니다.
고해를 하고 성찬을 받은 것처럼
목숨이 더없이 맑아진것 같습니다.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유서를 쓰며'를 읽다 보면 나도 어느새 유서를 쓰며 지나온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매를 맞던 기억도... 훗날 그런 (엄마가 되어) 첫 아이를 출산할 때의 기억도 떠오르며 충동을 억제하게 한다.
읽는 이의 존재감을 더욱 가치있게 빛내주는 더 없이 맑은 시이다.


자살자의 노래

떠나는 건 쉬워ㅡ

처음엔 왼발을,
그 다음엔
오른발,
그리고 슬쩍 몸을 날리는 거야,
애욕처럼 진하게
두 눈을 감고 ㅡ
 
그런데
아직
유서를 못썼어,
나의 死因을 포장해 줄
극비의
설형문자를,
 
그때까지는 살려고 해 ㅡ

하하 ㅡ
이건 변명이
아니라
소명이라오!



태종대의 절벽이나 만경대의 깊은 계곡을 뛰어 내릴 듯한 자못 진지한 자살의 상상...
시 '자살자의 노래'을 읽다보면 '유서를 쓰며'와 마찬가지로 자신없는 헛웃음으로 극단의 상황을 말려주는 힘이 있다.
단지 유서를 준비하지 못한 궁색한 변명? 아니란다. 소명이라 한다. 시인의 언어는  돌아설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준다.
자살을 결행하기 전에는 반드시 유서를 쓰지 말았어야 이 詩가 충분히 고마울 수 있을 듯 하다. ^^


배꼽을 위한 연가 1

그대여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당신의 배꼽을 보여준다면 나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더럽게 뒤엉긴 자그만 동그라미 굽이굽이 꼬불쳐진 그대의 서러운 배꼽도 나의 배꼽과 똑같이 부끄러운 죄와 어리석은 욕망이 고불고불 서리서리 끼어있을 테지요. 그대여, 어둠의 태속에서 영문 모르고 튀어나와 정처없이 죄를 짓고 죽어가는 그대여, 그대여.

우리는 배꼽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생일날의 흉터.
고아들의 패찰,
인광을 칠한 백골의 주황색 입술이
아삭아삭 제일 먼저 뜯어먹는
온순한 육체의 이삭,
우리는 배꼽 위에서 너무나 평등하다

그대여 당신이 누구든지간에, 당신의 배꼽을 버리지 않았다면은 나 그대를 열렬히 용서하겠습니다. 봄이 되어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트는 것을 바라보거나 푸드득-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습진처럼 내 배꼽이 가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배꼽은 과거 완료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나의 삶속에 움터오르고 어머니- 아, 어머니-라고 불러보면 바닷가를 울면서 걸어가는 한 여인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사랑 그녀의 절망을 따라 나의 배꼽은 또 하염없이 시원의 태속으로 적셔 들어가고 어머니- 자비와 저주의 비밀계좌이신 어머니- 나의 어머니시여······


연작시 '배꼽을 위한 연가'를 읽노라면 어머니의 탯줄로 부터 독립하는 나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 또한 자살이나 유언과 더불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삶의 의지를 읽게 하는 힘이 있는데, 이 시를 외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자신의 배꼽을 어루만지게 하는 촉감의 감동이 함께 한다.


萬波息笛 - 남편에게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생기지.
그 빈 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 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삼국사기 기록에 신라 신문왕 때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이 남아 있는데... 동해에 조그만 산이 있어 가보니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고 한다. 이 대나무가 하나 되는 밤에 베어 피리를 만들면 나라에 길하게 쓰일 수 있었다는 천관의 해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두 대나무가 하나 된 밤에 그것을 베어 피리(笛)를 만드니 이 피리를 불면 가뭄에 비가 내리고, 홍수에 비가 그치고, 병이 낫고, 파도가 잠잠해 지며, 전쟁이 멈추는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인은 만파식적의 전설을 인용하면서도 권태기에 다다른 중년부부답게 결코 뜨겁지 않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부부의 삶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남편들에게 이 시는 제법 섭섭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대로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바람직한 부부상에 대한 갈망으로 보여지지 않나 생각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부부애가 아니겠는가.



이 시집이 아주 특별하거나 강력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다.
그녀에겐 분명히 거짓이 없는 삶의 고백이 불타 오를 뿐인 것 같다.
시는 진실의 구성이라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 시집이라 생각된다.

하루종일 지하철을 오가며 이 시집을 읽고 또 읽던 내 마음은 무덤덤한 편안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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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마님 2008-09-2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장영희선생님 책도 많이 읽고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라요. 좋으시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