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의 대화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7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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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리 출판계에서는 인스턴트식 인터뷰 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책이며 잠시 인기있는 인물이나 시사평론가들의 토론형식을 지상으로 옮길 뿐인 책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다시 대중으로부터 잊혀지기 쉬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책들과 차원이 다른 180년 전에 기획된 인터뷰 책이 최근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아주 두툼하게 다가와서 내게 큰 기쁨을 줬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누가 뭐라해도 독일의 자랑스러운 인물이자 세계사에 길인 남는 대문호이다.
이전에 괴테의 여러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서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면서부터 그에게 푹 빠져들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통해 왜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괴테에 열광하는가에 대해 또 한 번 공감하게 되었다.

1823년6월10일 화요일 바이마르로 74세의 괴테 노인을 찾아가는 31세의 청년 에커만은 1832년 3월22일 83세로 세상을 등진 괴테와 자연스러운 만남과 배움의 이야기들을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하여 이 위대한 책을 남긴 것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중에 1,2부는 1836년에 발표되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이 1,2부를 한 권으로 통합 하였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848년에 제 3부가 발표되었는데 순전히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던 이 3부(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는 두 번째 책으로 구성)는 에커만 단독의 기록이 아니다. 에커만 보다 앞서 괴테와 인연을 맺었던 제네바 출신의 공화주의자 소레의 일기가 바탕이 되었다.
1,2부와 3부는 시점상 순서에 따랐다기 보다는 1,2부에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3부에 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직후, 3개월간 괴테는 마리엔바트에 머물렀고, 에커만은 예나에 머물렀었는데 괴테가 에커만에게 보여준 시 '마리엔바트 비가'에 대한 에피소드는 괴테가 얼마나 멋진 노인이었나에 대한 증거 그 자체다. 당시 바이마르에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었는데, 그 소문은 다름 아닌 74세의 괴테가 울리케 폰 레베초프라는 마리엔바트 온천에서 만난 19살의 소녀를 만나 짧은 사랑에 빠졌으며 그 이별의 아픔을 그러한 시로 남겼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에커만은 그것을 단지 헛소문이나 떠돌아 다니는 가십거리 수준으로 낮춰 보지 않고 괴테 정도의 인물이라면 능히 그랬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에커만의 괴테에 대한 숭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후로 수많은 괴테 어록이 에커만의 일기를 통해 남아 이 책으로 태어났는데, 그 것들을 나의 주관으로 인용하거나 느낌을 메모한다.

이후 2년간 괴테와 어울리면서 에커만은 '괴테와의 대화' 초고를 완성하여 괴테에게 보여주고 출판을 꿈꾼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에커만은 하루 빨리 그 책을 출판하고 싶었지만 괴테는 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요구하며 그의 출판을 제지했고 덕분에 에커만의 생활고는 점점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말년의 괴테는 에커만과 어울리면 수많은 명언들을 남겼는데, 문자 그대로 주옥 같은 것들이 줄줄이 널려 있다. 여기 책 내용을 그대로 인용 하거나 혹은 내 개인의 느낌을 담아 메모해 본다.

- 정치라는 것도 배워야만 하는 직업의 하나이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주제넘게 개입해서는 안된다. (1권 123쪽)
그렇다. 요새 우리나라의 정치인을 보더라도 참신한 건 좋은데, 참신하다는 것만으로 승부를 걸고, 뉴타운 공약이나 해대고 아주 쉽게 시류에 따라 당선이 되어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정치를 아무나 하나? 난 아무리 정치인이 썩었더라도 다른 영역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이나 이른바 폴리페서라 불리는 부류의 새내기 정치 참여자 보다는 차라리 낡은 정치인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치를 하나의 직업으로서 정의하는 괴테 그 자신도 정치와 행정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도대체 그런 일이 자네에게 맞는 일이란 말인가! 요컨대 자네가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알아보기만 하면 되지. 그것을 세상을 향하여 한 번 더 말할 필요는 없는. 온 세상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 시키는 꼴이니까 말이야.'  (1권 176쪽)
괴테의 조수가 된 에커만이 영국의 한 잡지로 부터 독일의 최근 산문들에 대한 서평을 청탁 받았음을 전하며 의견을 묻자 괴테는 심한 불쾌감을 내비추며 이렇게 말했다. 에커만은 매우 가난한 청년이고, 돈이 없어 약혼녀와 결혼도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괴테의 비판은 좀 가혹했다고 생각한다. 부유했던 괴테가 에커만에게 너무 학생다움만 강조한 것은 아닌지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1권 182쪽을 보면 영국의 한 공병 장교가 영국에서는 독일어에 대한 관심이 대단함을 이야기하자. 위풍 당당 괴테는 훌륭한 독일어 번역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독일어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 시인의 자질을 이야기 하면서 먼저 괴테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노래를 배우려는 사람의 경우 자기 목청에 맞지 않는 음이라도 가수가 되고 싶다면  그런 음까지 자기의 음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약간의 주관적인 감정 정도를 토로하고 있는 주제에, 아직까지 시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를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할 수 있을 때에야 시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밑천이 다하는 일도 없고 언제까지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관적인 성질의 사람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내면을 금방 토해 내고는 결국 매너리즘에 빠져 파별해 버린다는 것이다. (1권 240쪽)

- 이미 작품이 완성되어버린 마당에 자신의 충고는 의미가 없다는 괴테의 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쓴 젊은이가 최소한 인쇄된 작품 대신 작품의 구상을 보내 온다면 조금이라도 이로운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점에서 독일은 너무도 뛰어난 젊은 시인들이 많아 스스로 칭송받지 못하는 젊은 시인들이 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과잉상태를 일부러 조장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는게 낫다고 이야기 한다. 걸출한 인물만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괴테의 마무리는 가혹하지만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권 243쪽)

- 1권 248쪽을 보면 재미있는 말다툼이 묘사된다. 바이런 경이 자신의 작품 '사르다나팔로스'를 괴테에게 헌정하는 일이 있었을 때, 바이런 예찬자인 며느리에게 전에 선물한 바이런의 친필 서한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괴테와 양보할 수 없다는 며느리와 식탁에서 애정어린 언쟁을 하는 장면은 에커만의 기록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매우 인간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 괴테가 에커만에게 들려준 다음의 한 마디는 카피라이트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요즈음 나는 프랑스어로 된 어떤 번역작품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 이 사람 정말 현명하게 말하는군. 나라도 그와 다른식으로 말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의 작품에서 번역된 구절이더군.' (1권 283쪽)

- 너무 가난해서 망원경을 살 수 없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허셀의 이야기도 괴테의 입을 통하면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허셀은 망원경을 구입할 돈이 없어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었고 그것이 다른 망원경보다 오히려 성능이 뛰어나 토성의 고리와 목성의 위성 등 위대한 발견을 하였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권 336쪽) 정말 필요는 발명의 아버지인가 보다. 괴테는 정말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이야기를 꺼내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인물이다.

- 루벤스의 어떤 풍경화를 관람하면서 에커만은 루벤스가 전적으로 자연을 본으로 하여 이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였더니, 괴테는 바로 이렇게 말한다.
'단연코 아니네. 그처럼 완벽한 그림은 자연 속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야. 이러한 구성은 바로 화가의 시적인 정신에서 나온 것이네. 위대한 루벤스는 매우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전체를 머리 속에 넣어 가지고 있으면서 그 세부적인 것들을 언제나 마음껏 활용했던 거지. 전체와 부분의 이러한 사실성은 그렇게 생겨난 것이므로 우리는 그림의 모든 것이 순수하게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고 믿게 되는 거네. 이제 그러한 풍경화는 더 이상 그려질 수가 없고, 자연을 그러한 방식으로 느끼고 보는 경우도 완전히 없어져 버렸는데, 그것은 오로지 우리 현대의 화가들에게 詩心이 결여되어어 있기 때문인 것이네' (1권 348쪽)

- 예컨대 코르크 나무는 우리들의 병마개 뚜껑으로 사용되기 위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등은 칸트와 나에게 공통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점에서 기뻤네. (1권 352쪽) 재미있는 표현 아닌가?

- '마이스터'를 연구하고 그 책의 가치를 충분히 깨달은 칼라일이 널리 읽히기를 원했노라고 에커만이 말하자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작품은 대중화 될 수가 없네. 그러니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거나 노력하는 자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지.'
이 대답을 들은 에커만은 생각한다. '그러한 고귀한 정신, 그러한 광대무변한 천분을 대중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1권 419쪽)
독자인 나 역시도 그동안 수없이 읽어온 괴테의 책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었음을 자위하게 하는 기록이라 본다.

- 단테는 우리에게 위대해 보이지만 사실 그의 배후에는 수백 년의 문화가 있네. 로트쉴트 은행은 화려하긴 했지만 그 많은 보물들을 얻기까지는 한 세대 이상이 걸렸어. 이러한 것들의 본질은 그 모두가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네. (1권 425쪽) 괴테 그 자신도 어린시절부터 부모에 의해 훈련된 천재라고 전해지고 있으니 이 표현은 가장 괴테스러운 표현이라고 본다. 나도 내가 만든 어떤 창작물들을 살펴보면 정말 괴테의 그 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인류는 조상에게 감사해야 하고, 선배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해야만 할 것 같다.

- 이 세상은 이제 상당한 나이에 도달했어. 수천 년 이래로 정말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살아왔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언급될 수도 없네. 나의 색체론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야. 플라톤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다른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나보다 앞서서 동일한 것을 말해왔네. 그러나 나 또한 그것을 발견하여 다시 말하고 혼란에 찬 세계에 진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다시 마련해 주려고 노력한 것, 그것이 나의 공적일세.
게다가 진리란 언제나 반복해서 말해져야만 해. 우리들을 둘러싸고 오류가 끊임없이 이야기 되고 있기 때문이지. 그것도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서 말이야. (1권 429쪽)

- 바이런의 작품을 읽고 순수한 인간 형성에 대한 의심을 말하는 에커만에게 괴테는 말한다.
"난 자네 의견에 반대야. 바이런의 대담성, 당돌함과 웅대함, 이 모든 게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순수함과 도덕성만을 인격 형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피해야 하네. 모든 위대함은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의 인격을 높여주는 걸세." (1권 436쪽)

- 철학자가 우리들의 영혼불멸을 전설로부터 이끌어내려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허약하기 짝이 없고 그다지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마네. 내가 볼 때 영혼불멸에 대한 신념은 활동의 개념에서 생겨나는 것일세. 왜냐하면 내가 인생의 종말까지 쉬지 않고 활동하는 가운데, 현재의 생존 형식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게 된다면 자연은 반드시 나에게 다른 생존의 형식을 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세. (1권 438쪽)

- "마치 자네가 진실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나의 색채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기독교의 경우와 꼭 같네. 처음 잠시 동안은 충실한 제자들을 가졌다고 믿었었는데, 어느새 빗나가서 그들이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게 아니겠나. 자네도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자야."
괴테로부터 반어적이고 빈정대는 어투의 말을 들은 에커만은 식사가 끝난 후, 말없이 창가에 서 있는 괴테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고 기록해 뒀는데 별것 아닌 그 행동인 내겐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1권 466쪽)

-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명성 때문에 그토록 노심초사 하여, 결국 잘못된 수단에 호소하는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에커만에게 괴테는 말한다.
"여보게, 명성이란 사소한 게 아니야. 나폴레옹도 그 위대한 이름 때문에 세계의 거의 절반을 쳐부수지 않았던가!" (1권 486쪽)

- "진실의 힘은 위대한 것이네. 신문 기자나 역사가나 시인들이 나폴레옹 위에 덧 씌운 그 모든 후광이나 환영은 이 책의 경악스러운 리얼리티 앞에서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어. (중략) 나폴레옹은 인간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인간들의 그러한 약점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거야!"
그 책은 하루 뒤(1829년4월7일) 괴테의 고백에 따라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기'로 밝혀 지는데, 괴테는 덧붙인다.
"나폴레옹은 훔멜이 피아노를 치듯 능숙하게 세상을 다루었어. (중략)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의 이집트 원정과 관련해서 꾸며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전해져 왔는지를 알 수가 있네.  그중에는 사실로 입증된 것도 있네만, 많은 것이 사실과 전혀 다르고 대부분은 왜곡되어 있다네." (1권 498쪽)

- 에커만이 괴테의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날 때 괴테가 준 기념첩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가 내 앞을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기 - 여행하는 이들에게, 1830년4월21일 바이마르에서 괴테 - (1권 585쪽)

- 그해 11월에 괴테의 외아들 아우구스트가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괴테의 외아들 아우구스트는 에커만보다 3살 많은 1789년생이었는데, 그 죽음은 아버지 괴테의 나이 절반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큰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에커만은 괴테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수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그 아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1권 626쪽)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 에커만은 아마도 그 순간에 괴테에게 아들이 되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며, 괴테 또한 에커만을 통해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은 언제나 생각하지. 세상 물정을 알려면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러나 사실은 나이를 먹게 되면 이전처럼 현명하게 처신하기가 어려워진다네. 인간은 다양한 인생의 단계에 있어서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점 더 나아진다고 볼 수는 없는 거네.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20대에도 60대만큼 옳을 수가 있기 때문이지.
세계는 평지에서 바라볼 때와 앞산 꼭대기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원시산맥의 빙하 위에서 바라볼 때 물론 다르게 보이며, 어떤 입장에서 보면 세계의 일각이 다른 입장에서 볼때보다 잘 보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네. (1권 650쪽)

- 1831년 5월15일 일요일에 괴테는 에커만에게 말한다.
"나처럼 여든 살을 넘긴 사람은 이제 살 자격이 거의 없네. (중략) 나는 유언장에서 자네를 나의 유고 문학 작품의 편집자로 지정해 놓았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종의 계약서로서 간단하게 문서를 작성해 두었으니 나와 함께 서명해 주었으면 하네." (1권 721쪽)

- 에커만은 말한다. 나는 기력이 왕성한 그의 모습을 날마다 보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만 생각하여 그의 말을 이해하고 기록해 두는 것을 등한시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시일을 놓치고 말았는데, 나는 1832년 3월22일 수천의 고귀한 독일인들과 함께 메울 수 없는 손실을 슬퍼해야만 했던 것이다. (1권 734쪽)

- 프리드리히가 천을 헤쳐주는 순간 나는 그 신과도 같이 장엄한 사지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가슴은 넓고 솟아 있는 모양이 실로 당당했다. 팔과 허벅다리는 풍만 하면서도 부드러운 근육질이었다. 발은 고상하고 그 선이 고왔다. 신체중 어느 부분에도 살이 찌거나 너무 야위거나 쇠약한 흔적은 볼 수 없었다.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앞에 누워 있었다. 감동에 찬 나머지 나는 불멸의 영혼이 이 육체에서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잠시 동안 잊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한없이 깊은 정적뿐이었다. 나는 옆으로 몸을 돌려 참았던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1권 739쪽)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에커만에게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는 괴테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괴테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에커만의 자화상은 참으로 뭉클하다.  사실상 1,2부를 함께 실은 1권만으로도 괴테와의 대화는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괴테와 만난지 2년째에 그와의 대화를 정리한 원고를 괴테에게 보여줬던 에커만이 괴테의 만류로 책의 출판을 보류하는 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아픔은 있었지만 덕분에 보다 완성도 있는 책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괴테 사후 4년만에 이 책이 출판되어 괴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감동을 주었고, 에커만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에커만은 그 후 12년이 흘러 제3부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3부는 1822년부터 바이마르에 와서 괴테와의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던 자유로운 공화주의자인 소레의 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을 보자...

- 괴테와의 대화 3부의 주역인 소레는 에커만이 등장하기 전에 괴테와의 만남을 갖기 시작했는데, 특히 괴테가 역설한 색체론의 개념을 짧게 잘 정리해 준다. 괴테에 의하면 빛은 결코 다양한 색들의 합성물이 아니며, 빛 단독으로 어떠한 색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빛과 그림자의 그 어떤 혼합이나 변화에 의해서만 색이 생겨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권 31쪽)

- 남미에 정통한 훔볼트의 책을 읽으며 파나마 운하의 가치와 미국이 그곳에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괴테의 발언은 세계 정세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큰 인물로서의 괴테를 말해준다. (2권 123쪽)

- 아버지의 '헬레나'를 낭송하고 평을 하는 괴테의 아들, 그것을 듣고 느낌을 전하며... 앎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깊이가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네 말이 맞아. 주관도 뚜렸해. (중략)  고대 부분이 네 마음에 드는 것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온갖 오성과 이성이 마음껏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워서 어느 정도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단다. (2권 155쪽)

-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서 괴테가 에커만에게 질문한다.
"자네는 루벤스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런 아름다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인물들의 배경을 어둡게 말들었으니까요. (중략)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에서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 점이야. 루벤스의 위대함은 거기에서 드러나고 있네. (중략) 예술이 자연의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재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네" (2권 158쪽)

- "우리는 어떤 화가의 붓 자국과 시인의 말 하나하나를 지나치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네. 오히려 우리는 대담하고 자유로운 정신으로만들어진 예술작품을 가능하다면 똑같은 정신으로 다시 직관하고 즐겨야 하는 걸세." (2권 160쪽)

- 나 혼자만의 힘이라면 수년이나 걸릴 일을 단 하루만에 더 잘 알 수도 있을테미 말이야. (중략) 젊어서 훌륭한 작품을 쓰는 편이 젊어서 훌륭한 비평을 하는 것보다 쉬울 거라는 자네의 견해는 참으로 옳아. (중략) 특별한 재능의 표현일뿐 작가의 위대하고 원숙한 교양의 산물인 건 아닐세 (2권 168쪽)

- 활에 대한 조예 깊음 + 몰염치한 뻐꾸기의 이야기 등을 통해 새에 대한 해막한 지식을 주고 받는 장황한 대화는 흥미롭고 유익하다.

- 병이 들었는데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는 에커만에게 괴테는 말한다.
"자네는 제2의 섄디야. 반평생 동안 문짝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에 화를 내면서도 기름 몇 방울 쳐서 날마다 겪는 불쾌감을 해소할 결심을 하지 못했던 사나이 말일세." 그리고, 뜬금없이 나폴레옹의 결단성에 대한 언급으로 즉각 실천의 미덕을 권장하는 것 같다, (2권 228쪽)


- 나중에 내용 수정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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