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이 소설을 기억할 때 아마도 나는 휴고의 아파트 창가에 머물던 수백 마리의 찌르레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제이크가 휴고의 아파트에 들렀을 때 여자들의 수다 소리로 착각했던 왁자지껄한 소리... 바로 그 소리 묘사가 나를 압도 했다. 마치 새장에 갖혀 있기나 한 것처럼 유리창에 대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유리와 난간 사이에서 뛰어 올랐다 내렸다 하는 장면 묘사는 그다지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을 생각하게 하는 휴고의 이미지와 오버랩 되면서 아이리스 머독에게 푹 빠져들게 한 부부닝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휴고가 아니다. 휴고만큼 훌륭하지 못한 사나이... 그저 얼굴만 반반한 별볼일 없는 글쟁이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는 여자에 빌붙어 생활하며 불어 번역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헤대는 개념없는 청년 제이크 도너휴다. 이 소설은 제이크가 프랑스에서 돌아와서 동거녀 맥덜린의 집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개념 없는 이 젊은이는 포스트 매지를 생각 하다가 옛 애인 애너를 찾아 간다. 친절한 애너는 그녀의 동생이자 유명 영화 배우인 새디의 경호원으로 제이크를 추천한다. 하지만 아뿔싸~ 새디의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디에게 찝쩍거리는 휴고를 막는 일이다. 휴고의 스토킹으로부터 새디를 보호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제이크는 과거 휴고의 생각을 무단 도용하여 책 '말문을 막는 것'을 출판한 적이 있는 있는 찝찝한 저작권 침해자인 것을... 제이크는 결국 휴고를 도와 그가 좋아하는 새디와 잘 되게 해주고 싶어진다. 세상에나~ 스토킹에 시달리는 의뢰자에게 스토커와 잘 풀리기를 바라는게 어떻게 제 정신이겠느냐는 말이다. 정치인 레프티의 연설 회장에서 부상 당해 병원에 입원한 제이크는 난해한 상황을 인식하고 갈등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대로 돈많고 성격 좋은 휴고는 그렇게 새디에 집착하고 있으며, 애너는 휴고에 집착하며, 제이크는 다시 옛사랑의 추억으로 애너에 집착한다. 아! 돌고 도는 꼬여버린 사랑이여~ 휴고의 애완견인 마즈를 납치하는 장면이나 생각지도 않았던 휴고와의 재회, 심야의 병원 탈출 등이 전해오는 즐거움들은 이 소설의 작가 아이리스 머독이 철학자라고 생각하기 벅찬 면이 없잖아 있다. 철학자인 그녀에게 이 책은 첫번째 소설이다. 오로지 행위를 통해서만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이 책은 탄생했다. 어쨌거나 반반한 얼굴에 얽매여 대충대충 살아가던 청년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우쳐 가는 한 청년을 즐겁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그녀 아이리스 사후에 남편 존 베일리의 회고록을 썼고 그에 기반해서 영화 '아이리스'가 개봉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도 보고 싶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