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과학 - 세종마케팅총서 1
파코 언더힐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판 표지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 팽현영 선생님으로 부터 선물받은 '쇼핑의 과학'
우선 빨간색 표지가 이뻤고, 마침 제목부터 풍기는 느낌이 독서와 쇼핑을 둘 다 취미로 하는 내게 무척 흥미를 유발시키는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다국적 마케팅 리서치 회사인 '인바이로셀'의 최고경영자인 파코언더힐이다.
인바이로셀의 조사 방식은 고객의 쇼핑스타일을 맨투맨으로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몰레카메라와 같은 방법인데, 당초의 목적이 고객의 쇼핑성향에 대한 분석인 까닭에 물건을 훔치는 등의 도덕적인 문제는 철저하게 감추고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인바이로셀의 조사원들은 조사를 의뢰한 고객의 매장에 몰레카메라를 설치하고 시시각각 고객의 반응을 살핀 후 근거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의뢰 고객의 매출증대에 많은 기여를 해왔고 그 결과와 방식을 이 책으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주관과 기억력으로 정리되는 쇼핑의 과학 사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의문과 해법이 있다.

◎ 백화점 입구에 비싼 권리금을 낸 넥타이 매장이 왜 매출이 저조한가?
◎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 남자 손님이 동행한 경우는 어떤 변수가 생기는가?
◎ 대형할인매장의 층층으로 진열된 상품의 진열방식에 따른 결과는 어떤가?

불루밍데일이라는 백화점 1층 현관문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지켜보던 본래 취지가 출입구에서의 고객 활동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었으나 의외의 수확을 얻게 된다. 백화점 입구를 분주하게 오가는 고객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피해 다니다 보니 그 권리금 비싼 넥타이 매장에 손님이 오래 머무를 틈이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조사원들은 이 사실을 백화점 경영진에게 알려 넥타이 매장을 보다 한적한 안쪽 통로로 옮기게 했으며 매출은 크게 증대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바이로셀이 20여년간 조사 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900여 개의 쇼핑의 과학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 한다. 그들은 매년 70,000여 명의 고객을 면담하고 20,000시간 분량 이상의 비디오 촬영으로 고객과 매장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노력을 펼쳤으며 쇼핑의 과학(science of shopping)이... 기존 시장 조사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들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존의 시장 조사방식은 소매 환경에서 고객의 일거수 일투족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업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했다.

기존의 조사기법을 예로 들자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계산대에 찍히는 자료를 통한 분석이었다. 고객이 결제한 영수증 자료를 보고 육하원칙에 따라 구매 방식을 판단해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석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가져올 것인지 예를 들자면... 아주 작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과자, 인형 등을 꼬마들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진열해 놓고 많이 안팔린다고 푸념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인바이로셀은 전 미국의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에서의 시장 분석 결과를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소매 전략이 성공하려면 소매 환경을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고려해 조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일정한 신체적 해부학적 능력과 성향 그리고 한계가 있고 매장은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특성과 친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쇼핑과 관련해 파코 팀이 발견한 사람들의 특징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는 고객들이 매장 출입구에서의 쇼핑을 피한다는 사실이다.

소매업자들은 흔히 매장 출입구 근처에 상품을 전시하려고 애쓴다. 누구든 출입구를 드나들면서 출입구 근처에 진열된 상품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소매업자들의 기대와 달리 매장 입구에서 나타나는 고객들의 행태는 단지 들고나는 행동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고객들은 매장 입구를 어디까지나 출입구, 현관으로 생각하지, 매장의 일부로 봐 주지 않는다. 고객의 시선을 더 오래 끌 수 있는 곳은 매장 입구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 곧 매장 입구와 안쪽 진열 상품 사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손은 많아야 둘 뿐이라는 신체 특징도 쇼핑과 관련지어보면 의미가 있다. 어느 겨울날 매장에 들어온 고객이 코트를 벗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핸드백을 집어든다면 이후에는 더 이상 다른 물건을 집어가며 쇼핑을 하기 어렵다. 만약 고객이 코트를 벗어 직접 들고 다니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고객은 자유로워진 손으로 그만큼 많은 쇼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코의 논지는, 고객은 손이 자유로울 때 더 많은 구매의욕을 느끼므로 소매업자들은 고객의 손을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맞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파코가 관찰한 어느 슈퍼마켓에서는 쇼핑하는 고객이 카트를 몰고 다니며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카트 손잡이 옆에 컵 홀더를 달아놓은 결과 매출이 크게 뛰었다. 이른바 '쇼핑의 과학'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매장인 셈이다.

물론 인간의 신체 능력이나 한계 같은 인간적 특징이 쇼핑하는 고객의 행동양태를 모두 해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인간적 특징을 공유하고 같은 환경에서 움직일 때라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예를 들면 '쇼핑의 과학'과 관련해 의미 있는 인간의 보편적 특징을 충분히 고려해 만든 광고판을 고객들이 읽기 쉽도록 아무리 절묘한 위치에 두더라도 누구나 광고를 본다는 보장은 없다. 고객에게는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적 특징 외에 성별, 연령 등 서로 다른 특징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소매 전략을 써서 성공하려면 소매 환경을 남녀 차라든가 나이 차 같은 고객의 다양한 차이를 배려해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코에 따르면 쇼핑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는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보통 남자는 쇼핑에 서투르고 흥미도 적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쇼핑에 애착한다. 그래서 소매 매장의 매출 전략은 흔히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남성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쇼핑에 따라 나서는 남성에 시각을 맞출 필요가 있다.

파코의 관찰에 따르면 오늘날 쇼핑하는 여성을 따라 매장에 들어서는 남자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남성들은 쇼핑에 쉬 지루해 하기 때문에 여성을 초조하게 하고 여성의 쇼핑 시간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만약 남자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매장에 남성을 위한 편안한 공간, 남성들이 관심을 갖고 시간을 보낼만한 뭔가를 매장에 갖춰놓는다면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쇼핑에 따라 나선 남자들이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들지 않고 느긋하게 쇼핑 할 수 있도록 놓아두지 않겠느냐, 그런 식으로 쇼핑 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한편으로 파코는 오늘날 남자들도 전보다 훨씬 많이 쇼핑에 직접 나선다는 사실 곧 변화를 중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자들은 전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고, 기혼자라 하더라도 여성들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일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쇼핑의 부담을 갈수록 여성과 함께 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전보다 쇼핑에 더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점차 여성화하는 한편 가정용품들이 기능성과 함께 내구성을 요구받는 식으로 점차 남성화하고 있다.

쇼핑에서 나타나는 성역할의 변화를 근거로 파코는 현대 소매업자들이 단지 고객 가운데 오늘 현재 존재하는 차이뿐만 아니라 사업의 모든 측면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에 주목하고 미래를 예측해 마케팅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에는 남성의 쇼핑 방식에 관심을 갖고 남성들이 보여주는 쇼핑 행태의 특징에 적응하는 소매전략이 빛을 보리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남성들은 흔히 여성용 화장품만 빼곡이 들어선 매장 속에서 쭈뼛거리며 남성용 화장품을 골라야 하는데 앞으로는 남성 자신이 매장에서 자신의 고유한 취향에 맞는 물건을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도록 남성 전용 매장을 설치하는 식의 아이디어를 내는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쇼핑학'의 관점에서 보면 쇼핑과 관련된 삶의 변화는 여성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과거 여성들에게 쇼핑은 바깥 나들이의 좋은 구실이었지만 직업을 갖고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이제는 통근과 가사라는 빡빡한 공간 사이에 낀 또 하나의 일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전히 남성과 달리 쇼핑에 강한 심리적 집착과 애정을 갖고 있다. 남성보다 인내심이 많고 무엇보다도 쇼핑에 필요한 여유 있는 공간을 원한다. 소매업자들은 더욱 여성이 편안하게 즐거운 쇼핑을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파코의 제안이다.

세번째, 소매 환경을 고객의 예술적 취향, 표현 욕구와 로맨틱한 감정에 부응하거나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축해야 한다.

쇼핑이 뭔지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쇼핑을 단지 '고객이 매장에 들러 원하는 물건을 사는 행동'이라고만 말해서는 설명이 부족할 때가 있다. IBM 컴퓨터를 사려고 매장에 들어갔던 소비자가 컴팩 제품을 들고 나온다든가 고급 양품점에 들러 잠깐 구경만 하려 했던 고객이 화려하고 비싼 옷을 사 갖고 나오는 이유는 그저 '사고픈 물건을 사는 행동'이라는 '쇼핑 론(論)'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쇼핑의 과학에서는 상품에 접근하는 고객의 소유욕을 유발하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한다. 고객이 특정 상품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쇼핑의 과학에서는 그 특별함에 대해서... 제품의 접촉, 고객을 기억하는 점원, 고객과의 대화, 친절함 등 네 가지를 꼽았다.

제품의 접촉은 핵심 사안이다. 물건을 포장해서 함부로 만질 수 없게 하는 진열대에서 물건이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판매자는 쇼핑하는 고객의 충동구매가 고객의 오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고객을 기억하는 점원,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매장을 다녀간 고객을 기억해주는 점원은 매출 증대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누구나 자신을 알아보고 기억해 주는 곳을 선호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고객과의 대화... 말 없고 무뚝뚝한 점원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고객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점원의 친절함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는 기본 사항 아닌가?

 

 

인바이로셀이 주장하는 쇼핑의 과학은 결론적으로 '쇼핑이 사회변화를 쫓아간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사람들이 사회변화를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으므로 소매업자들 역시 고객이 어떻게 살고 싶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만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매 마케팅 종사자들이 고객에게 적절히 적응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창의적 시각에서 다양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지만 기업의 마케팅 및 홍보 담당자라면 필독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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