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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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문집으로 만난 내 세번째 도리스 레싱은 그녀의 처녀작이었다. 

인종 갈등과 한 많은 여인의 삶을 냉정하게 써내려가는 그녀만의 독특한 글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와 형제가 세상을 떠난 후 도시로 나갔다. 어느덧 서른을 넘긴 그녀는 아무런 고민없이 독신으로 행복하게 지냈으나 불현듯 초라한 자신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하다며 수군거렸고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잘 다니던 직장에도 적응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극장에서 농장을 경영한다는 노총각 리처드를 만났다. 그녀는 그 청년과 결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그 결혼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메리는 선천적인 모성애로 자신을 리처드라는 미천한 남자에게 선물로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이란 남자로 하여금 모욕당한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딱 끄집어내서 불평을 하려고 해도 마땅한 불평거리가 떠오르지 않고 김이 팍 새도록 만들면서, 성관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로나 자신을 초연해지도록 만들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95쪽

읽다보니 매력적인 문장이다. 어떨결에 신혼초야를 치른뒤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메리를 표현한 글이다. 스스로 자격없음에 리처드는 자기비하에 빠지고 우울해지는데 오히려 보듬어주는 메리의 모성애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아가는 주부... 불쌍한 터너 부인...

리처드는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데도 백토 칠을 그처럼 자신 있게, 그리고 능률적으로 하는 메리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메리가 그처럼 지나칠 정도의 정력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난 리처드는 자신감이 더욱더 없어졌는데, 그러한 특질이 자신에게는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108쪽)

내세울 것도 없는 리처드가 늙은 원주민 샘에게 함부로 대하고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 인종 차별적인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메리의 관점이 지나가고, 오래도록 노총각이 방치했던 더러운 집의 분위기를 폼나는 신혼집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보여준 메리의 열정적인 모습에서는 오랜세월 은근히 차별받아온 여성의 모습이 극복되어질 조짐이 보인다. 무능한 농부... 불쌍한 리처드...

메리가 리처드만 믿고 따라온 이곳 남로이디아(지금은 짐바브웨) 농장 생활은 비참하다.
가장 가까이 사는 찰리 슬래터 부부와 만나는 것도 불편하고, 원주민들은 더더욱 싫다. 백인들은 어떤 특정 원주민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극히 그 집단을 혐오한다. 지독하게도 가난한 리처드는 가정 형편상 애를 갖는 것도 미루고 병원비도 내지 못할 정도다. 지독히도 가난한 터너 부부, 그들이 그렇게 가난하다면 그가 경영하는 농장의 인부나 그 집안일을 거드는 하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가난할까? 그들의 가난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벗어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메리는 그 지옥같은 생활이 싫어 자신이 생활하던 도시로 가출한다. 시골 생활 6년만에 돌아간 도시는 낯설다. 결국 도시에서 좌절한 그녀는 오갈데가 없는데, 마음씨 착한 리처드 마침 찾아와서 돌아가자고 애원하고 그녀는 마지못해 귀가한다. 리처드는 추한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상한 사람이다. 메리가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바라보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리처드는 그 오랜 세월 메리에게 모욕을 당하며 살아왔지만 그 자신은 그녀를 모욕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어느날, 늘 운이 없어 불행했던 리처드가 말라리아에 걸린다.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점점 가난에 이골이 날무렵 리처드가 병이 들었는데, 멀리서 찾아온 의사는 그들의 형편을 한 눈에 알아보고 병원비도 받지 않은 채 돌아간다. 불쌍한 리처드가 앓아 누워 있을 때 농장 일에 불가피하게 나선 메리는 남편이 무능한 이유로 자신들이 가난했음을 발견한다. 이제 메리는 그를 모욕하고 경멸하기도 모자라 분노하게 된다.

남편 대신 농장의 인부들을 다루면서 일 잘하는 모세에게 잔인한 채찍질을 가하는 메리는 이미 신경쇠약 상태다. 메리는 남편보다 더 원주민(흑인)들을 경멸하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춰지는데, 그것은 그녀 자신이 한많은 환자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인들을 까탈스럽게 다루는 그녀는 결혼 후 오랫동안 하인들을 괴롭히고 갈구는데, 그녀의 성격을 버텨내는 하인은 없다. 결국 농장의 인부 중에 일을 잘하는 모세를 차출한 리처드가 그에게 집안일을 돌보라고 들어 보낸다. 언젠가 메리가 내리친 채찍질로 인해 얼굴에 흉터가 생긴 바로 그 모세가 2년만에 그녀의 일손을 거들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심한 거부감을 가졌지만 그런대로 그 하인의 일처리 방식을 만족하고, 자신이 가혹한 안주인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모세도 차분하게 여주인을 잘 따른다.

메리가 이 시골 농장에 내려온지 10년도 훨씬 넘는 기간 동안 동네 사람들은 터너 부부의 생활을 잘 모른다. 리처드가 메리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둥 엉뚱한 헛소문이 나돌기도 한다.
오로지 슬래터만이 그들 부부와 연락을 하며 지내는 백인이다. 하지만 부유한 찰리 슬래터의 마음은 딴데 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리처드가 망하고 그 농장을 헐값에 매입하여 목초리로 개발할 속 마음을 오랫동안 감춰왔던 것이다. 곧 망할듯 하면서도 망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나 근근히 살아가는 순진한 리처드에게 짜증이 날 정도다.
찰리 슬래터는 단도직입적으로 리처드에게 농장을 매각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신경쇠약에 걸린 부인과 함께 잠시 요양을 하고 돌아오면 그 농장(목초지) 관리인으로 일자리까지 보장한다. 리처드가 떠날 동안 농장을 맡아서 관리할 영국 청년 토니가 나타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토니는 터너 부인(메리)과 모세(하인)의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묘한 관계를 발견하는데, 이 즈음 리처드는 다시 한 번 병이 들고 메리는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 할 정도로 병세가 깊어진다. 그녀는 리처드가 죽는 꿈을 꾸고 좋아하는 자신에 놀라다가 꿈에서 깨어날 정도로 리처드를 증오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찰리에게 농장을 매각하고 떠나기 전날 밤, 몽환적인 상태에서 메리가 죽는다.

메리의 일생이 측은하다. 안방에 먼저 잠든 마누라도 측은해 보인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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