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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이사벨 아옌데를 읽는다는 것은 시간 떼우기에도 좋지만 즐겁다. 기발하다.
그녀의 환상적인 글발은 단 한 줄도 놓치기 아까울만큼 매력적이다. 읽다보면 계속 웃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놀랄 정도로 재미있다.
영화 '황비홍'에서 인상적이었던 "金山!金山!"을 부르짓는 19세기 중국의 풍경과 마르케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읽는 듯한 매력적인 남미 풍경과 사람들, 다양하게 접해온 서부 개척시대의 무질서와 인간의 욕심들이 넘쳐나는 복합적인 식민지의 문화...
귀엽고 깜찍한 혼혈 소녀, 우아한 영국 노처녀, 터프한 영국인 선장, 치밀한 영국인 사업가, 광산에 투자하여 벼락부자가 된 히스페닉계 형제들, 도덕적이고 가정적인 네덜란드 선장, 칠레 창녀, 약에 쩔어 몸을 팔면서 죽어가는 중국 창녀들, 고상하게 살아가는 영국인들, 선교사로 위장한 도박꾼, 칠레인지 멕시코인지 출신이 불명확한 양키를 떨게하는 히스페닉계 건달, 정열적인 중국 한의사, 영국인 의사, 미국 포주, 곰과 싸우는 소 등 다국적 인간들 및 짐승 캐스팅과 발파라이소, 산티아고, 샌프란시스코, 사크라멘토, 광저우, 홍콩, 칠레, 런던, 암스테르담을 잇는 대규모 해외 로케이션... 그것도 모자라 이미 죽은 귀신들까지 간간히 출연시키는 빈틈없는 시나리오... 죽여준다!
다만 이 책이 아쉬운 것은 7년전 같은 역자에 의해 출간된 책을 80% 가격상승을 가져오며 두 권으로 분 권한 데에 대한 실망이다. 굳이 한 권으로도 충분한 책을 왜 두 권으로 분권 하면서까지 책값을 올려대는지 민음사가 얄밉지만 어쨌거나 줄거리는 이렇다.
1832년 3월15일, 칠레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 위치한 소머스 남매의 집 앞에 출신을 알 수 없는 어린 아이가 버려진다. 출처 불명(?)의 여자 아이를 처음 발견한 미스 로즈는 그 아이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엘리사'라고 이름 지어주고 영국식 교육으로 귀하게 키운다. 나날이 사랑스럽게 성장하는 엘리사는 미스 로즈의 전부였고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명품숙녀(?)로 양육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뜻대로 안되는 법, 누가 봐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엘리사가 하찮은 첫사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범선을 타고 가출해 버린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이 배은망덕한 소녀가 이제부터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중국인 타오 치엔 뿐이다. 양키들 눈에 갖잖아 보이는 혈통의 두 남녀의 목숨을 건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오와 엘리사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도착한 샌프란시스코는 원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예르바 부에나라는 곳이었다. 주민 500명도 안되는 벽촌이었던 이곳은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미국인들은 그곳을 점령했고, 인디오들과 멕시코인들로 이어진 그곳의 역사를 말끔이 지워버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 욕망의 뒤안에 '부족없는 톰'이라는 가족과 형제를 전부 잃고 떠도는 인디오 소년의 슬픔도 묻어 있다.
1849년을 전후로 몰려든 그 골드러쉬의 인파들을 역사는 49세대라 부른다. 캘리포니아의 49세대들은 처음에 대부분 명예롭게 행동을 하다가도 서서히 변해갔다. 그곳에는 밀림의 법칙만이 존재하며 유일하게 통용되는 이데올로기는 탐욕 뿐이었으며, 타오의 말대로 금산(金山)은 그저 지옥에 지나지 않았다.
금을 찾아 전세계에서 몰려온 남자들의 눈에 보이는 여자들은 욕구 충족의 대상일 뿐이고, 아무리 많이 공급된다해도 창녀들의 수요는 부족하다. 생존을 위해 엘리사는 남장을 하고 칠레 청년 '엘리아스 안디에타'가 되어 타오를 따라 다니다가 어느 순간 서로 떨어져 각자의 길을 떠난다.
사크라멘토와 샌프란시스코, 광산 라베타마드레를 떠돌며 각자의 목적을 행하는 엘리사와 타오 치엔이 주고받는 애틋한 편지들은 뭉클하다.
"엘리사,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게. 그 호아킨이라는 작자를 1년 내에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랑 결혼하자."
그들의 눈에 제3세계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타오 치엔이 엘리사에게 던지는 멘트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의 용기다.
흑인 노예들이 병이 나면 수의사를 부를 정도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부 미국에서 타오 치엔은 당당하게 실력으로 우뚝 선 의사가 된 인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치 독일 시대에 유태인에게 구원이었던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변태라는 오해를 받아 가면서 중국에서 팔려와 죽음에 임박한 싱송걸스를 사는데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타오 치엔의 리스트가 있다.
일제시대에 우리에게 이완용과 안중근이 공존했 듯... 이 소설은 민족을 배신하고 조국의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만들어 부를 축적하는 아이 토이가 있고, 반면에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켜 낸 타오 치엔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옌데가 중국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펜을 통해 긍정적으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중국이 부러웠다. 나는 이 멋진 이야기에 시선을 쏘아대던 내내 우리 단군의 후손들도 세계적인 문학 속에 이처럼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그려 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엘리사가 그리워 하던 타오의 신선한 바다향은 어떤 느낌일까?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이 소설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에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놀라운 기억력과 뛰어난 후각에다 사랑스러운 후원자들에 둘러 싸인 엘리사 소머스는 과연 첫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무시무시한 조, 악당 바발루와 함께하는 창녀클럽 '더러운 비둘기들'이 판매하는 음란 퇴폐 소설의 원작자는 누구일까?
엘리사 출생의 비밀을 알고도 침묵을 지켜온 사람들은 과연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칠레에서 사기꾼으로 매장되었다가 미국에서 기자로 화려하게 부활한 제이컵 토드의 순애보는 로즈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
엘리사의 첫사랑으로 그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떠난 호아킨 안디에타는 어디에 있을까?
캘리포니아의 로빈후드라고 미화된 악당 호아킨 무리에타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승으로부터 222가지의 사랑의 기술까지 전수받은 타오 치엔은 엘리사에게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있을까?
타오 치엔의 죽은 아내로 아직도 그의 삶에 끼어들며 긍정적인 조언을 해주는 귀신 린의 속 마음은 뭘까?
그 자신이 중국 여인이면서 중국인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만들어가며 부를 축적하는 아이 토이의 속셈은 또 뭘까?
포악한 성격의 아우구스틴 델 바예의 딸로서 사업수완이 뛰어난 파울리나는 어떻게 될까?
벼락부자 펠리시아노 로드리게스 데 산타크루즈는 누구랑 결혼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