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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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발표된 '지상의 양식', 1935년에 발표된 '새로운 양식'을 통합한 이 책은 불멸의 작가로 평가받는 '앙드레 지드'의 사상적인 자서전이라 불린다. 처음 발표되었던 110년 전에는 철저하게 외면 받았던 작품인데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해서 오늘 날까지 빛나고 있다.
순간에 천착하고, 욕망에 충실하고, 모든 정신적인 굴레를 벗어 버리라는 앙드레 지드의 주장은 다 읽은 뒤에 이 책마저 버리라고 충고하고 있지만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버리고 안 버리고는 내 맘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지드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내 방식이 아닐까?

몇 가지 기억하고 싶은 글을 메모 한다.

기억하고 싶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누라 몰래 동성애를 즐겼던 앙드레 지드를 이해하지만 나도 따라 즐기고 싶지는 않듯이...

내가 불태워 버린 것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오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머리가 피로한 것은 모두 잡다한 그대의 재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이 그 모든 것들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리하여 그대는 삶만이 유일한 재산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삶의 가장 짧은 순간일지라도 죽음보다 강해서 죽음을 부정한다.죽음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삶들을 허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삶의 어떤 형태라도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더 오래 그것을 붙잡아 두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대의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은 행복하여라. 그 밖의 시간에는 귀를 기울여 들어라. 그러나 그대가 말을 할때는 귀를 기울이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그대 안에 있는 모든 책들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


롱드, 내가 불태워 버린 것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학교 교실 책상앞 조그만 걸상에 앉아 읽는 책들이 있다.

걸어가며 읽는 책들이 있다.
(책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숲에서 읽는 것, 또 어떤 것은 다른 들판에서 읽는 것,
그리하여 키케로는 말했더라.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전원에 있으니."
어떤 것은 내가 마차 안에서 읽는 책,
또 다른 것들은 헛간의 건초 더미 속에 누워서 읽는 책들.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한 책도 있고
영혼을 절망케 하는 책도 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책들에서는 신에게 이르지 못한다.
개인의 서가가 아니면 꽂아둘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양봉(養蜂)에 관한 이야기만 쓰여 있어
어떤 이들에겐 너무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책도 있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읽고 나면 산보할 필요가 없어지는 책도 있다.

점잖은 어른들에게는 멸시를 받지만
어린 아이들은 흥미진진해하는 책들도 있다.

사화집(詞華集)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무슨 주제에 대해서든 좋은 말은 모두 다 모아놓은 것도 있다.
그대들이 인생을 사랑하도록 해주려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쓰고 난 뒤에 저자가 자살하였다는 책도 있다.
증오의 씨를 뿌리고
뿌린 것을 스스로 거두는 책들도 있다.
황홀함이 가득하고 감미로울 정도로 겸허하여
읽으면 광채가 나는 듯한 책도 있다.
우리보다 순결하며 우리보다 낫게 살아간 형제들처럼
우리가 아끼는 책들이 있다.

비범한 글씨로 쓰여 있어서
깊이 연구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나타나엘이여, 이 모든 책들을 우리는 언제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서 푼짜리도 못 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값진 책들도 있다.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다른 책들도 있다.

정오의 나뭇잎 소리보다
더 부드러운 말로 된 책들도 있다.
파트모스 섬에서 요한이
쥐처럼 뜯어 먹은 것은 한 권의 책이지만 (요한계시록 10장9~10절)
나는 차라리 나무딸기가 더 좋다.
그 때문에 그의 오장육부는
쓰디쓴 맛으로 가득히 찼고
그 후 그는 온갖 환상을 보았다.


바닷가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 지상의 양식 39쪽 중에서-



※ 이 글에 등장하는 나타나엘(Nathanael)은 히브리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詩人은 그의 글 속에 제자를 예수의 첫 제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후에 '새로운 양식' 후반부에서 詩人은 나타나엘 대신에 동지(camarad)로 교체하여 상대한다.






자연의 모든 노력은 쾌락을 지향한다. 쾌락은 풀잎을 자라게 하고 싹을 발육하게 하며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 화관(花冠)을 햇빛의 입맞춤에 노출시키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혼인하게 하며 둔한 유충을 번데기로 변하게 하고 번데기의 감옥에서 나비를 해방시키는 것도 쾌락이다. 쾌락에 인도되어 모든 것 것은 최대한의 안락, 더 나은 의식, 더 나은 진보······를 동경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보다 쾌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 명쾌함보다는 난삽함을 더 많이 발견했다.


- 새로운 양식 260쪽 중에서 -


나는 가끔, 대개는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에 대하여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자들을 나의 적으로 만들어 놓을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로는 따분해 죽을 지경인데도 재미나는 척했고, 사람들이 "좀 있다 가시죠······." 하는 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용기를 못 내고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마음의 충동을 이성으로 제지했다. 반면에 마음은 침묵하는데도 말을 하는 일이 지나치게 잦았다. 나는 가끔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어리석은 짓들을 했다. 반대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들이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감히 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Laudator temporis acti" : "온통 지나간 시절만 좋았다고 떠드는" 늙은이들에 대하여 호라티우스가 한 말.)는 늙은이들이 마음 쓰는 가장 부질없는 일이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그 후회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의 뜻을 되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나를 그쪽으로 부추긴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후회, 나의 회한의 성질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행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젊은 시절에 내가 할 수도 있었고 했어야 옳았으나 모랄 때문에 하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후회다.
······중략······
당신이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당신과 함께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내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유혹에 졌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다른 유혹들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유혹들이 이미 매력을 잃고 나의 사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청춘을 어둡게 만든 것을, 현실보다 공상을 더 좋아했던 것을, 삶에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


- 새로운 양식 271쪽 중에서 -


오, 그대, 동지여!(지상의 양식에서는 나타나엘이라 불렸던 대상을 여기에서 '동지'라고 부른다.)
나는 다 살았다. 이제 그대 차례다. 이제부터 자네에게서 나의 젊음이 연장될 것이다. 내 그대에게 권능을 넘겨준다. 그대가 내 뒤를 잇는 것을 느낀다면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희망을 건다. 그대가 굳세다고 믿으면 나는 미련없이 삶과 작별할 수 있다. 나의 기쁨을 받아라. 만인의 행복을 중대시키는 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삼아라. 일하고 투쟁하며 그대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느 것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것이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라. 비겁하지 않고서야 인간이 하기에 달려 있는 모든 악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법. 예지가 체념 속에 있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거든 다시는 그렇게 생각지 않도록 하라.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 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떤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 새로운 양식 296쪽 중에서 -

 

 

끝으로 이 책의 표지, 구스타프 클림트의 '물뱀1'이라는 작품의 일부를 표지 디자인에 응용한 것은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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