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설계(?) 된 비현실적인 로맨스가 있다.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은 난해하다. 먼저 이런 상상을 해보자. 사고를 치고 쫓기던 나는 어느 낯선 아파트에서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외롭게 혼자서 아파트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동안 늘 불이 꺼져 있는 맞은편에 아파트에 불이 들어오고 몇 몇 사람들이 나타나 생활을 한다. 심심하고 고독한 생활을 하던 나는 그 집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음에 젖어들고 그들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한 명 발견한다. 자꾸 보다 보니 그 처녀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다람쥐 채바퀴 돌듯이 반복적인 생활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처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점점 깊어가고 이제는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그녀의 이름도 알게 된다. 외로운 나는 도피 생활을 그만하고 그냥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는 사이버 인간이었고, 주변 인물들도 다들 사이버 공간의 존재들이었다. 그녀와 함께 등장했던 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그 사이버 공간을 설계하고 발명한 사람이다. 그 신기술을 발명한 남자의 이름은 김철수다. 나는 그 아파트에서의 생활을 수기로 남기고, 그 수기의 제목은 '철수의 발명'이 좋겠다. 철수와 그녀의 되풀이되는 일상의 관계들을 지켜보는 나는 한없는 질투를 하며 괴롭고, 쫓기는 이 현실을 도피하여 차라리 그 사이버 공간에서라도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죽음을 선택한다면? 모렐의 발명은 현 시점에서 딱 이런 스토리로 해석할만한 그런 작품이다. 아파트 대신 외딴섬, 철수 대신 모렐 정도만 오간다면 그다지 어색하지 각색이가능한 작품 말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땅을 뚫고 지구를 그대로 통과하면 나타나는 나라 사람이 무려 70년 전에 쓴 바로 그런 비슷한 소재의 몽환적인 작품이다. 책은 그다지 두껍지 않으나 몽롱하고 쉽게 읽히지 않았다. 이렇게 멋진 소설을 만들어 낸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참 매력적으로 읽혀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