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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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지금의 보스턴 땅을 배경으로 청교도 사회의 모순을 비웃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몇년 전, 데미무어와 게리 올드만, 로버트 듀발 주연으로 영화 '주홍 글씨'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원작 소설과 아주 많이 다르게 각색되어 나름대로 흥미를 제공했었다. 하지만 민음사 세계문학의 읽는 즐거움을 따라하기엔 많이 모자란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은 생후 3개월된 아이를 안고 나오는 주홍 글자의 여인이 처형대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가끔 얼굴을 붉히기는 했으나 결코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며 우아한 기품이 있었다. 그녀 가슴에 장식된 주홍 글자 또한 죄인의 표식이라기 보다 화려한 장식품으로 보여질 정도였다. 대중들은 그녀를 더 가혹하게 다루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간통으로 아이를 낳은 그녀에게는 세 시간 동안 그렇게 처형대에 서서 수치심을 느끼고, 평생을 가슴에 주홍 글자 A를 달고 살라는 형벌만이 내려졌다. A는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의 첫 글자였다. 젊은 목사 딤스데일이 그녀에게 간통한 상대 남자의 이름을 밝히라고 그녀를 설득하였고, 그녀는 끝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늙은 사내가 있었고 그녀 또한 그 사내와 눈을 마주 치고 있었다. 그 늙은 사나이는 신대륙으로 오다 조난당했다가 인디언들에 의해 구조되어 오래도록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다 온 의사로 로저 칠링워스이다. 이야기는 평범한 소설들과 달리 돌아가지 않고 로저 칠링워스가 행방불명되었던 그녀의 전 남편이며, 불구자(?)임을 밝히고 들어간다.

칠링워스는 어느 날 딤스데일 목사에게 묻는다.
"목사님은 헤스터 프린이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덜 비참하다고 생각하나요?"
"정말로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 여인을 대신해서 뭐라고 대답할 순 없지요. 그녀의 얼굴에는 보지 않으면 좋을 괴로운 표정이 어려 있어요. 그렇더라도 가슴속에 비밀을 완전히 숨겨두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저 가엾은 여인 헤스터처럼 괴로움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게 나을 겁니다." (130쪽)

헤스터에게 오직 한 가지 변명거리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파멸시켰던 것보다 더 무서운 파멸로부터 목사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정체를 숨기려는 로저 칠링워스의 흉계를 잠자코 따르는 길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그 길을 선택했지만 지금 보이는 바로는 이 두 가지 방법 중에서 도리어 더 비참한 쪽을 버렸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도 가능하다면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기로 마음 먹었다. (175쪽)

헤스터 프린으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추방당하고 치욕 속에서 지냈던 지난 7년은 한낱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서 딤스데일은 어떤가! 만약 이런 인간이 또다시 타락한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가볍게 해 달라고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오랫동안 극도의 고통을 받아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그의 마음이 고통스러운 가책 때문에 혼미해지고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 스스로 죄를 고백한 죄인으로 도망쳐야 할 것인지 위선자로서 그냥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그의 양심은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 인간이라면 죽음과 치욕의 위험과 원수의 헤아릴 길 없는 흉계를 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들고 지치고 비참한 모습으로 쓸쓸하고 황량한 길을 가고 있는 이 가련한 순례자에게 그가 지금 속죄하고 있는 가혹한 운명 대신에 인간적인 애정과 동정의 한 가닥 빛이, 새로운 삶, 참다운 삶,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밖에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25쪽)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무엇 때문에 그 과거를 저버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거지요? 자, 보세요! 저는 이 징표와 함께 과거를 말끔히 씻어 버리고 그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만들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헤스터는 주홍 글자를 매단 고리를 벗겨 그것을 가슴에서 떼어 내어 저 멀리 개울가로 내던져 버렸다. (227쪽)

하지만 이렇게 가슴에 주홍 글자가 없는 엄마를 발견한 귀여운 소녀 펄은 엄마에게 무언의 몸짓으로 항의를 하고, 헤스터는 결국 딸의 강요에 못이겨 개울가로 다가가 주홍글자를 집어 들고 다시 가슴에 달았다. 그것을 집어 던질 때의 희망을 뒤로 하고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다시 자신을 옭아맨다.

결국 헤스터, 딤스데일, 칠링워스의 삼각 관계 속에 희망의 존재가 된 소녀 '펄'의 이야기는 죄의 성격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이야기이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가 간음(Adultery)의 첫 글자였다가 능력(Able)이나 천사(Angel)로 재해석 되는 등 헤스터는 시간이 흐를수록 승리자가 된다.
영화와 다른 전개와 결말이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모르지만 딤스데일이 양심적인 고백을 통해 영혼이 자유로운 죽음에 이르는 장면도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대학시절 호손은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농담섞인 고백으로 작가의 길을 예고한다.

"남의 병으로 먹고 사는 의사가 되기도 싫고, 남의 죄로 먹고 사는 목사가 되기도 싫고, 그렇다고 남의 싸움거리로 먹고사는 변호사가 되길도 싫습니다. 그러니 작가가 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직업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마흔 여섯에 이르던 1850년 2월초 어느날 그 명성을 널리 퍼지게 만든 바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1864년까지 겨우 7,800부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모차르트나 고흐처럼 살아있는 동안 경제난에 허덕이는 등 극단의 불행을 겪지 않았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주홍 글자의 저자 이름은 '너새니얼 호손'이라고 소개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4권이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인 것을 생각할 때 같은 시리즈 책에서 한 작가의 이름을 통일되지 않은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Nathaniel Hawthorne이라고 영문 표기를 그대로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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