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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고나서 떠오른 것이 있다. 바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오래된 소설이다. 특별한 연관성 보다도 그 소설 주인공 강민주가 비명(非命)으로 생을 마치던 순간을 생각하면 소망과 불행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작가 페터 한트케에게 삶을 준 여자의 이야기와 또 작가가 생명을 만들어 준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피가 섞인 두 여자의 이야기가 두 가지의 중편소설로 잔잔하게 엮어진 깊은 사색의 소설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소망 없는 불행'이다.
이것은 어머니의 자살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유부남을 사랑해서 임신(작가 자신)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중인 그녀(어머니)에게 청혼해서 같이 살게된 법적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 여자이기에 더욱 힘들었을 암울했던 시기를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작가에게는 냉정한 프로정신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오스트리아가 조국인 작가는 패전으로 끝난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쟁 후 사회 모순과 고난을 그리며, 그 역사 속 희생냥인 어머니의 일생을 글로 남겼다. 관찰자로서 우울한 그 시절을 회고하는 작가의 무덤덤함이 오히려 서글픈 글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딸 아미나의 어린시절 이야기인 '아이 이야기'이다.
한트케의 첫번째 부인은 연극배우였고, 그녀와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 폐쇄적인 성향을 이 남자가 아내와 결별한 후에 짐(?)을 하나 떠 맡는다. 그 짐은 바로 자신의 핏줄인 딸을 키우는 일이었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선택한 길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이의 눈망울에 빠져들고 차츰 주변 환경에 적응해 가게 되는데,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무렵 '남자가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혼자 있는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발견은 참으로 멋진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모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모국어를 사용할 때 아이의 모습과 프랑스어를 사용할 때의 아이 모습에서 주는 진정성의 문제 또한 작은 울림을 주었다.
페터 한트케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화가 한 편 떠오른다.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Ueber Berlin)이었는데, 일본에서 번역한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다보니 우리나라에는 '베를린 천사의 시'로 개봉된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그 영화는 친구 빔 벤더스 감독과 공동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작품이다. 아울러 살인 뒤 쫓기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한 소설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은 내가 참으로 유쾌하게 읽었던 '아내가 결혼했다'에 인용되어 더욱 인상 깊게 박혀 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기억할만한 페터 한트케의 작품은 희곡 '관객모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