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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두르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1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완독의 목표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100쪽을 넘기고, 200쪽을 넘겨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 방식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고, 책을 덮던 그 순간에도 '내가 도대체 뭘 읽은거야?'하는 난감함에 빠져버렸다.
나의 이러한 당혹감을 예견이나 한 듯 곰브로비치는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 두었다.
"피아니스트가 단상에서 쇼팽을 연주할 때 여러분은 그 음악의 마법이 한 천재 예술가의 천재적인 연주를 통해 청중을 열광시켰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열광한 관중은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쇼팽이 천재였다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만큼 열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흥분한 관객이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치고 날뛰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고 황당한 나에게 상당수 지식인들의 극찬은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나는 이 소설에 불만이 많지만 수잔 손택이나 밀란쿤데라, 질 들뢰즈, 존 업다이크 등 세계적인 명망가들과 김영룡 문학평론가, 최건영 연세대 교수, 최성은 박사 등의 호평으로 다시 되새김질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속물인가? 아무도 평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들을...
하지만 결국, 나는 되새김질을 하고서도 뚜렷한 발견에 성공하지 못했다. 내용은 알겠으나 곰브로비치가 말하고, 명망가들이 고개를 끄덕인 미성숙에 대한 발견에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무슨 일인지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이다. 나의 미성숙인가? 미쳐버릴 듯한 혼돈과 혼돈의 산만했던 독서와 되새김질, 막연히 뭔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132쪽 곰브로비치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볼 뿐이다.
"우리 인간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영원한 미성숙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우리 먼 후손에게는 말도 안되게 어리석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어리석음, 미래가 되면 드러나게 될 그 어리석음의 몫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나의 줄거리 요약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공이 유죠 코발스키는 서른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실 적응력이 모자라고 언제나 우왕좌왕한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린아이로 변해 버렸다. 물론 겉모습일 뿐 내면의 세계는 서른 살 그대로이다. 그리고, 납치되다시피 황당한 학교로 입학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순진함'을 주입시키는 학교의 교육철학 속에서 저급한 ‘건달 미엔투스와 청년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시폰의 대결로 전반부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중반에 돌입하면 다시 한 번 황당무계한 장면전환이 이뤄진다. 총합론자 필리도르 박사와 분석론자 안티-필리도르 박사의 대결은 정말 머리가 눈을 따라갈 수 없는 난해함의 본궤도일 뿐이다. 중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공간인 므워드지아코프씨네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현대적 여고생(주트카)과 유죠의 대립, 구닥다리 훈장 '핌코'와 유조의 대립, 주트카와 핌코의 시간적 가치 대립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앞에서 전개된 필리도르 이야기와 대립되는 필리베르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황당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주인공이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 이모의 집이 배경이 된다. 그리고 역시 황당무계한 이야기... 시골 귀족과 하인들의 관계, 사촌 누이 조시아와 바르샤바로 다시 떠나는 마무리... 독자들을 향한 마지막 한 마디는"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