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곤 쉴리의 자화상이 차지한 표지부터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중편소설 '인간실격'과 단편소설 '직소'로 구성되었다.

유독 자살이 많은 일본 근대 문학인들의 삶을 경험 하노라면 그들이 사무라이의 후손다운 선택을 하는 것인가 하는 무덤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타무라 도코쿠(1868~1894), 가와카미 비잔(1869~1908), 아리시마 다케오(1878~1923),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그리고, 바로 이 책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무덤 앞에서 자살한 다나카히데미쓰(1913~1949), 미시마 유키오(1925~1970),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에토 준(1933~1999) 등 마친 전염병처럼 죽어간다.

그러한 풍토 탓인지 다자이 오사무가 다섯번의 시도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그냥 '아, 그렇게 죽었구나'하는 생각으로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다니 내가 자살에 너무 무덤덤해진 것이 오히려 충격적이다.
이 책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미수와 자살 재시도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자살을 앞두고 완결한 작품이다.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미성숙한 인간, 인격체로서 인정받기 부적합한 실격의 인간으로 묘사되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우울한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읽기를 시도하려고 시리즈중 가장 얇은 편에 해당하는 이 책을 맨 처음 선택한 어떤 아가씨는 내용이 난해했던 탓인지 독서 계획을 포기했다 한다. 그녀의 선택이 안타깝다.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로 다자이 오사무를 꼽고 있다. 또한 다자이는 '무뢰파'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일본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다자이에게 있어서의 데카당은 단순한 퇴폐주의가 아니라 패전 후라는 일본의 독특한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기성세대의 가치관 및 윤리관, 도덕관이 패전과 함께 붕괴되면서, 다자이의 (기성세개의 관점에서 볼 때)타락과 자기 파괴적 언행은 기존 사회에 속한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철저한 무(無)에서부터 새로이 시작하고자 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몇몇 다자이 연구가는 '인간 실격'을 분석하기를, 세상을 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남성세계와 비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여성 세계로 나누었을 때 사회의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남성 지배 세계에서 소외된 '요조'가 결국은 어느 세계에도 귀속하지 못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증명해 보인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인간 실격' ㅁ나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위선적인 인간상을 대표하는 등장인물들인 요조의 보호자 '넙치'와 악우(惡友) '호리키'가 드러내는 상식적인 인간상의 (적어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당당히 존재 가능하다.) 추악함은, 이 사회의 틀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한다.

마치 인간실격의 부록처럼 후미에 간단히 소개되는 요설체(饒舌-)의 '직소' 는 그가 결혼한 후에 상대적으로 행복했을 인생의 안정기에 쓴 작품이다.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자리에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서술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반적이 해석과 달리, 예수를 흠모하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거부당한 데 대한 분노와 반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는 유다의 갈등과 번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는 유다를 배신자로 지목한 기록이 없다. 예수는 유다에게 "가서 네가 할 일을 하라."라고 하고 있다. 유다는 예수의 영광을 위해 설정된 인간이었을 수 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말하듯 예수가 없었다면 유다의 고뇌도 없었을 것이다. 다자이는 이 작품에서 예수와 유다 양쪽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으나 외곬이며 질투 많고, 애정과 증오 사이에서 흔들리는 유다 상의 조형은 유다에 대한 다자이의 관심이 예수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넘기느니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고 유다가 결심하는 부분이라든가 "돈, 세상은 돈이면 다야.", "나는 필경 장사꾼이지. 돈푼깨나 생길까 하고 쫓아다녔지만 글렀다는 것을 알고 배반한거지." 와 같은 유다의 자학은 탁원한 심리 통찰이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