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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톨스토이는 '러시아 혁명의 거울'이라 불리운다.
작가가 70대에 완성한 작품 '부활'에서도 확실히 당대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방탕하게 살아가던 한 청년 귀족이 자기 때문에 신세를 망치고 창녀가 된 한 여인과 우연히 재회하면서 그녀의 타락에 대한 죄책감으로 개안하는 과정과 그 청년으로 인해 역시 정신적인 부활에 이르는 그 창녀의 숭고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 작품의 기본 슈제트는 유명한 법률가 A.F.코니가 톨스토이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소송 사건에 의해 규정된다. 쉽지 않은 단어 슈제트(syuzhet)를 내가 언급하는 것은 이 번역서 본문에서도 몇 차례 읽혀지던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인데, 러시아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문학 작품에서 사건의 일정한 체계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아무튼 톨스토이는 코니의 이야기 중에서 '불쌍한 로잘리야 오니와 그녀의 유혹자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 처음 이 원고작업에 착수하여 1889년 12월26일에 미완성 초고를 쓴다. 다시 1년 후에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손보지만 역시 미완성으로 끝난다. 이렇게 수 차례의 원고 수정 작업 끝에 1899년 11월 '부활'은 완성된다.
영국시인 매튜 아널드(Matthew Arnold)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라며 극찬했었는데, 총3부로 구성된 '부활' 제1부 59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명문장이 나온다. 이런 멋진 문장들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결코 과찬이 아닌 듯 싶다.
우리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선인이라든가 악인, 현인,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게으른 사람 들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그렇게 구분해 단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은 악인일 때보다 선인일 때가 더 많다든가. 게으를 때보다 부지런할 때가 더 많다든가, 어리석을 때보다 똑똑할 때가 더 많다든가, 또는 그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인간을 두고서 당신은 성인이라든가 분별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선 당신은 악인이라든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인간을 그런 식으로 구분 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다.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든 흐른다는 데는 변함이 없으나 강 하나만 생각해 보더라도 어느 지점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다. 또 여기서는 맑기도 저기서는 탁하기도 하고. 차기도 따스하기도 하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은 온갖 요소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어 어느 경우 그 중의 하나가 돌출하면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사람에 따라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네흘류도프는 이런 유형의 인간에 속했다.
이 책은 펼치자마자 성경구절 몇 가지가 언급되고 본문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나갈 때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한 영국인이 선물로 주고간 성경책을 펼쳐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와의 이별을 서글퍼 하는 카튜사는 '안녕히 계세요'가 아닌 '용서하세요'라는 마지막 인삿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녀와의 이별, 신비로운 노인과의 거듭된 만남, 한 정치범의 조용한 죽음 등 일련의 사건들이 끝나갈 무렵 숙소에 돌아와 깊은 상념에 빠진 네흘류도프는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성경을 펼쳐본다. 우연히 읽게된 마태복음 18장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한 말 - 인간은 누구나 죄가 있어서 인간을 처벌하고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몇번이고 언제고 끝 없이 용서를 해야 한다 - 속에서 하나의 진리를 얻는다.
다시 처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한 그날 밤, 네흘류도프의 생활은 전혀 새로워진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전과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교의 중심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인 '부활'로 규정지어지며, 레흘류도프와 카튜사의 부활로 결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