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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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항해중에 배가 난파되어 홀로 무인도에 남게된 로빈슨 크루소는 오두막을 짓고, 불을 지피며, 염소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면서도 섬을 탈출하고자 노력도 해보지만 점차 섬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러던중 야만인들의 포로를 구출하여 그를 '프라이데이'라 명하고 충실한 하인으로 삼아 지내다가 섬에 기착한 영국의 반란선을 진압하여 선장을 구출, 그리운 고향으로 28년만에 돌아온다는 것이 그 소설의 줄거리다.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프랑스인 '미셸 투르니에'가 쓴 로빈슨 크루소 뒤집기이다.
영국에서 '금요일'을 Friday라고 하듯 프랑스에서는 방드르디(Vendredi)라고 한다. 미셸 투르니에는 영국 요크 태생의 문명인 '크루소'가 아닌 야만인 '프라이데이'의 관점으로 '로빈슨 크루소'이 이야기를 다시 쓴다. 작가가 애국심은 '프라이데이' 대신에 '방드르디'를 등장 시키는 것이다. 물론 야만인 '빙드르디'는 이 소설의 중간쯤에 등장하므로 주인공은 여전히 로빈슨이라고 볼 수 있다.

유일한 벗인 개 '텐'과 함께 섬생활의 개척자이던 문명인 로빈슨이 야만인 방드르디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그로부터 무엇이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인지를 깨달아 가는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준다. 로빈슨이 방드르디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방드르디가 문명에 짜증을 느끼며 오히려 로빈슨이 섬에 잘 적응하여 행복해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 보다 로빈슨이 스스로 방드르디를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들은 주종의 관계도 아니고, 점점 친구가 되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걸 잊고 살고 있을 때, 화이트버드 호라는 영국 배가 섬에 찾아온다. 이제 로빈슨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로빈슨은 갈등한다. 이 배의 선원들은 오랫동안 문명을 벗어나 있었던 로빈슨과 방드르디가 자신들에게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두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은 전무하다고 생각한다. 스페란차 섬에서 시간 개념을 초월하여 행복하게 살았던 로빈슨에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28년이란 세월이 갑자기 어깨를 짓누르고, 로빈슨은 고통스러워 한다. 젊고 행복했던 그가 문명의 등장으로 갑자기 늙어버린 것이다.

방드르디는 오히려 문명인들과 함께 떠나고...
텐과 함께 로빈슨이 다시 홀로 섬에 남겨졌을 때, 새로운 인물 죄디(목요일)의 등장은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독서는 '제인에어 납치사건'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가치있는 패러디 문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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