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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연인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0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이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외설시비로 잘려나간 초판본(1913)을 걸고 넘어진다.
넘어진 초판본을 발판으로 그러부터 80년이 흐른 1992년에 무삭제판이 나왔고, 이 책은 그의 번역서인 것이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상당히 음란한 책일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음란과 외설적인 장면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 음란과 외설에 강한 내성이 생겨버린 나를 향한 주위의 눈초리에도 딱히 반항할 생각도 없다. 아무튼 나는 아름다운 문체 이외에 음란함과 외설스러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그저 글맛 좋은 책을 읽었을 뿐이다.
문학평론가들에 따르면 D.H.로렌스(1885~1930)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남녀의 섹스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주장을 하곤 하는데, 아마도 이 작품 하나만으로 보기는 그렇고,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지개', 사랑하는 여인들' 등 성을 소재로 보다 진보적이었던 작품 때문인 듯 하다. 시대를 초월한 천재적인 문호라는 평가는 바로 D.H.로렌스와 같은 이에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책의 뒷표지가 말한 무삭제판에 대해 언급하자면 음란성이나 외설성을 논하기에 앞서 원래 작가의 의도에 맞는 표현을 충실하게 살려낸 판본이라는 의미가 가깝다. 로렌스의 친구이자 이 소설 초판본의 편집자였던 '에드워드 가넷'은 베스트셀러가 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며 책의 20% 분량을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알아서 가위질(?)했으며, 당시로서는 노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엉덩이(hips)를 몸(body)으로, 허벅지(thighs)를 다리(limbs)로 바꾸는 등 나름대로 상당한 언어순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특정 부분에서는 내용이 앞뒤가 맞지 않는 전개가 펼쳐지거나 시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오래전 번역 출판물에서 보면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내용이나 자녀들에 의한 어머니의 살해 언급 등이 있는데, 실상 이 책을 읽고나면 그런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D.H.로렌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도 평가받는 '아들과 연인'은 무능한 광부와 지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어머니 아래 성장한 아들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 한다. 남편과 애정이 깊지 못했던 모렐 부인은 맏아들 윌리엄에게 집착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윌리엄이 요절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둘째 아들 폴에 대한 애착으로 변해간다. 누구나 주인공이라 생각했을 형 윌리엄이 제1부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아버지를 닮고 철도 없는 남동생은 간간히 등장할 뿐 이렇다할 비중이 없다보니, 차남인 '폴 모렐'이 이야기의 핵심 인물이 된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아들 폴이 그 연인과도 같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성인이 된 폴은 미리엄이나 클라라와의 사랑에서도 어머니를 의식하고, 자유롭지 못한 연애를 하게 된다는 것이 제2부의 중심 내용이 된다.
이쯤되면 우리는 이 작품이 표현하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접하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도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의 문제는 21세기 서울에서도 흔한 드라마의 소재인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꽤나 멋지게 묘사한 로렌스의 글맛이 좋다.
나름대로 행복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