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마의 5대 황제인 '네로 클라우디우스'의 느낌이 그 악명에 비해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리도 네로가 악명 높은 황제로 남아 있을까를 고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아마도 네로 황제의 악명높음에 가장 기여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이 '쿠오바디스'라는 19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탓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2권 443페이지를 읽다보면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권유로 네로의 탄압에서 벗어나 길을 나선 사도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대화가 오간다. "Quo Vadis Domine?" "네가 어린 양들을 버렸으니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그때 바로 옆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독백하는 베드로를 바라보면서 나자리우스가 되풀이 한다. "쿠오바디스 도미네?" 베드로는 소년 나자리우스의 되풀이에 응답한다. "로마로..." 베드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또한 에필로그에 앞서 대미를 장식하는 페트로니우스 역시도 주인공이 아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페트로니우스의 조카로 나오는 비니키우스와 그가 사랑하는 니기아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상한 판관이라 불리는 페트로니우스가 가장 멋진 인물로 기억될 것 같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갈리쿠라 시대에 시리아의 총독을 맡았던 인물로 내 머리에 기억되고 있는 그는... 네로, 악테, 베드로 등과 함께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허구적인 인물로서는 니기아의 충복으로 나오는 니기족의 거인 우르수스가 참 멋지다. 작가는 1880년에 나온 L 월리스(미국)의 명작 '벤허'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작가의 조국 폴란드가 1795년부터 1918년까지 이웃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삼국에 의해 분할 지배 받았던 현실로 인해 무려 123년간 유럽지도에서 사라져버린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폴란드 민족에게 용기를 주고자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소설속 허구적 인물인 니기아와 우르수스는 폴란드 민족의 상징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박해받던 폴란드 민족에 희망을 심어준 이 작품은 19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출판사가 번역 ·출간하였고, 영화도 수입·상영된 적이 있으며 TV시리즈물로도 제작되었다 하니 영상으로 다시 한 번 접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독서를 할때마다 느끼지만... 세상엔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