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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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10월31일...
이 나라의 청년들이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에 열광했을 그날은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던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도인 경호원에 의해 암살당한 날이다. 바로 그날 즈음을 기준으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인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소재이다.

다음 생에 만나자는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환생한 아내를 찾아 온 이소베...
장난으로 데리고 놀다 버린 대학동창이 신부로 있는 땅을 찾아 온 미쓰코...
동료의 인육까지 먹고 생존해야만 했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기구치...
철없는 아내와 신혼여행 중인 그 자신도 철이 없는 사진 작가 산조...
자신이 병마에 시달릴 때 힘이 되어주다가 완치와 함께 죽은 구관조를 그리워 하는 동화작가 누마다...
이런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사회에 불만 많은 비정규직 여행가이드 에나미...

이들의 사연들을 조화롭고 흥미있게 서술하는 작가의 노련함이 돗보이는 작품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 기구치와 미쓰코의 다음과 같은 대화에는 많은 의미들이 숨어있다.

"이 나라에 불교도가 아주 조금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었지요. 석가모니가 태어난 나라이면서도 지금은 힌두의 나라인거죠."
"하지만 그 강만은." 미쓰코는 희끄무레해진 풍경에 눈길을 주면서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294쪽)


사람들이 죽은 뒤, 그 곳에 뿌려지기 위해 먼 데서 모여드는 강. 숨을 거두기 위해 순례하러 오는 도시. 그리고 깊은 강은 그런 사자들을 품에 안고 묵묵히 흘러간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미쓰코도 결국 하나가 된다.

여기서 양파 이야기 하나, 양파는 일본 말로 다마네기이던가?
양파는 까마득한 옛날에 죽었지만, 그는 다른 인간 안에 환생했고, 2천년이 흐른 후에 미쓰코가 바라보는 수녀들 안에도 환생했고, 오쓰 안에도 환생했다. 도대체 양파가 무엇이길래... 그 양파의 근원은 대학시절 오쓰와 미쓰코의 만남을 지나 신혼여행 중 리옹에서 만나 두 사람의 대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신은 변했군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마술사인 신께서 변하게 만드신 거지요."
"그 신이란 말 좀 그만 할래요. 짜증이 나고 실감도 안나요...(생략)..."
"미안합니다. 그 단어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 없습니다. 토마토이건 양파건 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한테 양파란 뭔가요? ... (생략)..."
"존재라기 보다는 손길입니다. 양파란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94쪽)

오쓰에 따르면 양파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으며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 교도들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양파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를 초월한 신념으로 생활하는 오쓰의 생활과 발언을 볼때마다 언젠가 후배를 만나기 위해 들렀던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정문에 써져 있던 한글로 된 글 귀가 떠올랐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톨릭 교도가 되었고, 미쓰코의 장난끼 어린 거짓 유혹에 따라 신을 떠날까도 싶었던 오쓰. 결국 미쓰코의 노리개감으로 잠깐 만나다 버려진 이후 평생 동안 진정한 신을 찾아 헤매이는 오쓰. 그는 자신의 모국 일본을 떠나 프랑스로 가서 신부 수업을 받지만 이교도를 인정하지 않은 현실에 맞서다가 그곳에서도 배척당 한다. 어느덧 인도에 이르게 된 오쓰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갠지스 강에 감동하여, 그 자신도 강처럼 모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다. 신부이면서도 힌두교도들을 위해 헌신하는 오쓰의 모습에 미쓰코는 압도된다. 오쓰는 단지 힌두교도를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벽을 넘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갠지스강을 볼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이고 흘러갑니다." (280쪽)


노~ 프라블럼이 난무하는 인도에 대한 많은 글들을 읽어왔지만 추상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내용이 조화로운 이런 멋진 감동적인 소설은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썩 괜찮은 도서로 분류해 두고 싶다.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일본인들이 20여 년 전 인도를 여행한 사연들을 픽션과 논픽션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어 인도를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풍부하다.

 

위트 넘치는 명문장가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작품, 꽤나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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