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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이반, 신은 있느냐 없느냐?"
"신은 없습니다."
"알료쉬카, 신은 있느냐?"
"신은 있습니다."
"이반, 불멸은 어떠냐?"
"불멸도 없습니다."
"알료쉬카, 불멸은 있느냐?"
"있습니다. 신 속에 불멸이 있습니다."
"이반, 그럼, 악마는 있는 거냐?"
"아니요, 악마도 없습니다."
누군가 내게 러시아 소설가 두 사람만 말하라고 하면 톨스토이와 함께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야기 했을 것이다.
이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두 가지만 제시하라 한다면 '죄와 벌'과 더불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굳어진 나의 생각이고, 단답형 퀴즈풀이에 맞게 훈련된 내 두뇌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 입으로 말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들을 읽은적이 없었다.
톨스토이도 좀 읽고, 치프킨이 도스토에프스키를 소설에 등장시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읽었지만 정작 퀴즈풀이용 얕은 지식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부터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관한 국내 번역판을 찾아 헤맸다.
영풍문고에서 두툼한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열린책들) 두 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을 발견하고 몇 번 구매 욕구를 느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이 가지않아 취소하기를 여러차례... 그러나 결국 이렇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신간으로 만났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도 열린책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상,하)도 주문했다가 반품한 일이 있었다.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내 대형서점에 가서 내가 구입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과 열린책들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에 실린 카라마조프 혹은 까라마조프 일가의 이야기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완역판은 이 두 권이 전부일 것이다. 편집 스타일과 가독성 면에서부터 개인적 취향탓인지 민음사 판이 편하고 좋았다. 번역자 김연경 박사의 섬세함이 돗보인 것 같다. 그렇다고 열린책들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시리즈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어 변역할 인재가 제한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열린책들의 시리즈중 '악령'의 경우 또한 번역자가 동일 인물 김연경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민세문집이 약간 우위라 평가하고 싶은데, 열린책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없었다면 민세문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완성도는 분명 지금만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구경꾼들(독자)이나 선수(?) 모두에게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워낙에 지루한 소설이라 흥미를 잃기 쉬워서 이 책에 집중하지는 않고, 다른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메모해 가면서 지리하게 읽었다. 결국 책을 구입한지 40일만에 세 권 모두를 마쳤는데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시점들이 얼마나 헷갈렸던지 1권의 경우 수도없이 앞뒤를 오가면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독서라도 훗날 기억이 별로 없을 것을 생각하면서, 매우 개인적일지라도 어설프나마 이렇게 등장인물과 내용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중년의 지주.
▣ 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 = 표도르의 첫번째 부인, 드미트리의 엄마
▣ 소피야 이바노브나 = 표도르의 두번째 부인, 이반과 알료사의 엄마
▣ 드미트리 (미챠) = 표도르의 큰 아들
▣ 이반 (바냐, 바네치카) = 표도르의 둘째 아들
▣ 알렉세이 (알료세치카, 알료샤) = 표도르의 셋째 아들
▣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소프 = 미챠의 후견인, 아젤라이다의 사촌 오빠.
▣ 예핌 페트로비치 폴레노프 = 이반과 알렉세이의 후견인
▣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 표도르의 하인
▣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 = 그리고리의 아내
▣ 스메르자코프 = 표도르의 요리사, 백치여인 스메르쟈쉬야의 아들
▣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베르호프체바 = 드미트리의 약혼녀
▣ 그루셴카 (아그리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스베틀로바) = 표도르와 드미트리가 사랑하는 여인
▣ 조시마 = 수도원의 장로
▣ 라키친 (미하일 라키친, 미샤, 라키트카, 라키투쉬카) = 알료샤의 친구
▣ 카체리나 오시포브나 호흘라코바 = 부유한 미망인
▣ 리자 = 호흘라코바의 딸
▣ 삼소노프 = 그루샤의 후견인, 부유한 상인
▣ 고르스트킨 = 랴가브이. 주정뱅이 농군
▣ 페츄코비치 = 카첸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데려온 유능한 변호사
▣ 이폴리트 키릴로비치 = 검사
▣ 스네기료프 = 퇴역한 2등 대위
▣ 일류샤 (일류세치카) = 스네기료프의 아들
▣ 콜랴 크라소트킨 = 일류샤의 친구
주요 이야기
십삼 년 전 비극적이고 어두운 최후를 맞이했던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를 추억하는 화자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보쌈 결혼으로 첫번째 부인(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을 얻었으나 부인은 그를 경멸했고, 가난한 신학교 출신 교사와 함께 집안을 내팽개치고 가출해 버렸다. 이후 표도르는 방탕하게 살았으며, 가출한 첫번째 부인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한다. 두 무책임한 부모 밑에는 미챠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가 미챠를 거두어 키웠다.
유럽의 도시에서 돌아온 미챠의 외삼촌(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소프=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의 사촌 오빠)은 드미트리(=미차)의 후견인이 되겠노라고 소년의 아버지에게 제안하지만 미챠에게 그토록 무관심했던 아버지 표도르는 부인이 가져온 많은 지참금(2만5천 루블) 때문에 발생할 재산 상속 등을 고려하여 형식적인 공동 후견인이 되기로 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미챠는 찔끔찔끔 자신 몫의 유산을 받다가 혼란스러운 계산법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에게 빚을 지는 신세로 전락한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4살배기 장남을 쫓아내고 잽싸게 재혼을 했는데, 고아나 다름 없었던 이 두번째 부인(소피아 이바노브나)은 부유한 보로호로프 장군의 늙은 미망인 집에서 비관적으로 살던 16세의 소녀였다. 그녀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결혼해서 두 아이(이반, 알렉세이)를 낳았고, 시골 아낙에게 흔히 걸리는 부인성 질병에 걸려, 클리쿠샤라 불리는 환자로 지내다가 요절한다. 둘째 부인이 죽은지 세 달 뒤에 장군 부인은 이 도시에 나타나 아버지의 뺨을 두 대 후려 갈기고, 두 아이를 지저분하게 키운 그리고리의 뺨을 한 대 후려 갈긴 후에 아이들을 몰골 그대로 담요에 둘둘말아서 자기의 도시로 데려갔다.
이반과 알료샤를 거둔 장군 부인이 약간의 유산을 두 아이에게 남기고 죽은 뒤 그 도시의 귀족 모임 회장(예핌 페트로비치 폴레노프)이 자기 돈으로 두 아이를 교육 시킨다. 이반은 학업에 비상하고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고, 알렉세이는 예핌이 죽자 김나지움을 도중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리고리의 도움으로 그토록 소망하던 어머니의 무덤을 찾은 뒤 수도사가 된다.
무책임한 아버지 표도르 영감은 둘째 아내가 죽고 3,4년이 흐른 뒤 오데사(흑해북쪽해안도시)로 가서 몇년을 쭈욱 살았는데, 그의 말을 빌리건대 '수많은 유대인들, 유대인 녀석들, 유대인 놈들, 유대인 새끼들'과 어울리다 돌아왔다. 그 자신도 세상에 불만 투성이었지만 책임질 아들을 공식적으로(?) 셋이나 둔 아버지치고는 거의 총각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무책임하게 생을 즐기고 살아갈 뿐이다.
표도르 영감이 55세, 장남 미챠가 28세, 배 다른 차남 이반이 24세(혹은23세), 막내 알료샤가 20세일 때 이 황당한 가족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 도시 수도원의 존경받는 조시마 장로가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표도르 영감과 그의 장남 드미트리를 자신의 암자로 초대하고, 이반과 알료샤까지 네 부자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알료사는 전혀 모르고 있던 두 형을 만났는데, 같은 배에서 난 이반보다 오히려 이복형인 드미트리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표도르 영감의 집에서 지내는 차남 이반은 겉보기에 아버지와 사이가 꽤나 좋았다.
결국 조시마 장로의 암자에서 만남은 파국으로 끝나고...
알료샤는 미챠로부터 중령의 딸 카체리나와의 만남과 약혼에 이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공금을 횡령한 중령의 비밀을 악용하여 그의 딸을 돈으로 유혹한 미챠, 결국 위기에 몰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미챠를 찾아온 카체리나의 고결함에 흔들린 미챠는 그녀에게 아버지를 구할 자신의 전재산을 조건없이 건내준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말없이 모스크바로 떠난 카체리나는 친척인 장군부인으로부터 8만루불이나 되는 지참금을 받아 부자가 된다. 그녀 카체리나는 기대도 하지 않고있는 미챠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 청혼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두 사람은 약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루샤에 대한 나쁜 감정을 품고 패주려고 떠났던 미챠는 그날 아침 카체리나로부터 받은 모스크바로 송금해야할 돈 3000루블을 받아 쥐고 있었다. 그것도 그루샤와 함께 모크로예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단 사흘만에 그 돈을 탕진해 버린 것이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탕진해버린 그 돈 때문에 난감해진 미챠는 부끄러움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못하고 알료샤를 카챠에게 보내 반드시 그 돈을 갚을 것임을 전하도록 한 것이다.
미챠는 어머니의 지참금 중 자신의 몫을 편법적인 계산으로 떼먹은 아버지 표도르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으며 어떻게든 그 돈을 받아내서 갚으려는 계획을 이야기 한다. 요리사이자 하인인 스메르쟈코프만이 표도르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그를 통해 반드시 알아내서 훔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미챠는 스메르자코프를 통해 그 새로운 사실을 전해듣고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도르는 특별히 사랑하는 막내 아들 알료샤에게 자신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집안 사람이자 충직한 요리사인 스메르쟈코프를 '발라암의 당나귀'라 부르며 이반이 집안에 들어온 이후, 이 평생에 말이 없던 발라암의 당나귀가 식사에도 동참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며 행복해 한다. 모세5경 중의 하나인 민수기 22장에 발라암의 불행을 인간의 말로써 경고 했다는 그 당나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비롯해 아주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발라암의 당나귀는 하나의 상징적인 복선이다. 이 카라마조프가의 진정한 비극은 카체리나에게 갚아야할 3,000루블이 발단이지만, 발라암의 당나귀가 미챠에게 미끼로 던진 표도르 침실에 보관중인 3,000루블에 의해 꼬이고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길로 아버지를 만나고, 카체리나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러시아적 아름다움의 절정에 있는 그루셴카까지 만나는 알료샤, 처음에 두 여자는 어리둥절한 알료샤를 중간에 두고 사이 좋은 동서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욕하고 삿대질을 한다. 결정적으로 미챠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아버지를 위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미챠를 찾아간 카체리나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비웃는 그루셴카...
두 여자의 적나라한 말다툼을 목격한 후 수도원으로 돌아가던 길에 기다리고 있던 미챠를 만나 그 이야기들을 털어 놓을 때, 미챠는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슴을 친다. (1권329쪽) 이 이야기는 나중에 제3권 재판 과정 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꽤나 두꺼운 소설에서 상세히 말하지도 않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이런 몸짓들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될만큼 이 소설은 참으로 난해하고 복잡하다. ㅡㅡ;;
미챠에게 두드려 맞고 발로 짓밟혀 드러눕게 된 표도르가 알료샤에게 했던 말도 일종의 복선이었다.
"이반은 뭐라고 하던? 알료샤, 요 귀여운 것, 나의 유일한 아들아, 나는 이반이 무섭구나. 나는 저놈(미챠)보다 이반이 더 무서워. 오직 너 한 명만 무섭지 않아."(1권297쪽)
표도르는 알료샤가 클리쿠샤(소피야 이바노브나)를 닮았다고 했고 애정을 표했다. 조시마 장로는 죽는날까지 알료샤에게 특히나 많은 애정을 쏟았다. 둘째형 이반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자신이 모르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관대함을 보였다. 두 형의 애정 문제해결에도, 큰 형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도 알료샤는 헌신적으로 분주한 활동을 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제1부의 내용인데, 이를 포함해서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카라마조프가의 장남 미차는 아버지 표도르와 재산 문제를 담판 짓기 위해 찾아왔다가 아버지의 연인 그루셴카에게 푹 빠져버린다. 또한 형 미챠의 부탁으로 만난 미챠의 약혼녀 카체리나에게 반해 버린 차남 이반... 카라마조프 집안은 도통 정신이 없이 부자와 형제 지간을 넘어선 삼각관계와 삼각관계의 연속이다. 오로지 막내 알료샤만이 초조한 마음으로 이들을 지켜보며 안절부절 하는 것이 이야기가 형성된 기본 골격이다.
아버지가 그루셴카와 함께 있다는 생각으로 질투하여 아버지에게 패륜적인 폭행을 가하는 다혈질의 미챠는 술김에 탕진해버린 카체리나의 돈을 갚고, 그루셴카와 깔끔하게 새로 시작하기 위해 돈 3000루블을 필요로 한다. 잔머리에 약하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행동하고 떠들어 대는 미챠는 그루셴카의 후견인인 삼소노프를 찾아가기도 하고, 장난끼가 발동한 삼소노프의 농간에 의해 아버지와 모종의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주정뱅이 고르스트킨(랴가브이),돈많은 젊은 과부 호흘라코바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돈을 구하지 못한다.
그루셴카가 옛날 연인을 만나기 위해 모크로예 마을에 가 있는 동안, 다혈질의 미챠는 아버지가 그루셴카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무심결에 놋쇠공이를 집어들고 아버지 표도르의 집으로 쳐들어 간다.
그동안 아버지집에서 함께 지내던 이반은 스메르쟈코프와 모종의 대화를 나눈 뒤 모스크바로 떠나고 없었다. 스메르쟈코프는 간질발작으로 쓰러져 누워 있는 그 시간에 바로 그 '발라암의 당나귀'가 알려준 노크 신호를 통해 그루셴카가 표도르집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영화라면... 이 순간에 갑자기 화면이 지지직~거린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하게 독자가 앞뒤로 종이 몇장을 넘겨 보도록 유도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인 그리고리가 미챠를 추적하고 도망가던 미챠는 들고있던 놋쇠공이로 그 충직한 노인을 내려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노인... 당황하는 미챠는 놋쇠공이를 눈에 잘 띄는 길가에 내던지고 노인을 보살피다가 그루셴카의 집으로 달아난다. 술집에 들러 피묻은 손으로 우와좌왕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그루셴카가 있는 모크로예로 달려가 그녀의 사랑고백을 받게 되지만 그는 즉시 친부 살해범으로 체포된다.
죽이고 싶었고, 그동안 늘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노라 떠들었던 수많은 정황들...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그녀의 약혼녀 카체리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능한 변호사 페츄코비치를 데려오고, 미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에 맞선 이 지방의 검사 이폴리트 키릴로비치의 손에 땀을 쥐게하는 공방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그냥 있는 사실만으로 아니 그동안 읽은 사실만으로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도 이 두 명의 연사 앞에서는 온갖 다양한 해석과 설득력으로 포장되어 책으로의 몰입을 부추긴다. 왜 세상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세계적인 대문호라고 칭찬하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열정적인 부분이 바로 그 4부의 제12편 오심 편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증인은 이반에게 모든 것을 실토한 다음 자살하고, 이반은 광분하여 자신이 자살한 스메르쟈코프를 교사한 진정한 범인이었노라고 울부짖지만, 이반을 사랑하는 미챠의 약혼녀 카체리나는 그의 증언을 듣고나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미챠를 옹호하던 입장을 바꿔 이반은 섬망증을 앓고 있는 환자일 뿐이라며, 미챠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라며 재판장에 돈 문제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종이 조각을 제출한다. 그녀의 수학적인 증거와 광분한 행동은 결정적으로 미챠를 불리하게 몰아부친다.
결국 미챠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 카라마조프적인 이야기의 중간에 소년 일류셰치카(일류사)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삽입된다.
일류샤의 아버지인 퇴역한 2등 대위 스네기료프는 어느 날 미챠에 의해 광장에서 수염이 잡힌 채 끌려다니는 수모를 당한 일이 있다.
소년은 그 일로 큰 상처를 받았고,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는데 이 일을 알게된 알료샤가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희망의 메시지이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2부를 염두해 둔 기획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일류샤는 장례식 그 자체는 슬프지만 콜랴 크라소트킨을 비롯한 그 소년의 친구들이 희망적인 모습으로 끝난다.
제5편 Pro와 Contra(贊反)에 포함된 '대심문관'은 소설 속 이반의 서사시로 '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종교관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알료사에게 이반은 서사시를 통한 고백을 한다. 이야기는 그렇다. 16세기의 스페인에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로마 가톨릭은 타락했고 연일 종교재판이 열리던 시기에 대심문관은 그리스도를 감옥에 가둔다. 아흔 살의 대심문관은 갇힌 그리스도를 상대로 자신이 건설한 지상낙원의 실체를 이야기한다.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인간에게 빵을 주는 대신 자유를 반납하도록 하여 그들을 온순한 양떼로 만든다는 것이 요지이다. 대심문관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리스도는 그의 핏기없는 입술에 말없이 입을 맞춘다.
소설 전반에 펼쳐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러한 종교적인 지식과 응용은 작가 자신이 팔 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 동안 오로지 성경책만 읽고 살았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열아홉 살에 느닷없이 수도사가 된 청년 알료샤는 균형잡힌 몸에 키가 크고 짙은 아마빛 머리칼에 갸름한 얼굴의 미남이었다. 짙은 잿빛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사려 깊고 침착한 성격의 리얼리스트였노라고 화자는 말한다.
알료샤에 대해 외삼촌 미우소프는 다음과 같은 아포리즘을 내뱉은 적이 있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평이다.
"저런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요. 어느날 갑자기 인구 백만의 낯선 대도시 광장에 완전 무일푼 상태로 혼자 남겨져도 결코 파멸하는 일도,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일도 없을 거요.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금방 그에게 먹을 것과 몸 둘 곳을 마련해 줄 테고, 설령 남이 돌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테니까요. 유달리 힘을 쓴다거나 굴욕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을 것이고 그를 돌봐 준 사람도 무슨 부담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흐뭇해 하겠지요."(1권 46쪽)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생전에 남겨둔 그의 메모에 의하면 바로 이 약관의 젊은이 알료샤를 혁명가로 한 연작의 작품을 구상했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이 소설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바람에 독자들은 혁명가 알료샤를 맛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을 펼치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키야에게 바친다'라고 써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40대 후반에 스물다섯 살 연하의 처녀를 두번째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바로 그녀다.
치프킨의 소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읽노라면 괴팍한 남편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헌신적이었던 그녀의 험난한 삶이 그려지는데, 그의 마지막 작품에 남겨진 이 문장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나의 반감을 일시에 해소시켜주는 것 같다.
제1권 593쪽, 제2권 479쪽, 제3권 581쪽...
도합 1,653쪽의 지루한 두꺼움에도 참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가 많았던 보람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