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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5
D.H. 로렌스 지음, 김정매 옮김 / 민음사 / 2006년 12월
평점 :
이명박 대통령 예비후보가 대운하를 파겠다고 한다.
이 소설은 대운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할만한 소재의 이야기다.
비교적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만큼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는 의미다. 쉬엄쉬엄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뿐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이 소설의 후반부 주인공인 어슐라는 교회의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창세기 구절을 혼자서 읽으며 조롱기 어린 상상을 한다. '도대체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만일에 하느님이 죽은 살덩이와 입을 맞추는 존재라면 죽은 개를 파먹는 구더기는 하느님이 아니겠는가?' (제2권128쪽) 그녀의 바로 옆에서는 그녀의 첫사랑 스크레벤스키가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노아의 홍수 뒤에 더 이상의 시련은 없을 것이라는 이 성경구절, 창세기 9장12절에서 15절의 '무지개'는 이 소설의 핵심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아들과 연인의 작가 D.H.로렌스는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노아의 홍수와 맞물려 찾아내고 재미있는 소설을 완성해 낸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대대로 부지런하고 부유하게 살아온 브랑윈 일가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을 소재로 농장을 지나가는 운하로 인해 보상받는 문제, 철도가 들어서는 문제, 도시화. 과학이 종교를 밀어내는 분위기 등이 작가에게 많은 영감을 줬을 것이다. 소설 속에 두 세대가 경험하는 아빠와 딸의 관계가 보여주는 애정과 갈등의 심리묘사와 어린아이의 눈, 처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치밀한 시각 등은 작가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 부분만 따로 읽어도 가치있는 단편소설로 남을 성 싶다. 운하의 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둑이 터져 마시 농장이 물에 휩쓸려 톰 브랑윈이 익사하는 장면도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이 시대는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유사함이 있다. 브랑위가의 딸 어슐라는 마치 1970~80년대 우리나라 시골 부농의 딸이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 겪게되는 사회변화와 의식변화를 표현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 언급되는 수많은 성경의 구절들도 우리나라 종교계를 거의 평정하다시피한 기독교 파급을 생각하면 전혀 이국적이지도 않다. 오래도록 차별을 받아온 여성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가 부여됨으로 인해서 남녀의 역할이 바뀌는 문제는 진부할만큼 여기저기 문학에서 많이 다뤄왔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D.H.로렌스 스타일이 주는 재미는 확실히 다르다.
현대적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슐라 브랑윈은 이별, 임신, 유산의 아픔을 차례로 겪은 뒤 어느 날 병상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무지개를 발견한다. 그녀가 과연 옳은 삶을 살아왔으며 그녀의 시련이 과연 스스로 판 무덤은 아니었던가 의심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앞날에 무지개가 펼쳐지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우리의 경부 대운하가 어떤 홍수를 가져오고, 또 어떤 희망의 무지개가 떠오를지는 아직 모르지만...
난개발이라 할 수 있는 운하와 그렇게 만들어진 둑이 터져 아버지가 익사하는 장면은 이명박 선수에게 읽어주고 싶은 명장면이다.
홍수가 나든 말든 어쨌거나 소설은 희망의 무지개로 독자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