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크테에서의 만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9
귄터 그라스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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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 독일 시골의 조그만 마을 텔크테로 몰려드는 유명한 문학인들의 이야기...
이때는 신, 구교 세력 간의 갈등이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30년전쟁(1618~1648)이 막바지를 향하던 때였다. 이 시인들의 목적은 산산조각으로 분열된 조국을 마지막 남은 수단인 '언어와 문학'으로 다시 한번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와 평화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려 했던 시인들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말려들면서 자신들의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화자 '나'는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즉 인간의 운명은 현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7세기에 실존했던 시인들인 그뤼피우스, 게르하르트, 질레지우스 등이 등장하는 1647년도의 이 모임은 귄터 그라스 자신이 회원이었던 1947년의 '47그룹' 모임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라스는 실존 인물들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더욱 현실감 있게 전달하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일견 숭고하고 고상할 것만 같은 시인들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면서도, 그라스는 '47그룹'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들 시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귄터 그라스는 그의 조국 독일의 가장 무거운 진실에 대 한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간다. 철학과 역사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 전통 속에서, 그라스의 세속적이고 고약한 취미와 불경스러운 아이러니는 서민들의 거친 진실로 다가온다. '텔크테에서의 만남' 비교적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생사고락 속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심각하고 오래된 문제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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