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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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룰포(Juan Perez Rulfo)는 1917년 멕시코의 아뿔꼬에서 태어났다. 룰포는 멕시코 혁명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끄리스떼라 반란을 겪으며 어두운 유소년기를 보낸다. 차례로 부모를 여읜 뒤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업을 계속하려 하지만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으로 그친다. 1930년 룰포는 내무부 이민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퇴근 시간 이후 사무실에 남아 틈틈이 습작 활동을 하였다. 1953년 간결한 문장으로 멕시코의 농민과 반란군 등의 주제를 다룬 단편집 <불타는 평원/El llano en llamas>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집에서 룰포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문학적 실험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뻬드로 빠라모>(1955)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뻬드로 빠라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절필에 들어가다시피 한 룰포는 영화 제작과 사진에 눈을 돌려 시나리오 작품집 <황금 수탉, 영화 텍스트>(1980)와 사진 작품집 <지하 세계>(1981)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70년 국가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83년 스페인의 아스뚜리아스 왕자상을 수상하였다. 1986년 멕시코시티에서 타계하였다.

작가 자신이 ‘무엇보다 구조에 역점을 두고 쓴 작품’이라고 평한 바대로 『뻬드로 빠라모』는 제일 먼저 그 독특한 구조가 시선을 모으는 작품이다. 일단 화자의 변화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쁘레시아도(‘나’)가 이끌어가는 1인칭 화자 부분이며, 두 번째는 3인칭 화자 부분이다. 또한 수사나의 독백이나 뻬드로 빠라모의 독백에서 볼 수 있듯이 2인칭 화자가 나오는 부분까지 등장한다. 그 와중에 무차별적으로 끼어드는 등장인물들의 독백과 대화, 무질서하게 뒤섞인 사건들로 인해 독자는 낯선 독서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뻬드로 빠라모> 는 주인공 후안 쁘레시아도는 모친의 유언에 따라 생부인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친이 살고 있다는 꼬말라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세계이다. 쁘레시아도는 자신이 죽음의 세계에 있는 것을 자각하면서 차츰 정신을 잃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뻬드로 빠라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뻬드로 빠라모는 꼬말라의 절대 권력자인토호(土豪)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차지하고 마는 음흉하고 폭력적인 인물이다. 멕시코 혁명과 끄리스떼라 반란을 거치며 더욱 광폭해진 그는 평생 기다렸던 수사나의 마음을 구하지 못하자, 꼬말라를 황폐하게 만들며 끝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뻬드로 빠라모> 는 유령들의 지하 공동체(꼬말라), 한 여자(수사나)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남자(뻬드로 빠라모)의 지독한 사랑, 태초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남매(도니스 남매)의 모습, 평생 가질 수 없는 자식을 좇는 여자(도로떼아)의 회한 등이 본 줄거리와 밀접하면서도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하면서 책 읽기의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또한 이 작품은 독창적인 구조, 모호성, 새로운 혁명소설의 패러다임이 신화적 상징 등과 함께 다양한 해석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가 까를로스 푸엔떼스는 이 작품을 두고 ‘멕시코 들판의 언어와 혁명의 주제론을 세계의 보편적인 문맥으로 병합시켰다’라고 평한 바 있다. )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꼬말라’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에서 창조한 ‘마꼰도’의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비평과 재해석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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