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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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네스코라는 이름이 아직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데, 첫작품 '대머리 여가수'가 발표된 1950년 이후로 파리의 연극무대에 단 하루도 빠짐 없이 그의 작품이 올랐다고 하는데, 적어도 파리에 연극무대가 많은 건 확실한 것 같다. ^^;
이 책은 바로 그 위대한 현대연극 작가의 초기 희곡 세 편을 엮은 책이다.

세 편의 작품 '대머리 여가수', '수업', '의자'는 내용 전개가 통 조리가 없는 작품들로 부조리극의 원조라고도 불린다. 이 작품을 번역한 오세곤 교수는 무대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여러가지 현장감이 느껴지는 주석들을 많이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부조리 속에서 조리를 찾아가는 재미도 솔솔하다.
아무튼 현역 연극영화과 교수가 번역한 작품이라 무대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고, 번역의 깊이도 달라보이는 책이었다.


1 장

영국식 안락의자가 있는 영국 중류가정의 실내. 영국의 저녁. 영국식 안락의자에 앉은 영국인 스미스가 영국식 실내화를 신고 영국식 난로 옆에서 영국식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영국신문을 읽고 있다. 그는 영국식 안경을 쓰고 있고, 영국식의 작은 회색 코밑수염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다른 영국식 안락의자에 앉은 영국인 스미스 부인이 영국식 양말을 꿰매고 있다. 꽤 긴 영국식 침묵. 영국식 추시계가 영국식 종을 열일곱 번 울린다.

스미스 부인:  어, 아홉시네 저녁엔 수프하고 감자튀김하고, 영국식 샐러드를 먹었어요. 정말 잘 먹었어요. 왜냐하면 우린 런던 교외에 살고, 또 성이 스미스거든요.
    
스미스, 계속 신문을 읽으며 혀를 찬다.

스미스 부인: 감자가 잘 튀겨졌어요. 기름이 깨끗해서. 모퉁이 집 기름이 최고예요. 건넛집은 비교가 안 되죠. 언덕 아래 집도 그렇고요. 물론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스미스, 계속 신문을 읽으며 혀를 찬다.


이렇게 시작되는 작품 '대머리 여가수'는 불혹에 이른 작가가 영어공부하는 과정에서 연습장 같은 것으로 별 고민 없이 희곡작가로의 재능을 입증하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평이다.

영어공부의 백미는 작품 '수업'에사 '일주일은 칠일이고, 월,화,수,목,금,토,일', '일 더하기 이는 삼, 일 더하기 삼은 사'라는 식의 다소 무가치해 보이는 대사 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느끼던 그런 황량함에 익숙해진 탓인지 어느덧 나는 부조리극 마니아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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