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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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작가 자신의 이름을 비극의 중심에 활용한 이 작품은 다른 어떤 희곡보다도 몰입이 잘되는 느낌이다. 마치 내 자신이 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는 기분으로 읽었다.

1912년 8월의 아침, 별장 주인 제임스 티론은 당당한 풍체를 자랑하는 노배우다. 그에게는 메리라는 부인과 자신과 비슷한 이미지의 장남 제이미와 더불어 열살 터울의차남 에드먼드가 있다. 차남은 어머니의 외모를 더 많이 닮았다. 서재의 손떼 묻은 책들이 탐스러운 그곳 거실의 아침은 마냥 행복한 한 가정을 보는 듯 하다. 극 중간에 메리와 말벗이 되어주는 하녀 캐슬린을 제외하면 티론의 가족 네 사람만이 등장하는 매우 몰입이 잘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드러나는 이 가족의 아픈 이야기들을 경험하게 된다. 마약과 알콜중독,,, 소녀 시절의 꿈, 애증의 추억들을 오가는 동안 깊은 우울함이 내 가슴을 지배했다. 셰익스피어와 스윈번, 오스카 와일드 등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브로드웨이 풍의 멋진 대사들...

운명이 저렇게 만든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왜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과거는 바로 현재예요. 안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여긴 너무 쓸쓸해. (지독한 자기 경멸로 얼굴이 굳어진다)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 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절망적인 웃음을 흘린다)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그래요. 사실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죠. 안 그래요?  아버지가 믿고 싶은 것,
그것만이 진실이죠!

미친 놈 보듯이 그렇게 보지 마세요. 맞는 말이니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생은 고르곤 셋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과 같아요.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버린다는 그 괴물들 말예요. 아니면 판이거나. 판을 보면 죽게 되고 - 영혼이 말예요 - 유령처럼 살아가게 되죠.

전 그 아름다움과 노래하는 듯한 리듬에 취해 한동안 몰아지경에 빠졌죠. 인생을 다 잊은 거예요. 해방이 된 거죠! 바다에 녹아들어 흰 돛과 흩날리는 물보라가 되고, 아름다움과 리듬이 되고, 달빛과 배와 희미한 별들이 박힌 높은 하늘이 됐어요! 전 과거에도 미래에도 속하지 않고 평화와 조화와 미칠듯한 환희에 속해 있었어요. 제 삶, 아니 인간의 삶, 아니 삶 그 자체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에!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신이라고 해도 좋아요.

가슴 아프다. 그러니깐 그런 일들은 어디서고 일어나고 있구나. 다들 알면서 모른척 하는거였군

작가 자신의 이름을 티론 부부의 죽은 아이로 설정한 부분에서 이미 감을 잡을 수 있었듯 자전적인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작가 사후에 초연을 하게 된 것도 작가의 아픔을 그대로 폭로한 탓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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