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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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괴테 전문가로 알려진 임홍배 교수가 번역을 맡아 90년대 후반에 두 권짜리로 출간되었던 것을 같은 출판사의 문학시리즈로 편입시키면서 합본한 것이다. 두 독일인의 이름이 제목이자 공동 주인공인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는 '지와 사랑'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주인공 나르치스가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또 다른 주인공 골드문트는 감성과 사랑을 상징하는 인물이기에 초기의 제목이 그렇게 붙여졌던 것이고 원제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다.

이 책은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타르타 등에서 경험하지 못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간 나에게 헤르만 헤세는 지루한 작품만 쓰는 작가였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흥미를 끌만한 작품으로 헤세를 기억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나 자신을 위한 줄거리 요약은 다음과 같다.

다니엘 수도원장이 운영하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오만해 보일만큼 냉철한 사고를 지닌 나르치스였다. 어느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을 찾아온 소년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의 우정은 깊어진다.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있는 셈이지. 네가 소녀를 그리워 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나르치스의 한 마디는 골드문트를 깨어나게 하며 불완전한 인간이자 방황과 방랑, 예술에 대한 동경, 여성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끊임없이 낯선 세계에 부딪히는 청년 골드문트의 인생드라마의 방랑의 동기를 만들어 낸다. 집시여인 리제와의 첫날밤, 한 농부의 체격좋은 아내의 유혹 등의 문란한 성에 눈을 뜬 망나니의 삶은 부유한 시골 기사의 집에서 기사의 딸인 뤼디에를 만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욕정의 대상이 아닌 진지한 첫사랑의 꿈이 갈등할 무렵 그녀의 동생 율리에가 그 둘 사이에 엮이면서 그 집에서 쫓겨나 다시 방황은 시작되고, 부랑자 빅토르와 불협화음의 동행중에 저지르게 되는 살인, 그 살인을 고해하던 수도원에서 만난 한 명인의 마리아상에 빠져드는 골드문트... 결국 명인 니클라우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스승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딸 리즈베트와 맺어질 수도 있는 안정의 길을 제안 받지만 또 다시 여행을 떠나는 골드문트... 또 다른 동행자 순례를 꿈꾸는 로베르트를 만나고, 흑사병의 마을에서 주인을 잃은 하녀 레네를 만나 그녀를 겁탈하려는 부랑자를 떄려 죽이고 함께 여행을 하다가 흑사병에 겁 먹은 순례자 로베르트와 헤어진 채 흑사병에 감염된 레네마저 잃고 방황하다가, 유태인 소녀 레베카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선택에 어쩔 수 없이 파멸이 자명해 보이는 그녀를 외면하고 옛 스승에게로 돌아오는 골드문트... 하지만 스승은 흑사병에 걸린 딸을 간호하다 죽고, 딸은 불구자가 되었으며 그를 반기지 않는다. 옛날 하숙집 딸 마리의 도움을 받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골드문트...
예술도 예술이지만 넘치는 골드문트의 성욕은 칙사 하인리히 백작의 애인 아그네스의 침소를 침투하게 되고, 두번째의 베드신 도중에 백작에게 덜미를 잡혀 죽음을 눈앞에 둔다. 이 때 짠~ 하고 나타나 구원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새로운 수도원장 요한이다. 그는 바로 옛친구 나르치스... 이미 세월은 엄청 흘러 있었던 것이다.
요한 수도원장(=나르치스)은 사면이 된 옛친구 골드문트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데려가 작업실을 만들어 주기로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네가 사상가로는 쓸모가 없다고 늘상 말했었지. 그때 자네가 세속의 세계로 달아나지 않고 학자가 되었더라면 아마 불행해졌을 수도 있어. 그랬더라면 상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신비주의자 혹은 실천에 옮기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가 되었을거야. 천만다행으로 자네는 예술가가 되어 형상의 세계를 터득한 것이지."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실제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골드문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골드문트는 대장장이 아들 에리히를 제자를 받아들이고 수도원에서 은둔의 작품활동을 한다. 나르치스에게 두 차례의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깊은 행복감을 얻는다.
자신의 작품을 나르치스에게 보여주며 '나의 작품이 썩 좋지 못하거나 이 친구가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의 모든 작업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나르치스는 흥분하며 골드문트의 작품에 탄복한다.
마음 속의 최고가치인 뤼디아상(마리아상)을 완성시키고 떠나버린 골드문트를 기다리는 나르치스의 슬픔. 그리고, 다시 돌아와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 골드문트를 바라보며 나르치스는 고백한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건 자네 덕분일세. 자네만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이에대해 골드문트는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어릴적이나 학생시절에는 자네처럼 지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네. 그런데 내 소명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자네가 꺠우쳐 주었지.'

골드문트가 떠난 후, 나르치스는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를 되뇌인다.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이것이 소설의 끝이다.

나르치스의 이성이 골드문트의 감성을 소재로한 이 소설은 두 자매의 성향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을 생각나게 했지만... 두 독신남성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면에서 다른 생각거리들을 남겨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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