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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롤리타신드롬(Lolita Syndrome)은 그 자체만으로도 낯 뜨거운 말이다.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가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이 말은 음란물을 분류하는 하나의 장르이기도 하다.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하나가 이 신조어의 만들어 낸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서른번째 시리즈 롤리타...
마치 현실적인 누군가의 추억인 듯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몇 가지 재치있는 비현실적 은유를 통해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스파이가 꿈이었던 어린 소년에게 간호사가 꿈이었던 첫사랑 애너벨이 있었다.
순수한 정열로 뜨거웠던 그들은 소녀가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아픈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년만을 세상에 남겨 두었다.
어린 소녀의 이미지에 집착하며 성장하는 소년은 청년이 되고, 사회적으로 성공의 길을 가지만 늘 어린 소녀를 향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고, 발레리아라는 천성적으로 어린애다운 폴란드 의사의 딸과 결혼 한다. 하지만, 그 결혼도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 간다. 서른 일곱살의 험버트는 24년이란 세월이 더 흐른 그 시점까지 애너벨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던 소년에서 옛사랑의 환영처럼 소녀 '로'를 만나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 한다.
타락한 님펫으로 다가온 그 소녀... 그 소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험버트... 남편의 일기장에서 딸에 대한 광적인 사랑을 발견한 어머니 샬로트는 그 충격 속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하고, 험버트는 롤리타의 법률상의 아버지로 보호자일 뿐이다. 이 정도 이야기만 전해 듣는다면 이 중년 남자가 12살 소녀를 어느 누가 마냥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우리는 롤리타 증후군이란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롤리타'를 읽다 보면 서글픈 동정심이 생겨나고, 험버트의 괴로움이 나의 괴로움인 듯 커져만 간다. 험버트의 자제된 정욕은 12살 소녀의 유혹으로 무너졌는데... 그러한 천박한 스토리들도 나보코프는 독자로 하여금 어느 순간, '아! 어쩌면 이것도 진정한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을 외면할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몰아가 버린다. 그 순간 참으로 난감한 독자로서의 내 자신이 고통스럽지만 사랑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게 할만큼 혼란스럽다. 나보코프의 수려한 문장이 아름답고, 글을 통해 전해오는 풍경들이 참으로 나른하다.
험버트의 은밀하고도 광적인 사랑, 진지함과 슬픔을 우스꽝스럽게 받아치는 롤리타의 장난기...
분명히 험버트는 도덕적으로 나아지고 있으며 자신의 죄를 깨닫고 참회 하며, 자신의 죄악을 정화 시키기 위해 참회 하는 의미에서 퀼티를 살해한다. 그 몽환적인 살인 뒤 비틀 거리며 도로를 주행하는 험버트는 경찰을 피해 젖소들이 뛰어 노는 농장으로 뛰어 들고 그 높은 비탈 길에서 아랫 마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환창에 귀를 기울이며 독백한다.
'가망없이 가슴 아픈 것은 내 곁에 롤리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 소리의 어울림 속에 그녀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 때문임을.' (421쪽)
이 책을 읽지 않고 이 소설을 포르노 소설로 분류한다는 것은 분명 경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