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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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에 의해 쓰여진 아프리카를 위한 영문 소설...
그러나 마냥 아프리카를 예찬하지는 않는 자기 반성의 소설로 2007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Things fall apart; the center cannot hold;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 헤쳐진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詩 '재림'(再臨; The Second coming)의 도입 부분이다.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이 시의 세번째 행은 이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영웅적인 한 사나이 앞에 놓인 개인사를 통해 그의 부족이 서구인들에게 굴복해 가는 과정을 그들의 정서와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 내 눈을 사로잡은 매력적으로 문장은 37쪽에 있는 다음과 같은 그네들의 속담이다.

"왕의 입을 보면, 한때 (그가)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무능한 아버지를 둔 탓에 궁핍하고 불우했던 오콩코가 입지전적인 성공을 성취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무오피아의 한 노인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성공한 영웅적인 모습의 오콩코에게는 또 다른 모습도 존재한다. 그는 다혈질의 성격에 남성우월주의자로 부인에게 폭력을 서슴치 않았으며 자신의 잘못이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희생 시키는 다소 비겁한 면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나약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인질로 잡혀와 가족처럼 살아온 소년 이케메푸나를 자신의 도끼로 내려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 사건 이후로 스스로 나약해진 자신에게 묻는다. '언제 이렇게 덜덜 떠는 늙은 여자가 되었는가? 전쟁의 무훈으로 아홉 마을에 그 이름을 떨친 나였는데. 내가 전쟁에서 다섯을 죽였는데 거기에 어린 아이 하나를 더한 것으로 이렇게 산산 조각이 날 수 있는가? 오콩코, 넌 이제 여자가 되었구나.' (80쪽) 오콩코의 양면성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그런 독백의 순간이다.

오콩코는 부족의 한 노인 장례식장에서 어린 소년(죽은 노인의 아들)을 죽이는 실수를 범한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으나 그는 마을에서 추방 당한다.  그것은 대지의 여신에 대한 범죄였고 7년간 유배를 떠나야 하는 전통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부족의 일원들은 오콩코가 자신의 외가로 유배를 떠난 후 바로 그의 집을 불 태우고, 담을 허물고 가축들을 죽였다. 오콩코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었다.
오콩코의 친구 오비에리카는 친구의 일을 슬퍼한다. 그 자신도 대지의 여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쌍둥이 아들들을 악령의 숲에 내다버린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만 집착하던 오콩코에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으로 비교적 내용이 많은 소설의 1부가 끝난다.

음반타의 외가로 유배를 와서 지내는 동안 우첸두의 보살핌을 받는 오콩코가족... 도중에 우첸두의 막내 아들 결혼식 장면은 이 소설이 얼마나 아프리카적인 풍습을 기록으로 잘 남겨주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신랑의 누나가 신부에게 결혼 약속 후 순결하게 지냈는가를 묻는 장면과 명확하게 따지는 부족들... 신부의 다짐을 받고, 신부가 가져온 암탉을 넘겨 받아 목을 예리한 칼로 잘라 바로 그 닭의 피를 가문의 지팡이에 발라 맹세를 하는 풍습 등은 뭉클한 감동이 있다.

"자식이 아버지에 속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면 자식은 어머니 집으로 피하지. 모든 일이 무사하고 삶에 고달플 때 사람은 아버지의 땅에 속한다.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어머니의 땅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머니는 이럴 때 너를 보호한다. 어머니가 거기에 묻히신 게지. 이것이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오콩코 자네가 어머니의 고향에 와서 무거운 표정으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조심 하게나.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신 분들을 화나게 할 것이네. 자네의 임무는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고 일곱 해 후엔 그들을 아버지의 땅르로 데려가는 것이네. 하지만 자네가 슬픔과 낙당 속에서 죽는다면, 그들 모두 객지에서 죽게 될 것이네." (159쪽)

이 또한 외가의 어른인 노인 우첸두가 풀이 죽어 지내는 오콩코를 위로 하기 위해 들려주는 지혜로운 말로 이 소설의 소재가 매력적인 이유이다.

오콩코의 장남 은워예는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 배경에는 자신이 친형처럼 따르던 이케메푸나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한 몫 했다. 오콩코 또한 그런 아들을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애 쓰고, 그럴수록 딸 에진마에 대한 편애를 보인다. 오콩코와 둘째 부인 에퀴피 사이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딸 에진마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자치 하며, 아버지는 그런 딸을 아들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아쉬워 한다. 에진마는 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보답한다.

7년의 세월을 보내고 아버지의 땅 우무오피아으로 돌아오는 오콩코에게 고향은 옛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부족은 도마뱀과 같다. 꼬리를 잃으면 곧 다른 꼬리가 자란다'는 그들의 속담처럼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고, 그의 귀향은 부족민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선교사 브라운은 단지 침략한 백인의 모습만으로 보여지지 않고 나름대로 부족의 전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부족의 전통과 조상을 모욕하는 행동은 기독교로 개종한 몇몇 부족민들에게서 나타난다. 마치 친일파들에 의해 더욱 파괴되었던 우리의 일제시대가 잇었던 것처럼 치누아 아체베도 자기 부족들의 책임도 있음을 냉정하게 소설 속에 담아냈다.

브라운에 이어 새로 부임한 스미스 체제 하에서 마치 독립 투사의 모습으로 오콩코는 부족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고, 교회를 불 사르는 등의 행동을 통해 행복감에 젖어 든다. 그렇게 자신이 뭔가 이루고 있다는 신념에서 오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백인 치안 판사와의 협상 자리에서 억울하게 체포된 오콩코와 마을 지도자들은 그들의 조롱 속에서 분노의 며칠을 보내고,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보석금에 해당하는 조가비를 지불하고서야 풀려 난다.

풀려난 오콩코는 다시 한 번 독립 투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군중 집회가 있던 날, 자신과 부족들을 모욕했던 전령의 목을 도끼로 내리쳐 살해한 것이다. 그렇게 오콩코는 마지막 자존심을 보여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들 부족 남자의 일생은 자신의 조상에 점점 가까이 가는 일련의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오콩코는 떠났지만 부족들의 가슴에 남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영웅은 영웅일 뿐 영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들이 드디어 평정되는 순간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고, 오콩코의 영웅적인 죽음처럼 아체베의 글이 부족의 전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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