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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대부분의 문장들이 즐겁고 유쾌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암울한 장편 소설이다.
정형화된 교육 속에서 다소 어색하게 다가온 제목이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작가의 촌철살인에 감탄하고, 이미 오래 전에 예견 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초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모든 억울함과 암울함의 이치가 고스란히 녹아난 책이 아닐 수 없다.
흑인 노예와 인디언의 고통까지 배려할 수 없을만큼 절박한 백인 소작농들의 어마어마한 고통을 '오키'라는 모멸적인 호칭으로 불린다. 마치 전라도 사람들을 ‘깽깽이’라고 부르며 괄시하는 타지역 사람들의 우매함이 진정한 적을 외면하고 괜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게 한 위정자들의 그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대공황 시절 대표적 ‘오키’인 오클랜드의 조드 일가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소재로 그려낸 암담하고 참담한 이야기이지만 구석구석 유머와 재치로 마냥 괴롭지만은 않은 멋진 소설이다.
자신들의 땅이라고 울부짖고 싶은 소작농들이 쫓겨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결국 그네들의 땅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괴물들의 소유임을 일깨워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냉정한 메아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마트에 나가 최저임금(시급 3,770원)을 받고 일하면서 그래도 그나마 일자리가 있어 아이들 과외비라도 보태고 있다는 어느 아줌마의 안도는 뭘까? 이마트만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그 아줌마가 집 앞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시장 통에 나가 조그만한 채소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을... 일당 3달러를 벌기 위해 고향 사람들을 배신하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사나이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역설하지만... 그에 대한 한 농부의 반응은 무한 경쟁만을 유도하는 현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오래 전에 예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가 하루에 3달러를 벌기 때문에 거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안 그래?” (1권 77쪽)
우리에게 어머니는 가족의 중심이며, 희망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어머니 품으로 달려들어 위로 받곤 했었는데, 겉으로 강한 자는 아버지이지만 진정 강한 것은 어머니였고, 이 소설에서도 진정한 강함은 어머니로부터 발산되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톰이 귀가길에 만난 거북이는 끈질기고 강인한 삶을 보여준다. 조드 일가에게도 그 거북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이다. 그녀는 과감하게 고향을 버리고 떠날 것을 주장하며 한 마디 남긴다. 그리고, 조드의 3대는 희망을 품고 서부를 향해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갈 거예요. (중략) 조드 집안에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못되지는 않았다고요."(1권 213쪽)
연약한 인류가 의지하던 종교가 진정한 대안일까? 스스로 목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케이시를 통해 존 스타인벡은 프론티어적인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토해 낸다.
“다들 그러니까. 옛날에 나는 악마가 적인 줄 알고 악마와 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악마보다 더 한 놈이 지금 이 나라를 붙들고 있어요. 그놈은 우리가 그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겁니다." (1권 265쪽)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가 하나둘씩 제대로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장 하나가 또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후의 분명한 기능,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몸과 단 한 사람의 욕구 충족 이상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1권 314쪽)
빵을 살 돈이 없어 쩔쩔매는 남자, 이제 겨우 1센트 밖에 돈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철없는 두 아이는 가게에 진열된 사탕 앞에서 군침을 흘린다. 줄무늬가 있는 그 사탕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지만 절망적이다.
“아, 그거요. 그건 1센트에 두 개예요.”
“그럼 두 개 주십시오.” (1권 334쪽)
그 사탕은 1개에 5센트 짜리였건만 어려울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민초들끼리 나눔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다. 그렇게 서로 어려울 때 함께하는 민초들의 서로 돕는 언행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고장난 차를 고치다가 손등이 찢어져 피가 심하게 나는 톰, 그는 당황하지 않고 땅바닥에 오줌을 싸서 흙을 진흙으로 만든 다음에 상처에 붙여 피를 멈추게 하는 민간요법도 배우고... 구석구석 흥미롭고 실용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정적인 외꾸눈에게 외다리 창녀가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그러한 재치덩어리 톰의 발언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쉴새없이 쏟아지는 존 스타인벡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역시 여자 꼬시는데는 뻥이 필요한 걸까? 뻥은 용기의 다른 말이라던데... ^^;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이지. 눈을 잃은 후로 당신 거시기가 커졌다고 해.” (1권 376쪽)
톰과 더불어 케이시의 수많은 발언들도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그 중 한 가지가 톰의 큰 아버지인 존이 식구들에게 짐이 된다며 떠나려할 때 위로하는 중간에 나온 말이 있는데, 내가 새겨 듣고 싶은 말 중에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것.” (1권 471쪽)
그리고 그 대화가 흐른 얼마 후에 어머니의 대담함이 부각되는 할머니의 죽음이 있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해 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중략)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거리와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2권120쪽)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겟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빨갱이야!'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2권 148쪽)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중략)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2권 255쪽)
복숭아 농장에서 겨우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던 톰은 국영천막촌에서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다녀온 전직 목사 케이시와 반가운 재회를 한다. 케이시는 말한다.
"감옥은 웃기는 곳이야. 난 뭔가를 찾으려고 애쓰는 예수처럼 광야로 나왔는데, (중략) 내가 정말로 그걸 찾은 곳은 바로 감옥이었어. (중략) 감방 안에는 주정뱅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물건을 훔쳐서 돌아온 사람들이었지. 그것도 필요하긴 한데 훔치는 것 말고는 달리 구할 방법이 없었던 사람들. 알겠나?" (2권 323쪽)
그러던 케이시는 사람들을 이끌고 농장주에 맞서다가 배신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케이시의 죽음을 목격한 톰은 그들과 맞서 싸우다가 또 한 사람을 죽이게 되고 다시 쫓기는 몸이 된다. 아, 가련한 톰~ 벌써 두 번째 살인이라니... 이 사건으로 톰은 많은 것을 깨닫지만 이 소설의 중심 무대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홍수...
홍수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겨우 빗줄기를 피해 들어선 어느 헛간에서 다 죽어가는 병든 사나이...
그 사나이에게 구원이 되는 로저샨의 마지막 행동...
다소 허무하게 끝나는 듯 싶지만 이 소설은 미약한 희망으로 결론 지어진 것이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저주를 내린 산업화와 자본주의...
대홍수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한계...
그 암울한 순간에 다소 황당한 로저샨의 젖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