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Paul Auster.jpg나는 폴 오스터(Paul Auster)라는 이름만 봐도 고독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중반에 내가 주로 자주 찾던 관철동의 코아 아트홀에서 그가 각본을 썼다는 영화 '스모크'를 보고 난 뒤에 굳어진 일종의 고정 관념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영화 속에서 13년 동안 아침마다 한결같은 배경으로 인물만 바뀌는 사진을 찍는 오기의 이야기와 브루클린의 한 담배 가게 단골 손님 폴(윌리엄 허트)의 이미지가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책을 펼치면 폴 오스터의 가족 사진과 그의 아버지 사진이 흑백으로 삽입되어 있다. 제목 탓인지 그 사진만 봐도 무척 고독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이루는 두 가지 에피소드 중 첫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를 펼치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어둡고 짧은 글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내 나이에 읽으니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명언으로 다가온다.

"진실을 찾으려 할 때는 예기치 못한 것에 대비할지니, 이는 진실을 찾기 어렵고 진실을 찾으면 당황하기 때문이니라."

이 글을 내가 이십대에 읽었더라면 대충 무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폴 오스터는 자신이 30대 초반일 때 이 명구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와의 추억을 정리하며 이 글을 썼다. 참으로 독특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들... 도대체 혈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삭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표현들이 참으로 고독하게 다가왔다.  할아버지의 죽음 뒤에 집안의 막내 아들로 고독하게 성장했던 아버지의 모습... 할아버지의 죽음에 뒤엉킨 사연들과 억척스럽게 아버지 형제들을 키워야만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서글프기까지 하다. 진실을 찾다보니 자신의 가족사를 비참하게 파헤쳐야만 하는 작가의 아픔...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느껴지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어린시절 집세를 거둬들일 때 따라 나섰던 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면 존경심이 살아난다. 형편이 어려웠던 어떤 부인이 아버지에게 꿔간 돈을 12년만에 갚으며 보낸 감사의 편지를 찾아 읽게 되면서 기쁨으로 변한다. 자신보다 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듯한 사촌(고모의 아들)에 대한 무덤덤한 질투도 느껴지지만 결국에 폴 오스터는 아버지 샘을 존경하면서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다니엘의 미래를 상상한다.

이 책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콜로디(Carlo Collodi)의 '피노키오의 모험' 한 구절로 시작되는 '기억의 서'이다.
"죽은 사람들이 울면 회복되기 시작하는 거야." 까마귀가 점잔을 떨면서 말하자 올빼미가 되받았다.
"내 유명한 친구이자 동료인 자네의 말을 부인하는 건 미안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죽은 사람이 울면 그건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이 '기억의 서'에서 폴 오스터는 자기 자신을 3인칭 인물인 A로 설정하여 글을 쓴다.
앞 선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에서 언급되었듯 프랑스에 유학을 했던 작가는 유럽적인 특히 프랑스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장들의 인용으로 기억의 글을 써내려 간다.
처음 에피소드는 쉬이 몰입 할 수 있었으나 두번째 에피소드는 다소 몽롱했다 훗날 다시 한 번 더듬어 보고 싶은 글이다.
번역이 서툴었고 곳곳에 오타가 많았지만 다시 한 번 '스모크'라는 영화를 빌려 보고 싶어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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