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전쟁 - 사람을 움직이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51가지 말의 기술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말 한 마디로 하루아침에 왕대접을 받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단 요즘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 흥하거나 망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 하지만 sns가 세상의 중심이 된 요즘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의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이나 페북에 올라가는 짧은 말 한 두마디가 널리 퍼지게 되어서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순식간에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며 이때 지지는 곧 권력이 된다.

 

입담의 제왕이라거나 논객이라거나 뭐 이런 류의 수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의문이었다. 대체 뭘 두고 그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하는가? 듣기에 유려한 단어들로,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로 막힘없이 말을 하면 그게 언변이 좋은 게 되나? 내 얘기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사람 혹은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사람(여러가지 의미로)이나 소위 큰 소리 치는 사람이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싸움의 기술이지 말의 기술은 아닌 듯 하다. 싸움이라면 밀어붙이고 우기고 들이대면 끝날 일. 그러나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말은 나에게서 나갔더라도 그걸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말이고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왔을 때 나의 반응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도 말이다. 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말을 잘 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몇 년 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몇 주 전에 [스피치에센스]라는 연설대회 우승자들의 사례 분석집을 읽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말의 전쟁]은 이런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가 꽤 오랫동안 공들여 읽은 책이다. 다른 인문학서적이나 실용서적류에 비해 꼼꼼하게, 글 속의 저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쉼없이 질문하여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 구절 덕택이다.

 

논쟁 과정에서 다양한 반론이 제시될 수 있다. 반론에 의해 자신의 근거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참인 것과 좋은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면,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했을 때의 나 자신에 대해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라고 한다.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누군가와 토론을 하다 상대가 나의 논리적 약점을 찌르면 나는 감정적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토론은 이내 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올바름이 승리'하도록 이끄는 것이 토론이고 그래서 나를 굴복시킬 정도로 힘이 있는 상대의 반론은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이건 내가 그동안 말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들에 실마리를 주었다.

 

토론의 기술, 연설의 기술 이 두 가지로 크게 양분된 이 책은 단순히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의 목적, 상황 그리고 결과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리했다. 동서고금의 사례들을 각 상황별로 적절하게 끌어와 이해를 높였다. [말의 전쟁]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유명한 토론이나 연설들의 장점을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분석을 싣고 그와 함께 연설 전문을 꼭지별 부록으로 넣었다는 점이다. 특히 연역/귀납 화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연역토론을 귀납화법으로 치환해 이해를 높인 부분(111) 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세심하게 고민해서 이 책의 원고를 준비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저자가 토론의 기술에서 제시한 논거들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연설의 기술에서 챕터를 너무 세분화한 것 아닌가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아쉬운 부분들이지만 그렇다고 책 전체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의문(논리성에 대한 고민)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일방적으로 읽고 마는 책이 아닌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유기적인 책이라는 방증 아닌가.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드는 생각은, '말이란 참 좋다'.

 

세상에는 험한 말, 악한 말, 기분 나쁜 말, 슬픈 말... 참 다양한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참 좋은 것이다.

 

몽테뉴가 그랬듯,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그리고 [말의 전쟁]의 저자가 그리 썼듯이 우리는 말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고 주고 받고 교감하고 마침내 올바름이라는 궁극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말의 전쟁]처럼 토론이나 화법에 대한 책들이 몇 권 출간되었는데 대부분 '싸움'이라는 행위가 연상되는 제목들이 많아 좀 아쉽다. 지지 않는 말이라든지, 이기는 00 이라든지...

 

토론()이 가진 가장 아름답고 긍적적인 측면 즉, 올바름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질에 어울리는 더 멋진 제목들이 나올 수 있을텐데.

 

이를 테면 말의 승리 같은... , 그런 거 말이다.

 

근데, 그러면 책이 안 팔려서 안되는 건가?;;;;;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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