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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ㅣ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잠시만 빌려야겠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
‘선택’은 지구라는 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생명체 중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아니, 숙제 어쩌면 짐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 선택은 일상이다. 삶의 모습과 형태는 각자 너무나 다르겠지만 모두가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의 계단을 오른다. 다만, 선택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오늘 내가 빨간 옷을 입을까 파란 옷을 입을까 정도의 선택을 하는 동안 이 별 반대편의 누군가는 ‘빨간 옷과 파란 옷 중 누구를 먼저 죽일까‘라는 선택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테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에 희생당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다. 이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 테러리스트와 그 조직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증오와 공포를 심는 데에 성공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와 인종에 대한 혹독한 편견 역시 깊은 뿌리를 내렸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작은 책 한 권에서 그는 증오, 공포, 편견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난 시절에 대한 회고나 고백은 아니다. 그는 테러도, 종교도, 국가도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무엇이 아버지를 테러리즘으로 이끌었는지 이해하느라 인생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희망과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다. 광신의 불속에서 자랐으되 비폭력을 받아들인 젊은이의 초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대단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의 화두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화두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증오를 훈련받았어도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감을 선택할 수 있다.
28쪽
책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과 아버지가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서술하는 걸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는 상처 받은 여인을 여왕으로 만들었던 남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품을 내줬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몇 번의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아버지는 이제껏 그가 걸어온 궤도와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저자는 이 시기의 아픔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열세 살이 되었고,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자존감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그칠 기미가 없었고, 늘 복통을 알았으며, 내 또래 여자애들이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밤마다 침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죽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끔찍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는 나 말고 테러를 선택한 것이었다.
92쪽
아버지의 선택, 그 시작과 끔찍한 결과까지 목격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폭행과 편견과 외면으로 양육 받은 아이는 뜻밖에도 비폭력과 화해의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공범이라는 괴로움, 성장기 내내 시달려야 했던 불안과 고통 속에서 그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렸고 그의 선택이 옳음을 알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사람이란 선택을 거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순간에 때로 ‘편견’이란 것이 눈앞을 흐리게 한다. ‘편견’의 저주는 내가 죽이고 괴롭히려는 저이도 사람임을 잊게 하고 화해와 평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게 한다. 그렇게 테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미니 롤러코스터를 탔던 그 반짝반짝하던 어린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결단코 두둔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히 살인이고 수치였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테러리스트인 아버지도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던 저자의 뜻을 이해한다.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이들은 사람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편도 사람이고 그들에 희생된 모두 역시 사람이다, 공감은 증오보다 힘이 세다.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더 이상 편견의 덫에 희생되어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도, 그들에게 희생되는 사람도 없을텐데.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을 비롯하여 편견과 증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전하는 마지막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