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기술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유준칠 옮김 / 해바라기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적당히 웃어넘기는가? 한 소리 하고 싶지만 뒷일이 걱정돼서 그냥 내버려두는가?

이 책은 화를 숨기고, 참고, 감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당연히 발산해야 할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화를 잘 내고, 화를 즐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


* 저자 소개 (나카지마 요시미치)

도쿄 대학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빈 대학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일본 덴쓰 대학에서 ‘시간론’, ‘자아론’, ‘커뮤니케이션론’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ꡔ고독에 대하여ꡕ, ꡔ사람을 미워한다는 것ꡕ, ꡔ내가 싫어하는 10가지 말ꡕ, ꡔ일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책ꡕ, ꡔ대화가 없는 사회ꡕ, ꡔ불행론ꡕ 등 다수가 있다.


* 화내지 못하는 자,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 화내는 데도 방법과 단계가 필요하다

화를 느끼는 기술 −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했다면, 불필요한 해석은 피하고 그 일에서 비롯된 불쾌감을 온전히 느껴라.
화를 키우는 기술 − 상대방의 반응과 얄미운 표정을 떠올리고 분노를 곱씹으며 마음속의 화를 조금씩 키워나가라.
화를 표현하는 기술 − 화는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내보내기보다 그때그때 조금씩 발산하라.
화를 전하는 기술 − 불쾌한 일을 당한 경우,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말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화를 받아들이는 기술 −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면, 상대방에게서 되돌아올 분노와 그로 인해 겪게 될 불쾌한 일들 또한 각오하라.
화를 즐기는 기술 − 자신의 분노를 능숙하게 컨트롤하고, 상대방의 분노도 정확히 받아들여 화를 즐겨라.


* 화를 낸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저자의 생각(J이사님 정리분 ^^;;)

1) 화가 나는 경우 (이사님은 어떨 때 화가 나시나?)
- 기분이 언짢을 때 사소한 자극으로 인한 짜증
-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 부당한 평가 :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말들을 들을 때
- 자신의 약점을 들춰내는 말들을 들을 때
- (전문적인 것에 대하여) 무능력한 사람, 행위, 작품 등을 볼 때
- 지시한 말, 또는 약속 등을 따르지 않을 때(집 : 자식, 회사 : 직원)

2) 화를 낸다는 것
- 위와 같은 경우를 당하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밖으로 표출하는 것들(표정, 말, 행동 등)
- 화를 참는 것이 상책,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고 일단 객관적인 상태에서 대처해야 함.
- 무조건 참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결과이므로 반드시 맞대응을 해야 함.
- 정말 화가 많이 난 경우 : 화가 났음을 표정으로 연출하고 말은 가능한 차분히 할 필요가 있음.
- 화가 별로 나지 않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유도하여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또는 의도한 바대로 상대를 움직이게 만들려는 경우 : 거짓으로 목소리를 높여 상대의 기선을 제압

3) 저자의 경우 화를 낸다는 것은?
-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
- 능동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편(대화를 통한 인간관계 유지)
-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타인도 자신과 같다는 공감대 형성
- 표출에만 있고 개선은 차후의 문제(개선 결과에 상관없음)
-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돌리려는 처세술의 일종

흔히 화는 겉으로 표출해서는 안되며, 그저 참고 억눌러야만 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하기 일쑤다.

그러나 몇년동안의 사회생활동안 무수히 쌓이는 화를 그저 참고 억누르기만 하다보니, 어느새 인간 압력밥솥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다.(한마디로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거쥐)

앞뒤 안가리고 무작정 터트려버리면 "재 또라이 아냐?" 소리밖에 못듣겠지만,  제발 이제 아무때나 참지말자.

다소 직설적이고 무대포적인 표현이나 방법이 다소 섞여 있기는 했으나, 이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한편으로 속이 어느정도 시원했음은 부인 안하련다. 우리 이제 당당히 쌓인 분노를 말하자.

성격좋다는 칭찬이 내 속에 받은 열을 식혀주지는 못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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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 한단고기
이일봉 지음 / 정신세계사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 민족의 알려지지 않은 옛 영광을 밝혀내고자 하는 시리즈가 몇 권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책도 그 중의 한권이다. 물론 일제의 왜곡 등으로 인해서 감춰지거나 사장되어 버린 우리의 빛나는 역사가 없지 않았으리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마땅히 그것들은 밝혀져야만 하고, 재평가받아야 하겠지.

이 책에서도 숨겨진 고대사의 여러가지 진실(?)들이라는 내용이 밝혀지고 있는데, 몇가지만 보도록 하자.

ꡔ실증 한단고기ꡕ가 밝혀낸 고대사의 진실들

- 단군조선은 78개의 속국을 거느린 대제국이었다.
- 삼한의 본류는 대륙에 있었으며, 한반도는 삼한의 일부에 불과했다.
- 기자(箕子)는 결코 조선에 오지 않았다.
- 한사군은 한무제 때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 고구려의 평양성은 두 곳이었으며, 모두 대륙에 있었다.
- 패수는 대륙에 있었으며, 고대의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였다.
- 옥저, 고구려의 사비성, 발해의 남경은 모두 요녕성에 있었다.
- 고구려․백제․신라의 중심지는 대륙이었다.
- 백제와 고구려는 하북성에서 양자강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 대륙의 남단인 절강성 일대는 신라의 영토였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중국과 중국 이외의 오랑캐(?)의 역사라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시야를 몇 배로 확장시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할 것을 요구한다. 중국과 우리 나라의 사서들을 인용해가면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근거를 들면서 고대사의 진실을 검증하려는 시도도 좋았고.

하지만 이 책처럼 중국은 나쁜 나라 우리는 좋은 나라, 선택받은 민족....하는 식의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 기반 아래 모든 서술을 하는 책은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머야 이게...싶은 생각이 들고.

조금만 어렸을때 이책을 읽었으면...와 우리나라가 이렇게 대단한 나라였구나. 그래 역시 한민족은 우수한 민족이었어 하는 생각에 자랑스러움으로 어깨가 으쓱했겠지만,

지금 내가 이책을 읽고난 이후의 소감은, 작가가 꼭 초가삼간에서 콧대만 세우고 앉아있는 양반님이 뒤뜰에 묻혀있던 자기집 족보 캐내서 흐뭇해하는듯한...기분으로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호회 동생이 읽고 싶다고 해서 읽긴 했으나, 한마디로 내 취향에는 안맞는 책이었음. 이제 우리도 좀 냉정해집시다.

난 정말 애국자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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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2005-09-1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걸 읽고 애국자면, 임나일본부설을 펼치는 일본 학자들도 그쪽에선 애국자로 비칠 수도 있죠.;; 사실 저런식의 극단적 민족주의는 경계해야합니다.;

커피우유 2005-09-1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Common님. 이 책 시리즈 부제가 [겨레 밝히는 책들] 이더만요. 오히려 [겨레 어둡게 하는 책들] 이 되지나 않을까 저어됩니다요...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누추한 이 서재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의 표시로...솜씨는 없지만 제가 반죽한 송편 맛좀 보시라고 보여드립니다(입으로도 보여드릴수 있으면 좋았겠으나 아쉬운대로 눈으로나마...^^;;)


요건 화이트 송편...

 

 

 

 

 

 

 

 

 

 


요건 쑥 넣은 그린 송편...첨엔 연두색이었는데 찌니까 이렇게 진한 색이 되었네요

 

 

 

 

 

 

 

 

 

알라딘 가족 여러분 모두모두 즐거운 추석연휴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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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3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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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앙일보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1주일에 한번씩 10주 연속으로 한국사회를 움직인 100대 드라마 시리즈가 타블로이드판 섹션으로 발간이된다(아마 목욜인가 나오지?. 크기가 찌라시사이즈랑 비슷해서 신경써서 잘 안챙기면 아버지가 신문모아놓는곳에 후딱 갖다놔버리시므로 조심해야 한다..^^;;).

7월 말 경인가? 문화부문을 점검하면서, 한국의 지성사를 10년 단위로 나누면서 우리들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책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다.

리영희 교수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서 80년대 민주화투쟁시기를 대변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임지현 한양대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1999년)와 김경일 상명대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필화사건을 겪은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에 이르기까지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명저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다 좋긴 좋았다. 하나도 빼먹을 것 없는 훌륭한 책들이지.

그런데 왜 이 책이 빠졌냔말야. 바로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 말이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 아래,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잔존해있던 고정관념과 기득권에 과감하게 의문부호를 던진 문제의 그 시리즈,

솔직히 이 책을 통해 나는 대학시절 선배나 온갖 의식화된 서적들을 통해 강제적으로 학습해야만 했던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었고, 얼마나 내가  기존의 편협한 사고에 그대로 길들여져 있었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꼭 서양의 저명한 누구의 이론을 빌려오지 않아도, 지금 현재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 책보다 신랄하고 냉철하게 지적해주는 것은 없었다.

내 생각엔 김대중 정부의 집권부터 노무현 정부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개혁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이 지배세력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도록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는데 기여한 것에서, 이 책의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00일보 하면 보수극우신문...으로 이미지 쇄신(?) 시키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었고말야.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가 한국 지성사를 빛낸 책에서 인물과 사상을 빼놓은건 실수한거다. 암 실수고 말고.

(인물과 사상을 열심히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강교수님은 사실 중앙일보에 빚이라면 빚이 있으시다. 수습기자로 중앙일보에 입사해서 한달인가 근무하시다가 은근슬쩍 퇴사를 하셨다나...설마 그 앙갚음으로 중앙일보가 이 책을 제외한건 아니겠지???)

지금은 33호를 끝으로 종간을 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결코 종간을 할 상황이 아니다.

경제불황과 혼란스러운 정국을 핑계삼아 민생안정이라는 허울좋은 구호를 외치는 딴나라당 이하 기득권 세력이 전반적인 지지도 상승곡선을 긋는 이변을 만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개혁을 하는건지 자기들 잇속을 채우자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운 행보를 걷는 열우당 사람들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반 서민들에게, 강교수님이 예전의 짜릿하고 시원함을 주는 시리즈를 다시 써주신다면 진보의 싹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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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의 눈을 의식한 약간의 겉멋, 그리고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적당히 얇은 책이란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결코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애완동물(타이오)의 죽음을 온몸으로 아파하며 추모하는 하나의 진혼곡이다. 그깟 애완동물을 위해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타이오의 죽음을 통해서 그르니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며, 개나 사람이나 “우리의 운명은 모두 같다”는 이 비극적인 인식이야말로, 그르니에가 한 마리 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삶에 깃들어 있는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라고 말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르니에의 많은 글에서 항상 죽음을 읽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삶을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일 터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 보잘것없는 설득력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지도 말자.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커튼을 걷고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뻗는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자. 만일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면 당신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 사랑은 ‘살아남은’ 자가 삶을 ‘사는’ 힘이 된다. ‘삶’은 ‘사랑’의 준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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