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의 눈을 의식한 약간의 겉멋, 그리고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적당히 얇은 책이란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결코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애완동물(타이오)의 죽음을 온몸으로 아파하며 추모하는 하나의 진혼곡이다. 그깟 애완동물을 위해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타이오의 죽음을 통해서 그르니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며, 개나 사람이나 “우리의 운명은 모두 같다”는 이 비극적인 인식이야말로, 그르니에가 한 마리 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삶에 깃들어 있는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라고 말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르니에의 많은 글에서 항상 죽음을 읽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삶을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일 터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 보잘것없는 설득력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지도 말자.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커튼을 걷고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뻗는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자. 만일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면 당신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 사랑은 ‘살아남은’ 자가 삶을 ‘사는’ 힘이 된다. ‘삶’은 ‘사랑’의 준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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