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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 - Biutifu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하비에르 바르댐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조화는 이 둘 중에 한명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 둘의 궁합이 무척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험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통과 절망의 삶을 보여주지만
바르뎀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영화 내내 삶에서의 안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허름한 아파트,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희망을 가질 수도 없고, 벗어 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처럼 우울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들의 삶에는 가족도 친구도 인생도 있다.
그렇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오늘을 내일을 살아야 하는 인생이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음울하고 힘겨워보여도 주인공은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죽은 자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인공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를 매개로 한 죽은 자와 산자, 아프리카인, 중국인과, 경찰, 갱과 건설업자들...
그는 중간자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이용하며 살아왔으며, 그의 삶도 역시 비루하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그는 자신의 안식을 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그럴수록
삶은 더욱 꼬이기까지 한다. 공장 지하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은 자신이 사준 히터때문에 떼죽음을 당하고, 아프리카인은 고향으로 쫓겨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간 부인은 아들을 학대한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나의 안식과 죽음을 바라볼 용기 조차도 가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한다.
정서불안으로 형과 잠자리를 하는 부인을 어루만지며 오히려 자신의 용서를 빌고, 추방당한 아프리카인의
가족을 돌보려고 애써 본다. 아이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인 친구의 부인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주며
부탁해 본다.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하지만 그 마저도 돈을 들고 떠나 버린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그녀를 밤늦게 까지 아픈 몸으로 기다리는데... 그에게 보이는 건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영혼.
아~! 그에게 안식은 찾아 올 수도 없다. 그래도 딸아이에게 얼굴도 본 적없는 할아버지의 반지를 건네며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에게 안식은 찾아 온 걸까?
그의 노력은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도 해결되어 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삶에서 안식은 찾아 온 것같다.

그는 생을 버리지도 않았고, 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은 순간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가져도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ㅜ.ㅜ 결국 가지지 못한 것과 이루지 못하는 것, 불행과 절망이 삶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보아야 하는 것은 생의 이면에 있는 또다른 진실, 잃어버리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인간성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