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144)에 나오는 이야기다. 얼핏 주문처럼 보이는 저 문장은 수능배치표상의 대학 서열이라 한다. 대학 서열로 사람을 차별하는 끔찍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공부의 배신은 한국으로 치면 앞서 말한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쯤에 속하는 미국의 대학을 주로 다룬다.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을 키워드로 원인, 영향, 해결책 등을 톺아보는 책이다. 미국(딴 나라) 얘기하는데 왜 내 속이 갑갑하고 부글거리면서 근심이 깊어지는 건지.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김정운 교수의 추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두 눈을 가린 양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학생들은 똑똑하지만 앞을 못 보는 온순한 양이라는 걸 암시한다.(원제가 ‘Excellent sheep’이다.)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강사, 대학교직원 등 대학에 관련한 사람도 아니면서 난 대학 문제에 열을 올린다. 아마 학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내내 방황만 했던 나는 복수전공도 부전공도 하지 않았고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고 교내외를 불문, 수상경력 같은 것도 없다. 해외봉사활동은커녕 국내봉사활동 증명서(?)도 없고, 인턴십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과 점수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 대학 다니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실제로 물어본 사람도 꽤 있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다. 연애하면서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술도 많이 마셨고 우정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모색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여러 학과의 전공수업을 들었다. 남들은 영어나 시험공부를 할 때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만 읽었다. 결석도 많았다. 취업이나 국가고시 같은 공통의 관심사에 끼어들지 못했던 나는 늘 겉돌았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대학 생활에서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공부란 것은 내게 있어 화두와도 같은 낱말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제외하면 공부가 딱히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역사, 미술, 교육, 철학, 국문, 한문, 영어, 심리, 사회, 식품영양, 생물 등의 학과 수업을 수강한 것도 내 관심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는 못했다. 공부가 내 삶과 연결된 것, 삶 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보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거라면 말이다. 관심도 많고 흥미도 느꼈지만 어떻게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할지를 몰랐고 어떻게 내 삶과 연결해야 할지도 몰랐다.(지금도 모른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공부의 배신은 대학생으로 또 대학을 나와서까지도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내 고민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고민은 나만의 고민인가, 그저 시스템의 문제일 뿐인가? 한국 학생들도 (책에 나오는) 미국 학생들처럼 진정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스펙이나 취업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과 미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공부하고 싶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대체 대학이 어때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자.(지금은 많이 다를까?) 20명 이상은 당연하고 50명 이상이 듣는 강의도 흔한 강의에 대해 나는 늘 불만이었다. 토론은커녕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 학기를 보냈다. 타학과 전공 학생들을 제한하는 수업도 더러 있었다.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면담할 기회는 졸업할 때까지 몇 번 오지 않았다. 내가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피드백을 받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무엇이 어떻게 부족한 것인지(또는 잘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들이 늘 하는 질문 있어요?”란 말에, 왜 교수님은 우리한테 하는 질문이 질문 있어요?”밖에 없는 건지 늘 궁금했다.(‘넌 어떻게 생각하니?’도 있을 텐데.) 강의 중에 간혹 사회적 약자나 기득권층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왜 교수들이 자신들의 비정규직동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그 모든 것에 대해 내 생각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똑똑한'건 아니지만) 한 마리의 '눈 먼 양'인지 모른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공부(배움)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엘리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사회는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가, 교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등. 비단 대학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키워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문제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건 바로 온전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121)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한국의 대학도 미국 대학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위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어쩌면 똑똑한 부모 밑에서 자란 똑똑한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똑똑한 선생으로 가득한 곳은 가장 끔찍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마침내 배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어떤 생각도 집어넣지 말아주세요."라는 요청은 너무도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구나 내 아이가 교육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가 `교육다운 교육`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80쪽)

만약 우리가 우아한 사회, 정당한 사회, 현명하고 번영하는 사회,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들처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귀족사회를 열었다. 우리는 실력사회를 열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열 시간이다. (343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cus Aurelius 2015-05-23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겉에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왜 공부를 하고 계속 배우고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유(돈,직업, 명예 등등) or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유(배움,앎에 대한 즐거움, 지식의 추구를 통한 인격완성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등..)를 대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니.. ㅜㅜ

cobomi 2015-05-23 12:58   좋아요 1 | URL
예로 드신 두 가지 이유 모두 가벼운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직업도 중요하고 인격완성(?)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 중 어느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할 때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더구나 그게 사회 전체적인 흐름이 되어버린다면 개인으로서는 대세에 거스르거나 비판하기 쉽지 않죠. 이 책 추천드릴게요. 진지한 조언들도 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Marcus Aurelius 2015-05-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 그렇죠..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2019-07-09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데카르트 철학을 일컬어 '근대 철학의 효시'라 한다. 방법서설을 펼쳐든 건 데카르트가 어떤 말들을 했기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건지 내 나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쫄지 말자. 대철학자, 대문호, 거장, 고전 같은 단어에 주눅이 들어 어쩐지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것만 같은심정을 미리부터 갖지는 말자. 그저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1600년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야 책장을 넘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과연 내가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양식(bon sens)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146)

이럴 수가! 방법서설1부 첫 문장부터 놀랍다. 이 분(데카르트)은 분명히 1637년에 방법서설을 출간했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평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뭔가 평등사상의 냄새를 맡은 기분. 내가 확대 해석한 걸 수도 있지만, 첫 문장을 읽고 놀라는 내 자신을 대견해 하며(뭔가 알아낸 듯하여)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이 좋았다.

 

방법서설은 매우 읽을 만했다. 심지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쉽게 이해가 되는데도 어쩐지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것만 같아서 두 번 생각하는 찜찜함) 사실 함께 실려 있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먼저 읽었는데(앞에 실려 있어서),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내 정신이 마치 데카르트의 지도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데 애를 좀 먹었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글 한편을 읽고 나니(말 그대로 읽기만 한 것) 방법서설이 흔히 보는 에세이처럼(실제로 '에세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방법서설이란 말부터 풀자. 방법에 관한 서설이다. ‘방법(method)’에 대해 차례대로 차근차근 설명(discourse, 敍說)하겠다는 거다. 무슨 방법? 진리를 찾는, 학문하는 방법이다. 그럼 왜 이런 책을 쓴 걸까? 1637이 될 때까지 인류가 학문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만) 아니다. 데카르트의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 “내가 학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사람들도 여럿 만나봤는데, 세상에! 사람마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러고, 읽는 책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거야. 여행하는 나라마다 풍습도 달랐어. 이건 뭐, 확실하고 명백한 진리라는 게 거의 없더라고. 도대체 뭘 믿고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 모든 게 의심스러웠어. 사람이라는 게 뭐야? 이성(理性) 빼면 짐승하고 다른 게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이성을 제대로 쓸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애. 이성을 갖고 있기만 하면 뭐해? 제대로 사용해서 명명백백한 진리를 찾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 참된 지식을 가져야지 인생도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지혜롭게 사는 게, 그게 바로 행복이야. 자, 그러면 참된 지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 내가 바로 그 방법을 찾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려(설교하려)는 건 아니야. 그저 내가 이성을 잘 인도하려고 그 방법대로 살아왔다는 걸 말하고 있을 뿐이니 오해 말도록.”

 

그럼 어떤 방법으로 살아왔다는 건가? 데카르트는 본인이 공부한 것 중에 그나마 수학에 끌렸는데, 수학은 확실하고 명확했기 때문이다다른 학문도 수학처럼 확실성과 명증성의 토대 위에 놓인다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수학적인 방법을 응용하여 (모든) 학문하는 방법(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어떤 방법인가? 명석판명하게 내 정신에 (참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만 받아들인다, 검토할 문제는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눈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가장 복잡한 것까지 단계적으로 살핀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열거하여 검사한다.

 

그렇다. 싱거우리만치 짧고 간단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방법을 토대로 철학을 시작한다(세워나간다)는 것이 함정. 나머지 장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고안한 방법에 따라 확실한 것을 찾아내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문제를 나누어 차근차근 차례대로(형이상학적 토대에서 자연학까지) 고찰해 나간다. '방법'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찾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수단을 마련했으니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 그 과정이 나머지 장에 실려 있다.

 

나는 읽는 내내 데카르트가 강박증 환자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하는 것. 어떤 물건이든 제자리에 오와 열을 맞춰서 두려고 하는 사람처럼, 깔끔한 전제에서 시작해 순서대로, 규칙에 따라 생각해 나가는 것. 정돈되고 균형 잡힌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정돈’, ‘비율’, ‘규칙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등등. ‘완벽한, 생각하는 기계가 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인간이 자신의 재능으로 무수히 많은 자동기계, 즉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탁월한 운동을 하는 기계로 간주할 것이다.”(213)) 생각 속에서만 거대한 세계를 만드는 데카르트, 그 세계엔 인간관계, 도덕, 감정 등이 없다.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들의 세계라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왜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확실히 데카르트가 주장한 방법은 일반적인 학문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방법을 통해 애매모호한 건 모두 보류하고, 이성을 제대로 사용해서 삶에 유용한 지식에 이를 수 있는 바,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변적인 철학 대신에 실제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220) 데카르트 이후의 세계는 알다시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 밖에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수단과 학식이 적은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사게 하는 수단을 제공해주며”(152)라든가, “학자가 하는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157~158)라고 말하는 등, 쓸데없는 논쟁이나 일삼는 학자(특히 철학자, 수사학자 등)들을 비판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책이다. 기대(?)보다 얇고,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내용이 쉽고 심지어 재미있다. 데카르트가 생각을 밀고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동의도 하고 반박도 하게 된다. 아니,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유용해지는 책이다.(자랑거리가 되므로)

 

 

덧붙이는 말.

내게 있는 번역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현복이 옮긴 문예출판사판(2014, 초판11997)이고 다른 하나는 최명관이 옮긴 도서출판창에서 나온 책(개정판, 2014)이다. 번갈아 읽었는데 둘 다 괜찮지만 문예출판사판이 더 좋은 것 같다.

문예출판사판은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도 함께 있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방법에 집중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심화해 놓은 것이다.) 문예출판사판이 옮긴이의 주해가 꼼꼼해서 읽기 좋았고 번역도 최명관에 비해 성실한 느낌이었다. 불어를 모르니 원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번역본에서 서로 다르게 번역한 부분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최명관은 "나 자신을 연구하기로"(76)라고 번역한 것을 이현복은 "나 자신 속에서 연구하기로"(158)라 번역한 것이다. 최명관은 아무 설명도 없지만, 이현복은 주석을 달아서 그렇게 번역한 이유와 의미를 짚어준다.

문예출판사판에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 주해, 옮긴이의 해설, 데카르트 연보가 실려 있고, 도서출판창판에는 역자가 구성한 <데카르트의 생애><방법서설>, <성찰>, <데카르트 연구>(옮긴이 논문)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185쪽)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5-2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제시로 그리 되었죠. 근대성의 출현을 자아 출현에서 보니까요.
하지만 현재는 `나는 잘못 생각한다`는 지적들이 대두... `불확실성의 원리`라든지 등등.
저도 늘 미흡한 철학공부 중이라 더 깊게 아시는 분이 또 말씀해 주시길~

cobomi 2015-05-21 00:12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저도 자아(주체)출현이 근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배웠던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는 안 떠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요ㅎㅎㅎ
감사합니다^^

yureka01 2015-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키토 에르고 숨.^^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책 읽기,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이 유행하는 건가? 아니면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그런 종류인가.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도 그 비슷한 책이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책에 나오는 24명의 '파워라이터'들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걸 가리키는 건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결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

 

책은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다섯 명이 '파워라이터'를 선정하고, 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 모음이다. '자기 분야와 관련된 책을 계속 쓰면서 일정량의 판매를 올리고 대중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저자를 일컬어 파워라이터라고'(5쪽) 한다. 파워라이터들이 글감을 마련하는 과정과 글을 풀어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책의 목적은 파워라이터들에 대해 갖고 있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 그리고 예비 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저자들의 장서 규모와 삶의 이력, 직접 만나본 기자의 소감 등도 소소하고 간략하게 실려 있다.

 

300쪽 남짓한 분량의 책에 서문과 목차 등을 제외하면 280쪽도 채 안 되는데 무려 24명의 파워라이터를 다루고 있다. 한 명 당 10쪽 내외이고 그마저도 본문에서 따온 문구와 저자의 사진으로 채운 부분이 있으니, 내용이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양한 저자들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책의 목적에 비해 내용은 가볍다.

 

구체적으로는 파워라이터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놓은 형식이다. 10쪽도 안 되는 글인데 그걸 짧게 쪼개서 각각 제목까지 달아놓았다. 신문기자들이 만든 책이라서 그런가, 시사주간지를 읽는 듯한 구성이었다. 덕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점이 아쉽다. 인터뷰가 중심이라기엔 인터뷰 자체보다 기자의 서술 부분이 많다는 것. 그렇다고 해당 파워라이터에 대한 정보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석한 것이 중심이라기에도 어설프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한 가지에 집중해서 내용을 풍부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 두께에는 과분할 정도의 파워라이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 잘 몰랐던 저자(혹은 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는 점은 좋다. 파워라이터마다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한 철학(?)과 방법이 다르므로 공통된 지침을 마련하기는 힘들지만 각각을 참고하는 것은 유용할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현준 2015-05-17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글쓰기에 욕심이 생겨...읽을려고 했었는데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장정일의 독서일기 2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2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2권은 1권에 비해 독후감 한 편당 분량이 늘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좀더 풍부해진 해석과 감상을 맛볼 수 있었다.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승옥의 무진기행,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새도매저키즘,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물의 가족, 김인숙의 칼날과 사랑, 김주영의 아들의 겨울, 호영송의 흐름 속의 집, 신경숙의 외딴방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며칠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고 독후감을 올렸는데, 오늘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리뷰를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리뷰는 4~5편 밖에 없고,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이다. !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니 감상평도 다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도 아닌데 변명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오지랖)

 

같은 책이라 해도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讀者)의 몫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어떤 관점에서 읽고 있으며, 무엇을 얻을 속셈인가? 물론 처음부터 숨은 목적(?)을 가지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다 보니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먼저, 책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 방식.

내가 읽지 못했고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이라 해도 상관 없다. 저자가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무엇을 근거로 어떤 해석을 내놓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정히 언급된 책이 어떤 내용인가(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으니 검색하면 된다.

 

두 번째는 한정적이긴 하지만(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영화, 연극, 희곡, 음악에 대한 감상평도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희곡집에 대한 평은 내가 평소 안보는 것이라 신선했다. 관심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악(음악에 관한 책),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세 번째는 역사적인(?) 것. 20년이면 짧은 것 같지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그 시절(20년 전)과 달라진 점이 많다('응사'를 보면 알 것이다). 책에 언급된 작품들과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저자가 자주 쓰는 단어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 출신(학출?)에 대한 반성,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빚어진 가정의 붕괴, 개인화, 물신화,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보면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는 어떨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 잘 몰랐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절판된 책도 많아 구하기 힘들지만 중고장터와 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그래도 못 구하면 어쩔 수 없다) 책에서 언급된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나에게 끼친 중요한 영향이다.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은 어떤 주제를 많이 택할까, 작가론 소설론 시론 같은 건 어떤 것일까, 비평집을 좀 읽어야겠다 등등. 실로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은, 장정일의 아내가 소설가 신이현이라는 것!(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진 않았지만) 책에 FBI 심리분석관, 원래 내가 읽으려고 샀던 책이 아니라 아내가 자기 소설을 쓰는 데 참고하고 싶다면서 보고 싶어했던 책.”(45)이란 문장이 있기에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2권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에로티시즘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부분(121~124), 정화진의 시 51편을 민음사에 보내며(출간 부탁) 쓴 편지(나중에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211~213), 저자가 쓴 단막극 이디푸스와의 여행(원제: 긴 여행)에 대한 작가의 말(259~260), 최현묵의 연극(끽다거〉) 책자에 실은 작가 초상(269~270) 등의 글도 실려 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체제에 비판적인 체하는 작가들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111쪽)

기껏 자기가 체험하거나 어깨 너머로 목격한 인상적인 사건을 몇 명의 꼭두각시 같은 화자의 입을 빌려 나열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믿고 있는 작가에게 어떻게 소설을 가르칠 것인가? 막막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묶으면 열 권, 스무 권은 될 거다`고 마음속 깊이 벼르면서도, 결국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노인네들의 절망만이 소설이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노인네들은 생각했다. `내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되거나 교환될 수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것이다. 하므로 내 삶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똑같이 유일무이한 글쓰기가 고안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안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을 표현할 수 없다. 유일무이한 내 삶을 어떻게, 누구나 해왔던 글쓰기의 방식으로 담아낸단 말인가!` 노인네들을 절망하게 하고, 절필하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절필을 요구하지 않지만, 작가에겐 절필에까지 이르는 절망이 필요하다.(199쪽)

고통은 인간 존재의 출발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으로 절을 짓는다.(251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5-16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은 극작가이기도 하지요. 희곡도 작품성 뛰어납니다.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한국에서 학력 문제로 가장 시달림과 폄하를 많이 당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토록 더 공부에 치열했던 거겠죠. 시대에 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과 오버랩이 되기도 하는데, 장정일이 프랑스에서 시나리오 공부도 해서 김기덕과는 또다른 영화를 만들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한 건 아쉬워요.

cobomi 2015-05-16 03: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왠지 아쉽네요.
희곡도 찾아 봐야겠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낭만인생 2015-05-16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 얼마 전 서민교수가 서두에서 장정일을 유난히 부러워 하더군요. 그에 비해 자신은 무명이라고! 그럼 우리는 뭐죠? 글 잘 읽었습니다. 1은 읽었는데 2는 아직 읽지 않아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절판이라 구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cobomi 2015-05-16 23: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최근 여러 곳에서 `장정일` 이름 발견했어요. 그러던 차에 스승의날까지 겹쳐서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ㅎㅎ 중고 장터까지는 못 살폈는데 아마 있을 것 같습니다. 즐독하세요!

cyrus 2015-05-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것이 어렵더군요. 남이 쓴 서평에 대해서 따지는 듯한 입장이 되는 것 같아요.

cobomi 2015-05-16 23:15   좋아요 0 | URL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건 어색하고 쫄리긴 해요. 하지만 그것도 책은 책이니까요.
전 저자한테 따지려 한다기보다 책에 대해서 따지고 싶을 땐 꽤 되는데요? 이 때 따진다는 건 읽다가 혈압 오르는 책... 이를테면 모양만 한국어일 때... 내용이 빈약하다 못해 읽을 거리가 없음에도(저자가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의 책으로 반복 출간할 때 포함) 책값이 비쌀 때... 심각한 오탈자 같은 거 말이죠ㅎㅎㅎ
또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거리가 있을 때, 논리가 이상하거나 빈약할 때도 소심해서 속으로 혼자 따져요 ㅋㅋㅋㅋㅋㅋㅋ
 
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 이건 꼭 읽어볼 책이라는 말을 먼저 하자.  

그리고 독후감.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달력에 표시된 각종 기념일과 행사를 체크하다가 문득 스승의 날에 눈길이 머물렀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이건 순수한 의미에서다) 국어선생님이 있었다. 난 가끔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곤 했다. 뭔가 그 나이 때 아이다운 허세 같은 거였다. 그저 내 얘기를 듣기만 하셨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 보렴."

 

당장 책을 샀는데(허세였다), 무려 다섯 권이었다.(당시 5권까지 출간)

학생이 가진 돈으로 장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수능공부에 필요하다는 둥 온갖 구실로 엄마의 주머니를 털었던 듯하다. 열심히 읽었고, 내 기억 속에 장정일은 '책을 많이 읽는 똑똑한 아저씨' 로 남았다. 그 시절 독후감 공책을 찾아 보면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대한 글도 있을지 모르겠다. 보나마나 민망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다니?

몇 개월 전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책을 잔뜩 들고 갔는데(팔려고), 그 속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다섯 권도 끼어있었다. 놀랍게도 "밑줄 그은 부분이 5페이지가 넘어서" 팔지 못했다.(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기준이다.)

그때 팔 수 있었다면, 그래서 팔았으면 지금 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을 것 같다.

 

국어선생님…. 스승의 날에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고, 대신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시 펼쳤다. 읽다가 이따금씩 선생님이 떠올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나한테 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 건지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아서. 아마도 내 허세가 우스꽝스러우셨던 거 아닐까 싶다.

그땐 아마 대충 읽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니 사회주의니 마르크스니 그런 것도 몰랐을 때고, 에로티시즘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였으니까.(지금이라고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이게 정말 20년 전에 나온 책이야?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나 출간년도, 상영 영화, 김영삼, 새마을호(지금 같으면 KTX를 탔겠지) 얘기가 나오는 걸 봐서는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선 책 참말로 많이 봤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핵심을 쉽게 전달(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데도)하는 글솜씨에 놀라고, 저자만의 명쾌한 해석에 또 놀란다. 놀람의 연속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이 글을 쓸 무렵 저자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엇비슷하다. 근데 난 왜 이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살짝 심각해졌지만, 대신 나는 저자보다 술을 더 열정적으로 마셨을 거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본다.(ㅠ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 나도 독서와 글쓰기에 더욱 매진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그걸 바라셨을까?) 애석하다.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제자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

6, 7권도 중고로 구입했으니 부지런히 읽자.

 

* 그런데 이거 시리즈인데, 한 권씩 독후감을 올려야 하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5-13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나 2권 이상의 책에 관한 서평을 쓸 때 난감합니다. 서평을 안 쓰면 시리즈 전체를 다 읽어도 읽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cobomi 2015-05-14 18:43   좋아요 0 | URL
공감! 저는 서평이라기보다 독후감인데요, 안쓰면 괜히 찜찜해요ㅎㅎ 그냥 읽고 치운 느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