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과음을 했다. 취한 탓에 음식도 왕창 먹었다. 기억도 먹어 버렸나 보다. 숙취도 힘들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 때문에 민망하고 낯뜨겁다. 차라리 필름이 완전히 끊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거다. 한 5억 명쯤 살고 있는 것 같다. 만취하면 골고루 등장한다.

 

읽고 있는 책이 〈과식의 심리학〉이건만, 과식의 심리를 꿰뚫는 것과 과식하지 않는 건 별개다. '과식하지 말아야겠어' 마음 먹었다가 그날 저녁 곧장 과음/식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소비', '소비하다', '소비주의' 등의 단어를 개념을 밝히고 과식이 곧 과소비라고 말한다. 많이 먹는 것은 많이 소비 하는 것이다. 과소비는 소비사회의 구조이자 동력이며 귀결이다.

 

과음도 과소비의 일종이니까 소비사회, 소비주의와 연관지어 보고 싶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과음 탓일 거다...) 술 광고도 음주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각종 먹방이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맛집을 소개하고 먹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일한 메뉴를 주문하고 술을 곁들이는 식이다. 당장 먹지 않으면 삶의 낙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먹어, 마셔! 인생 한번 뿐이야! SNS에 올라오는 음식(음식점, 술, 카페...) 사진을 보면 그걸 아직 먹어보지 못한 게 내가 뭔가 뒤쳐진 느낌도 든다. 이쯤 되면 저자의 주장과 분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안 먹고는 버틸 수 없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먹는 거다! 내 탓이 아니야!

 

이 책은 심리학, 영양학, 정치학, 경제학 등 여러 방면을 아우른다. 재미 있다. 끝까지 다 읽어도 나의 과음/식 습관이 당장 바뀌진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의식하게 되진 않을까. 결론은,,, 당분간 술은 꼴도 보기 싫다는 거다. 음..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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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S에 공유되는 맛집 사진도 식탐을 유발하는 원인입니다. 예전에 맛집 탐방하는 게 삶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냥 싸고 맛나는 음식점 몇 군데만 가는 것이 편해졌어요. ^^

cobomi 2016-11-25 18: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음식 사진만 봐도 당장 먹고 싶죠. 저도 맛집 찾아다니곤 했는데 이제는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 노력해요. 외식이 잦다 보니 경제적 부담도 크고 살도 많이 쪘고요. 먹는 거 생각 좀 그만 하고 싶어요ㅋㅋㅋㅋ

noble781 2017-01-05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프로 공감가는 글입니다!
 
모으지 않는 연습 - 마음.관계.물건에서 가벼워지는 가르침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지름신이 강림할 때가 있다. 내 경우엔 책, 필기도구, 먹을 거리(특히 주류(酒類))가 그렇다. 다른 것들에는 돈을 쓰지 않는 편이다. 화장은 안하니까 화장품 살 일이 없고, 집안 인테리어는 '단순하게', '편하게', '청소하기 쉽게'가 모토라서 크게 돈을 쓰지 않는다. 그밖에 옷, 신발, 가방, 소품 등도 마찬가지다.

 

사지 않아도 될 것을 사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것 등 충동구매를 일컬어 '지름신이 강림한다'고 하지 않나. 지름신이 강림하면 사지 않고 못 배기는 상태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사들인 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지름신이 무서운 것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후회와 자책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쁨은 잠깐이다. 고통이 훨씬 크다.

 

책을 살 때 지름신이 강림하면 애초에 사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을 '지르게' 된다. 처음엔 필요한 것(나름 엄선한 것) 한두 권을 사려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한다. 그러다 메인 화면을 수놓은 신간, 전집, 디자인이 예쁜 책, 읽을 엄두가 안나서 사지 않았던 두꺼운 책 들을 홀린듯이 클릭한다. 장바구니에 마구 담는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도 주워 담는다. 아차차, 사려고 했던 책도 담는다. 결제해야 할 금액이 높아진다. 쿠폰 할인, 적립금, 예치금을 생각하면서 결제수단을 고민한다.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불하려니 부담스럽다.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로 결제하면 매월 얼마나 내야 하는지 어림잡아 본다. 월납으로 따지니까 부담스럽지 않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기왕 사는 거 시원하게 지르자. 몇 권 더 추가한들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뭔가 내 무의식(?)을 건드리는 듯한 제목의 책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빛보다 빠른 결제. 얼마 지나지 않아 헛헛한 기분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 '재밌게 읽으면 되지 뭐' 하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모으지 않는 연습>은 그렇게 구입한 책이다. 제목만 보고 홀가분해진 내 삶을 상상하며 장바구니에 담았다. 책에 내가 모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냥 모으지 않으면 되는 건데 그걸 굳이 글로 읽겠다고 또 책을 사다니!' 보통의 상태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름신이 강림하면 오직 사야 할 이유만 떠오른다. 무섭다.

 

샀으니까 읽는다. 읽는 내내 석연치 않다. 이걸 왜 샀을까, 왜 샀을까... 순전히 개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이런 '아름다운' 책이 싫다.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시시콜콜 아름답고 착하고 바른 말만 하는 책이 나는 불편하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거야, 이런 게 중요한 거야", "내가 살아 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현명해",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어", "네 마음이 중요한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사람을 좋아해"... 결론은 다 내 탓. 아니면 일종의 정신승리법으로 가득하다. 책에서 말한 대로 살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이유는 책에서 말한 대로 살지 않아서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남 탓만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지적한다. 그래 놓고 "자책만 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너무 휘둘리는 거다"라고도 한다.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책도 그런, '그래서 어쩌라고' 종류의 책이다. 구체적인 삶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의 책. 내가 보기엔 엄살이 가득한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내가 너무 오만하고 삐딱한가 싶어서다. 한번 '긍정적으로' 읽어 보고 싶었다.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실패해서 아쉽지는 않다. 내가 불통인 건지, 책이 이상한 건지. 책 내용 중 하나, '지름신 조심하기'는 옳았구나! 지름신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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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가 문득 집회 생각이 나고, 갑자기 분통이 터진다.

아, 책 읽고 싶은데.

책.

책...

책?

 

 

'시크릿 가든'에 계시는 '근라임'씨께 드리는 책 라임.

 

 

요즘 자주 생각하죠, '내가 이러려고 국민하나' 하는 자책.

국민이 준 겁니다, 당신이 맡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중책.

그러니 귀담아 들으세요, 국민들의 질책.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어요, 당신이 펼친 정책.

알고보니 순실씨와 함께 벌인 엄청난 계책(計策).

이것도 제대로 돌려놓읍시다, 아이들 역사책.

도대체 느끼긴 하는 건가요, 양심의 가책.

아니, 가책보다 중요한 건 대책.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들은 그저 궁여지책.

혹은 미봉책.

아니면 주책.

아마 받기 어려울 거예요, 면책(免責).

그러니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상책.

잘 모르겠으면 이 사람 말도 들어보세요, 전원책.

당신이 가야할 곳에 있는 것은 철책.

그곳에서 순실씨와 함께 하세요, 산책.

그리고 함께 읽읍시다, 좋은 책.

당신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는 광장으로 출책(출첵ㅋ).

 

 

 

다 쓰고 보니 꽤 그럴싸한데?ㅋㅋㅋ

 

아놔... 나도 미쳐가는구나.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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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1-20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라임좋네요

cobomi 2016-11-20 13:10   좋아요 0 | URL
앗 부끄럽네요ㅎㅎㅎ

cyrus 2016-11-2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이러려고 책 제목이 붙여졌나 자괴감이 들어...

cobomi 2016-11-20 13: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빵 터졌어요ㅋㅋㅋㅋ

다락방 2016-11-2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글 짱인데요??!!

cobomi 2016-11-27 07:53   좋아요 0 | URL
앗,,, 다시 보니 완전 부끄럽네요ㅋㅋㅋㅋ
 
라이프 트렌드 2017 : 적당한 불편
김용섭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얼마만큼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까? 정답은 '적당히'다. 저자의 분석(예견,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여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편한 것만 찾기보다 불편하더라도 환경, 사회적 약자 등을 생각해서 소비한다. 제목 그대로 '적당한 불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 불편도 소비의 대상이자, 작은 사치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9쪽).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적당한'이란 단어가 썩 상쾌하지 않다. 감당할 만큼, 즐길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정도. 적당히, 어느 정도, 요령 있게,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정 불편하면 그만두면 되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기꺼이 불편을 선택했다,는 뭔가 보여주기 식의 어감이랄까. 뭐 이것도 트렌드라니까. 불편도 소비의 대상이라니까.

 

여기서 편함(편리)과 불편을 가르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잘 살다가 어느 날 등장한 상품(물건,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그러다 그 물건이 없으면 불편하게 여긴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며칠 전에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문구류를 구입했는데, 3일(영업일 기준)이 지나도 택배가 오지 않았다. 사흘째 밤부터 초조하고 짜증나고 답답했다. 나흘째 택배를 받고서야 깨달은 것은 내가 쿠팡 로켓배송과 알라딘 당일배송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알라딘을 이용하기 전엔 주로 교보문고를 이용했는데 그때는 택배가 늦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올까 기다리긴 했지만 초조하고 짜증날 지경은 아니었다. 이젠 사흘만 지나도 안절부절 못하다니.

 

불편이 소비의 대상이자 '작은 사치'의 대상이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불편을 감수할만큼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환경 보호 따위의 사회적 가치, 높은 질, 독특한 디자인, 한정 수량, 남다른 스토리, 어디에도 없는 것, 특별한 경험 등.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도 쉽게 살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건 곧 취향과도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삶의 방식, 라이프 스타일과 연결된다. 그래서 제목이 "라이프 트렌드".

 

어쨌든 2017년에는 '적당한 불편'이 트렌드라는데, 2016년 말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심기가) '매우' 불편하니 어이순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적당히'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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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특별판, 양장)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한동안 '메갈리아'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최근에야 알았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왜 변명하는지는 모르겠다), 바쁘고 지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쓰기 힘들었고, 알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게 다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고,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아이에 대한 책임은 엄마게 더 많이 주어져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출산 후(어쩌면 임신 기간부터) 내가 가장 의아했던 것은 '모성'이었다.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모성이 있네 없네 하는 말들은 누구에게서, 왜, 언제부터 거론된 건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때 함께 있던 산모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수유 얘기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모유)수유하러 거의 안 간다고 말했더니 어느 산모 하나가 "제왕절개 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러니까 그렇죠. 자연분만하면 모성이 넘쳐서 자주 가게 되요."라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했다. 대체 뭐 그런 논리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모성은 자연분만이고 모유수유란 말이야? 그 후로도 난 내가 왜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는지', '모유수유를 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한 적이 꽤 있다. 그런 걸 왜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놀란 듯이 물어보곤 했다. "제왕절개 했단 말이야?", "아니 왜 분유 먹여?"

 

어디 '모성' 얘기 뿐인가. 그 밖에도 숱하게 많다. 책에는 내가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일들, 생각한 것들,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 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

 

'맨움'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고, 흥분할 수도 있다. 역겹거나 짜증나거나 불쾌할 수도 있다. 그 모든 느낌들은 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 관점을 드러내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훌륭한 페미니즘 입문서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이상하고 기만적인 일인지 깨닫게 된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의 '맨'들은 '맨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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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6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띠로리 2016-11-1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신 것 보니까 이 책을 양장으로 재빨리 구매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예요ㅜㅜ아쉽지만 구 버전으로라도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당ㅎㅎ리뷰 잘 봤습니다!

cobomi 2016-11-16 18:4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특별판인 건 알고 있었는데 한정판이었나 보네요. 저는 팝업광고에 끌려서 샀거든요. 메갈리아랑 관련 있나 싶어서요;; 무식했던 게 책 사는 데 도움이 좀 되었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