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6-02-17 Why?

'인문서의 사망설' 마저 나도는 이 엄혹한 시절에 역사서가 10만 부나 팔렸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이덕일 지음)은 불과 7개월 만에 그 기록을 달성했다.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의 신화를 이뤄가는 동안에는 판매부수가 늘어나 지금은 한달에 1만5000부가 팔리고 있어 올해 안에 20만 부의 '신화'마저 이뤄낼 태세다. 이 책이나 '왕의 남자'는 모두 '팩션(팩트+픽션)'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글쓴이의 상상력이 더 기발했다.

달리 말하면 역사추리다. 국내에서는 모든 추리소설이 아사상태라지만 유독 역사추리는 상종가를 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 시장에서는 팩션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열풍이 거세다. 이 와중에 나온 '조선왕 독살사건'은 오래 전 나온 '누가 왕을 죽였는가'(푸른역사)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그리고 책 표지에 '의혹과 수수께끼',  '음모와 진실' 등의 단어를 넣어 조선왕조판 '판도라의 상자'로 포장한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만 260만 부가 팔린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를 비롯한 팩션의 흐름을 타기 위한 시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역사서는 남성독자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20~30대 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본문에 컬러사진을 60여 장 사용해 상상력을 진실로 믿게 만든, 팩션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은 '의혹'을 진실로 믿게 한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이 책의 성공은 우리 출판에도 개척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팩션으로 세계 독자를 겨냥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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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6-03-03  Why?

'엘리베이터 스피치'라는 말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감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30초에서 1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제작자 마음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인상적인 설명을 통해 자본가가 거금을 투자하도록 만들려면 늘 오감(五感)을 열어두고 세상사와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이 필요해졌다. 국가간의 장벽과 조직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난 뒤부터 모든 조직은 구성원에게 직관과 통찰이라는 새로운 생존방식으로 무장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게 무장된 사람만이 2초라는 찰나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책 제목이기도한,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이 지닌 힘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려주는 '블링크'(말콤 그래드웰, 21세기북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같은 저자의 책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티핑 포인트'는 2004년 9월 국내에 출간되었으나 불과 2만 부 밖에 판매되지 않았다. 하지만 '블링크'는 세 달 만에 10만 부 팔렸다. 그런 결과는 볼링을 칠 때 맨 앞에 놓여있는 킹핀을 무너뜨리듯이 오피니언 리더를 집중 공략한 '킹핀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 어떤가? 이 책으로 심미적 판단 능력을 키워보는 것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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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006-03-30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긍정의 힘’ ‘마음 탓이다’ 등 자기수양과 더불어 살기 일깨워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그 해를 특징짓는 키워드가 있게 마련이다. 2004년에는 ‘아침형 인간’ ‘팩션’ 같은 키워드가, 2005년에는 ‘일류’ ‘심리학’ ‘리메이크 출판’ ‘블루오션’ 등이 한 해 동안의 출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였다. 출판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키워드는 객관적 현상과 맞물리지만 감성적 키워드도 존재한다. 객관적 키워드와는 다른 독자의 무의식 혹은 심리적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감성적 키워드의 계보는 작지만 따뜻한 이야기, 불교 에세이, 자기계발서가 이어오고 있다. 1997년 큰 인기를 얻었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와 같은 책이 어두운 시대 분위기로 지친 독자에게 따뜻함을 전달해 공감을 얻었다면 2001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는 속도가 경쟁력인 디지털 시대에 ‘느림’이라는 화두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5년의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위즈덤하우스)는 따뜻한 이야기 모음집이지만 ‘감동 실천’을 통해 책이 지닌 상투성과 교훈성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종교적 가르침을 담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 다스리는 법을 전하는 두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법정 스님이 출가 50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로 인정받고 있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두란노)이다. 한 사람은 불가의 수행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입장이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두 사람이 종교를 떠나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놀랍게 일치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엮은 류시화 시인은 서문에서 유대교 하시디즘(경건주의)의 우화를 꺼내며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절한 비유로 전달한다. 우화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슬픔의 나무로 가게 된다. 막 천국에 도착한 사람은 나무에 자신의 삶에서 겪은 슬픈 사연을 걸어 놓고 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 하나하나 읽다가 마지막에 이르면 천사는 나무에 걸려 있는 이야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해서 다음 생을 살고 싶은가를 묻는다.

영혼이 가장 덜 슬퍼 보이는 삶을 선택하면 다음 생을 그렇게 살게 해주겠노라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우화는 어떤 영혼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선택하게 된다고 전한다. 자신이 살았던 삶이 가장 덜 슬프고 덜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인데, 법정 스님이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역시 다른 삶을 탐내거나 소망하지 않고 이 순간을 감사할 때 자신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다. 내가 겪고 있다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만 지내고 보면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작은 것에 감동하며 과거나 미래로 한눈을 팔지 말고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 때만이 모든 존재가 행복해질 수 있다.

조엘 오스틴 역시 ‘긍정의 힘’에서 과거야 어쨌든 오늘은 새로운 날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무조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받기만 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인생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 조엘 오스틴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기적이란 베푸는 삶이다. 자신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 불가사의하게도 자신의 문제는 더 이상 걱정거리로 남지 않으며 남에게 베푸는 모든 선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과 조엘 오스틴의 책은 같은 목소리로 세속적 성공이란 미래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과, 무엇을 이루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 그리고 성공보다는 나눔과 베풂을 통해서만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경쟁을 통해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새 우리 곁에는 자기수양과 나눔이라는 감성적 키워드가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 역시 혼자 잘사는 법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과 나눔을 강조한 책이다. 책은 오지여행가에서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변신한 한비야 씨가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의미 있고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가 하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난민현장에서 신나고 즐겁게 일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눔과 베풂이라는 명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고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삶은 채워지지 않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직업이 되기 힘든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한 개인이 자신의 성공과 안위 그리고 생존이 아닌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찾아서 읽은 독자의 마음 역시 경쟁에서 나눔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외에도 홀로 깨우쳤지만 더불어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지누 스님의 ‘마음 탓이다’(시공사), 인생의 교사 크리슈나무르티가 전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인 ‘생활의 기술’(황금나침반), 매 순간 행복하고 매 순간 후회 없이 살라는 정목 스님의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랜덤하우스중앙) 등 마음 다스리기를 화두로 삼은 책이 여럿 출간됐다. 이 책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만족에 갇히지 말고 자기수양을 통해 나눔과 베풂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꿀 것을 권한다. 친절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나눔과 베풂은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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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섭 <orange@ilgan.co.kr>  일간스포츠

  일본 경제학자, 리더십 관련 책 선물
  한국서도 출판사·신문사 연일 인터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세계 4강을 이룩한 김인식 한화 감독(그림)의 인기는 여전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30일 마산 롯데전에 앞서 모 경제신문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을 경영과 관련시켜 와이드 인터뷰를 실시했다. 김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고 "일본에서 웬 사람이 리더십 관련 책을 보내왔다"며 웃었다.

# 인터뷰에 감명받았대, 허허.

김 감독은 "며칠 전에 일본에서 소포가 왔는데 무슨 경영 리더십을 담은 책과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소개했다. 보낸 이는 에가와 토시오(71).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경제연구소 소장쯤 되는 사람이 자신이 쓴 리더십 책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에가와 토시오는 경제학자로 1998년 에가와 국제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가 쓴 <미래를 경영하는 리더십> 등 이 국내에 소개돼 있다) 더불어 야구 관련 책도 3권 보내왔다. 김 감독은 "그런데 책을 보낸 이유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지고난 뒤 내 인터뷰 내용을 듣고 감명받아서 선물을 보냈다"고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WBC 기간 내내 김 감독은 뛰어난 성적을 더욱 빛내는 인터뷰 발언을 했고 준결승 후에는 외신 기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책은 운영팀으로 보내져 번역 중이다.

# 전화 한 통화는 해줘야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국내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을 쓴 책으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내용 중 절반만 맞다"고 웃었다. 책이 자신을 너무 추켜세운 것 같아 부담스러운 눈치. 한편 김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많이 팔려도 감독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김 감독은 "나는 (책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는 건가"라고 묻더니 "그래도 출판사에서 전화 한 통화쯤은 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반 진반 섭섭함을 토로했다.

# 신비주의를 파헤친대.

한편 또 다른 출판사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과 관련해 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무슨 리더십이 있냐고 했더니 신비주의 파헤친다며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쇄도하는 인터뷰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피곤하지만 그래도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출판사에서 파헤칠 감독의 신비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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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06-03-28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룬 책 <황우석의 나라>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이성주(전 <동아일보> 의학담당 기자)씨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을 통해 책의 집필 경위와 최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책은 출간되는 순간 독자의 몫이라는 출판계의 금언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집필 의도와 360도 가까운 방향으로 오독(誤讀)이 진행될 때 저자가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필자의 졸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논란을 던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출판 무렵부터 딸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줄 만큼 이 책 출간의 여파에 대해 걱정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졸저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고 주장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집필 의도를 밝혀야만 할 듯하다.

나는 2005년 여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올 때 미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 교수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든 대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후 인사가 나기 전까지 틈만 나면 관련 전문가를 만나며 이에 대해 준비했지만 신문사 사정으로 내 전공 분야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관심을 뗄 수가 없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황 교수 신드롬이 아무런 반대없이 진행되면 수많은 환자가 고통 속에서 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후 다행히 올곧은 언론인과 과학자들 덕분에 황 교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는 한 사람의 기록자로서 이 사태를 정리하고픈 욕심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의학 분야를 맡고 얼마 동안은 특종이 가장 큰 보람이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어렴풋이 뜨이고 난 뒤에 내가 쓴 기사가 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거나 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때를 알게 되는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정보와 기록이 그득한 황우석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황우석 사태가 대한민국의 언론, 과학, 정치 및 사회의 그림자가 투영된 사건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반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책을 집필했다.

2005년 11월 필자와 출판사는 황 교수에 대한 책을 내기로 처음 합의했고, 책의 기획 단계에서 비난, 고발보다는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 성찰'에 주안점을 두기로 뜻을 모았다. 여러 분야의 취재원으로부터 황 교수의 학창시절이나 언론, 정치계와 관련한 제보를 숱하게 받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성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무시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황 교수를 비롯한 과학계·언론계·정치계 중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문제도 아니며,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봤다. 여기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포함돼 있고 물론 나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를 몇 년 동안 가위눌리게 하고 부끄럽게 한, 기자 시절 내가 저지른 여러 잘못을 고백했다.

민주주의가 없던 신드롬, 언론과 정치도 닮은꼴

필자는 이번 사건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왔다는 다소 생뚱맞은 진단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반증과 토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정부, 언론, 과학계 모두에서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학은 사람이 언제나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가설의 제기→반증 또는 확증→오류의 수정'이라는 절차에 따라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애국심, 원천기술, 국가기밀 유출 등을 도구로 자신의 연구영역을 비(非)과학으로 만들어버렸고 그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과학은 어떤 곳을 정복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런 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과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황 교수의 업적이 허점투성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황 교수 사태를 진단할 때 언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과 마찬가지로 황 교수 사태에서도 언론이 줄기세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기존의 선악·피아의 개념으로 언론을 보는 대신, 신문사의 편집국 간부와 기자 대부분이 좋은 보도를 위해 사생활을 반납하는데 왜 보도는 독자의 수준에 못 미치고 사회의 조화와 발전에 훼방꾼이 되곤 하는가에서 논의를 출발했다.

나는 언론도 유한한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므로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반증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사를 제안해서 채택돼 지면이나 화면으로 나가는 언론의 과정이 과학의 반증 시스템과 닮았지만 황 교수 사태는 이런 언론의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제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내 주장에 많은 동료들이 공감했다.

필자는 한국 언론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결국 언론 조직부터 대화와 토론이 부족한 비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엉터리 기사를 양산했다고, 그러므로 시스템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과학과 언론뿐 아니라 정부에도 책임이 크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황 교수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나는 정부의 의사소통구조가 비판을 거부하는 한, 정부가 관변과학을 포기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한 과학'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과학'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똑같은 잘못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진행형인 황우석 사태, 통과의례로 승화시켜야

그러나 책 출간 이후 논의는 엉뚱하게도 책에 인용된 특정 언론과 개별 기자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으며 필자가 책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작은 황우석 사태가 필자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고 필자는 토론과 성찰의 소재가 아니라 전쟁의 무기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따지자면 깜냥을 넘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책을 쓴 저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자기 식으로만 읽는 오독의 주체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책에서 누누이 밝혔고 언론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듯, 이 책은 특정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정색을 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로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황 교수 사태의 피아에서 벗어나서, 마치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뼈아프게 반성하며 이성적 사회로 승화했듯, 이번 사태에서도 사건의 실마리 하나를 놓치지 말고 반성과 토론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통과의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황우석 사건이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듯, 이 사건에 대한 토론과 반성도 진행형이라고 믿고 싶다. 나의 졸저가 언론학·과학철학·사회학·역사학·정신의학·심리학·정치학·경제학 등에서 다양한 후속 연구를 촉발하기를 빈다. 나의 책 역시 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졸저에서 다음 질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끝을 맺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가 영웅 없이도 충족감을 갖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널리즘을 회복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의 집단히스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학 발전과 경제 발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과학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국사 또는 과학 교과서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다수의 목소리 속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방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인격과 이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골라야 할까. 애국이 우선인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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