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6-03-28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룬 책 <황우석의 나라>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이성주(전 <동아일보> 의학담당 기자)씨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을 통해 책의 집필 경위와 최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책은 출간되는 순간 독자의 몫이라는 출판계의 금언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집필 의도와 360도 가까운 방향으로 오독(誤讀)이 진행될 때 저자가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필자의 졸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논란을 던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출판 무렵부터 딸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줄 만큼 이 책 출간의 여파에 대해 걱정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졸저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고 주장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집필 의도를 밝혀야만 할 듯하다.

나는 2005년 여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올 때 미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 교수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든 대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후 인사가 나기 전까지 틈만 나면 관련 전문가를 만나며 이에 대해 준비했지만 신문사 사정으로 내 전공 분야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관심을 뗄 수가 없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황 교수 신드롬이 아무런 반대없이 진행되면 수많은 환자가 고통 속에서 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후 다행히 올곧은 언론인과 과학자들 덕분에 황 교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는 한 사람의 기록자로서 이 사태를 정리하고픈 욕심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의학 분야를 맡고 얼마 동안은 특종이 가장 큰 보람이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어렴풋이 뜨이고 난 뒤에 내가 쓴 기사가 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거나 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때를 알게 되는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정보와 기록이 그득한 황우석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황우석 사태가 대한민국의 언론, 과학, 정치 및 사회의 그림자가 투영된 사건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반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책을 집필했다.

2005년 11월 필자와 출판사는 황 교수에 대한 책을 내기로 처음 합의했고, 책의 기획 단계에서 비난, 고발보다는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 성찰'에 주안점을 두기로 뜻을 모았다. 여러 분야의 취재원으로부터 황 교수의 학창시절이나 언론, 정치계와 관련한 제보를 숱하게 받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성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무시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황 교수를 비롯한 과학계·언론계·정치계 중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문제도 아니며,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봤다. 여기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포함돼 있고 물론 나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를 몇 년 동안 가위눌리게 하고 부끄럽게 한, 기자 시절 내가 저지른 여러 잘못을 고백했다.

민주주의가 없던 신드롬, 언론과 정치도 닮은꼴

필자는 이번 사건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왔다는 다소 생뚱맞은 진단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반증과 토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정부, 언론, 과학계 모두에서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학은 사람이 언제나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가설의 제기→반증 또는 확증→오류의 수정'이라는 절차에 따라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애국심, 원천기술, 국가기밀 유출 등을 도구로 자신의 연구영역을 비(非)과학으로 만들어버렸고 그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과학은 어떤 곳을 정복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런 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과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황 교수의 업적이 허점투성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황 교수 사태를 진단할 때 언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과 마찬가지로 황 교수 사태에서도 언론이 줄기세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기존의 선악·피아의 개념으로 언론을 보는 대신, 신문사의 편집국 간부와 기자 대부분이 좋은 보도를 위해 사생활을 반납하는데 왜 보도는 독자의 수준에 못 미치고 사회의 조화와 발전에 훼방꾼이 되곤 하는가에서 논의를 출발했다.

나는 언론도 유한한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므로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반증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사를 제안해서 채택돼 지면이나 화면으로 나가는 언론의 과정이 과학의 반증 시스템과 닮았지만 황 교수 사태는 이런 언론의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제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내 주장에 많은 동료들이 공감했다.

필자는 한국 언론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결국 언론 조직부터 대화와 토론이 부족한 비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엉터리 기사를 양산했다고, 그러므로 시스템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과학과 언론뿐 아니라 정부에도 책임이 크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황 교수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나는 정부의 의사소통구조가 비판을 거부하는 한, 정부가 관변과학을 포기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한 과학'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과학'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똑같은 잘못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진행형인 황우석 사태, 통과의례로 승화시켜야

그러나 책 출간 이후 논의는 엉뚱하게도 책에 인용된 특정 언론과 개별 기자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으며 필자가 책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작은 황우석 사태가 필자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고 필자는 토론과 성찰의 소재가 아니라 전쟁의 무기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따지자면 깜냥을 넘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책을 쓴 저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자기 식으로만 읽는 오독의 주체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책에서 누누이 밝혔고 언론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듯, 이 책은 특정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정색을 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로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황 교수 사태의 피아에서 벗어나서, 마치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뼈아프게 반성하며 이성적 사회로 승화했듯, 이번 사태에서도 사건의 실마리 하나를 놓치지 말고 반성과 토론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통과의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황우석 사건이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듯, 이 사건에 대한 토론과 반성도 진행형이라고 믿고 싶다. 나의 졸저가 언론학·과학철학·사회학·역사학·정신의학·심리학·정치학·경제학 등에서 다양한 후속 연구를 촉발하기를 빈다. 나의 책 역시 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졸저에서 다음 질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끝을 맺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가 영웅 없이도 충족감을 갖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널리즘을 회복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의 집단히스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학 발전과 경제 발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과학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국사 또는 과학 교과서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다수의 목소리 속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방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인격과 이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골라야 할까. 애국이 우선인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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