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헤럴드경제 2006-01-11

노현정(27) 아나운서의 인기는 웬만한 스타 못지않다. 그녀 인기의 상당 부분은 아나운서이면서 오락 프로그램들을 맡아 보여주는 모습들에서 나온다.

노현정은 `여걸식스` 코너에 출연하다 아나운서가 지나치게 연예인화된다는 비난을 받아 `하차 해프닝`을 벌였던 강수정과는 대조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오히려 탈장르 시대 아나운서의 지속 가능한 변신이 될 수 있다는 모델 케이스로 주목받았다.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하면서도 그들과는 구분된 역할과 정체성으로 `아나운서성(性)`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 골든벨`과 `상상플러스` `올드&뉴` 코너는 아나운서로서의 노현정의 특색을 잘 살려낸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드&뉴` 코너에서의 역할은 우리말의 쓰임새를 바로잡아줘야 하는 아나운서로서는 적임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코너들은 노현정의 아나운서로서의 권력(?)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최근의 `스타 골든벨` 암산대결 코너는 노현정 구애 이벤트로 흘러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노현정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노현정은 아나운서로서의 정체성만 지키면 된다.

아나운서는 공인이다. 그래서 인터뷰도 잘 안 한다. 거만해서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자신의 인터뷰가 흥미 위주의 상업적 전략에 이용당할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현정이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은 아나운서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녀가 직접 쓴 실제 일기와 학창시절의 추억,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20대 시절의 노현정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지만 돌부터 대학 시절까지 미공개 사진과 가족 사진 등 사진이 많아 화보집 같은 인상도 준다.

아나운서로서의 경험담이나 가이드 북, 혹은 인생의 고민이 진지하게 배어 있는 책이 아니라 흥미 위주로 제작된 것 같다는 얘기다. 아나운서가 이런 책을 계속 발간한다면 일본처럼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구분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책을 내는 건 개인적 자유지만 아나운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건 대중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노현정 주위에는 노현정의 인기에 편승해서 상업적인 전략을 짜려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침 뉴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노현정이 거절의 묘를 발휘하지 못하고 상업적인 전략에 넘어간다면 자신은 물론 아나운서 이미지까지 흐릴 수 있다.

한국 아나운서가 20대 여성 위주로 소비된다는 자체가 직업으로서의 전문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나이 많은 남자 앵커와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배치 구도는 그래서 불온하다. 혹여 노현정의 이번 책이 대중의 그런 편견을 강화시킬 수도 있음을 노현정은 인식했으면 한다.

아나운서라면 모름지기 자기 분야의 영향력과 신뢰도로 `영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그게 `인기`의 바탕이 돼야 한다. 예컨대 자신의 분야를 열심히 개척하는 MBC 손석희 아나운서처럼 말이다.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인기를 추구하다가는 어느 순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노현정 아나운서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쁠지라도 대중이 왜 자신을 좋아하고 있고, 또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고민해보는 시간도 조금은 갖기 바란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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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3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