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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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몇년 전부터 읽을 책 리스트에 등장했던 이 책, 드디어 읽게 됐다. (역시 반값의 위력은 세다. ㅋ)

'드디어'에 걸맞는 첫 페이지 - 작가의 사인과 소갯말부터 설렌다.

 

"4세대 독일계 미국인.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의 안락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이 흠)

 아주 오래 전

 미국 보명대의 낙오병으로서, 전쟁포로로서,

 엘베강변의 피렌체라는

 독일 드레스덴의 대공습 현장에서 살아 남아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비행접시를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어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이다.

 평화."

 

이 책 <제5도살장>은 드레스덴 공습에서 살아남은 작가의 이야기이다.

드레스덴 소이탄 폭격, 익히 잘 알고 있는 히로시마보다 더 심하며,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이었댄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http://blog.daum.net/robustus/16887617)를 클릭하면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나오며 가장 인상적이고 중독성 있는 문구, '그렇게 가는거지'

 

"물론, 롯의 아내는 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집이 있는 곳을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았고,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마음에 든다. 얼마나 인간적인 행동인가.

 그리하여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렇게 가는거지.

 인간은 뒤 돌아보면 안된다. 나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가는거다. 아버지가 사냥 갔다가 친구 총에 맞아 숨졌다. '그렇게 가는거지'

빌리를 버리고 간 척후병이 총에 맞아 새하얀 눈을 딸기 빙과색으로 물을일 때도, '그렇게 가는거지'

그렇게, 가는거다. 대단하고 거창한 이유가 있을것만 같지만 결론은 간거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으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생각났다.

두 책 모두 전쟁을 겪은 자전적 이야기인 점, 쉴 새 없는 시간과 공간의 넘나듬 혹은 상상과 경계

가 불분명한 현실은 그만큼 헤어나오기 힘든 전쟁의 상처를 역설한다는 점은 비슷했지만, 이 소설

이 주는 메세지는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보다 한층 더 명확하다.

 

빌리 필그림. 도무지 군인 티가 나지 않고 심지어 지저분한 '홍학'같은 이 소설 <제5도살장>의

주인공이다. 빌리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비행하며, 시작도 중간도 끝도 서스펜스도 교훈도 원인도

결과도 없는 책을 가진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 당한다.

전쟁 혹은 인생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맞서본 자라면, 누구든 했을법한 질문을 한다.

 

"왜 하필 나지요?"

"그것 참 지구인다운 질문이군. 필그림선생. 왜 하필 당신이냐?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왜 하필

 우리지? 왜 하필 어떤 것이지? 그 이유는 단지 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오. 호박에 갇힌 벌레

 들을 본 적이 있소?"

"있습니다."

"필그림 선생, 우리는 지금 이순간이라는 호박 속에 갇혀 있는 것이오. 왜라는 건 없소."

 

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랜다. '왜'라는 질문은 필요없다.

트랄파마도어인은 또 말한다.

"나는 우주의 유인 행성 31곳에 가 보았고 1백곳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했소. 자유의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더군."

 

끔찍한 전쟁을 겪은 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남겨진 상흔.

인생, 이유도 없고 자유의지도 필요 없는 것. 멸망을 막을 방법은 없고 그저 그렇게 갈 뿐인,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끔찍한 시간은 외면한 채 좋은 시간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가는거지....

 

자꾸 이 말을 되뇌며, 작가의 해학과 시크한 문체 속에 반전에 대한 공감을 키워간다.

그렇다해도 전쟁이란.

 

" '반전책을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뭐라는지 아시오?'

  '아니오,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反氷河) 책을 쓰지 그래요? 그럽니다.'

  물론, 그의 말은 전쟁은 항상 있는 거고, 빙하만큼이나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전쟁이 빙하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밀려오지 않더라도, 그 흔해빠진 죽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빙하처럼 밀려오고 여전한 흔해빠진 죽음.

그렇게 가는거라해도, 우리는 그 속에서 그렇게 보낼 수 없음을 발견한다.

 

읽은 날  2012. 3.1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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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대중의 사회 - 대중 여론으로 읽는 한국 정치
김헌태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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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한 대중의 사회, 김헌태>

 

어젯밤 울화통 터지는 줄 알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자칫하면 울 수 있었다.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졌다.

당분간 블로그 글도 올리지 말아야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들, 미친 거 아냐, 뇌가 없는 거 아냐!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말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열 받는다.

강원, 충청 사람들과 얘기도 하지 말아야지. (음. 난 강원도 출신인데)

국민들 수준만큼 정치가 발전한다는데, 결국 이 수준밖에 안되는 거군, 안되는 거였어.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지 바보야.

온갖 좌절과 푸념, 원망.

어쩜 이럴 수 있나!

 

강원, 충청의 민심. '박근혜'다.

아직 대선도 아닌데 '선거의 여왕' 박근혜 힘, 생각보다 너무 셌다.

왜 '박근혜'일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그녀를 넘을 수 없다.

 

"대중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으로 인한 혜택을

 대중들이 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 책, <분노한 대중의 사회>에서 김헌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권력의 힘으로 행한 일들 중 하나는 부자들의 탄압이었다. 부도덕하게

모은 부를 '부정 축재'라 부르며 협박하거나 아예 빼앗아 공기업으로 만들거나 국유화하기도

했고, 땅값이 올라간다 싶으면 구청 공무원과 복부인을 처벌해 집값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일탈을 혼내주는 모습은 군사정권의 민심을 수습하는 사정작업이기도

했다.  많은 서민들은 내 자식만 데모하지 않고 독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정치인들 등 주장에

귀 막고만 살면 일반 서민으로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여겼다.

 

먹고 살기만 하면 다인가? 배 부른 돼지보다 배 고픈 소크라테스?

난 먹고 살기만 하면 만사 OK 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대중은 확실한

메세지를 보여줬다.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짧은 과거를 통해 성장의 꿈도 자기희생의 의지도 사라진 우리(대중)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스스로 생존' 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돌반지, 금가락지 등 내 집안의 금붙이를 박박 긁어내 '나라를 살리겠다' 나선 대중이

받은 결과가 무엇인가?

세계가 부러워화는 민주화 혁명을 이뤄냈건만, 내 손에 남은 건 무엇인가?

나라가 성장하면 나도 잘 살 수 있겠지 하며 도덕성 보지 않고 뽑은 MB는 어떤가?

좌파, 우파, 기업, 서민 모두 필요없다. 내 밥그릇을 위협하면 모두 적이다.

왜 나보고만 고통을 감수하라 하나.

민간인 불법사찰, 표절, 디도스 온갖 악재가 나랑 무슨 상관이람.

야당이 죽든, 여당이 쪼개지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지금 당장, 내가 죽겠는데!

 

대중을 위한 정치가 없다는 걸 우리는 진작 알아버렸다.

내가 먹고 살 수 있어야 정의도 보이고 이념도 보이고 복지도 보이고 다 보인다.

정치적 위기가 아닌, 사회경제적 위기다.

 

 MB심판, 위기론, 대중은 매번 논리로 설득당하지 않는다.

논리를 넘어선 공감과 희망이 필요하다.

MB가 잘해서 새누리당을 뽑아준 것이 아니다. MB가 잘못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심판과 위기를 넘어 대중에게 크게 각인되는 '희망'을 박근혜한테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시절,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극히 소수인

재벌조차 권력자 앞에서는 약자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개인적 탐욕도

크지 않을 것 같은 그녀, 과거 이회창과 대선다툼할 때 보여준 결단력 등.

대중이 보고 싶은 건 논리를 넘어선 희망이다.

 

지금 진보에게 절대 부족한 인식, 대중은 '누가 옳은지보다 누가 우리를 더 잘 살게 해줄 것인가'

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누가 사심없이 우리를 더 잘 살게 해 줄 것인가.

진보고 보수고 그닥 필요없다.

 

"박근혜의 과거 이미지로부터 미래의 안정을 느껴내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

할 뿐이야.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나날이 견고해져가지. 진보 진영에서 그건 이미지일 뿐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돼."

김어준, <닥치고 정치>

 

박근혜를 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모든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기대, 희망보다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읽은 날 2010. 3. 2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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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사 협회 작은걸음 큰걸음 9
조향미 지음, 서영경 그림 / 함께자람(교학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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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사 협회, 조향미>

 

"엄마, 이 책 좀 읽어봐, 재미있어~"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책, 사 주기만 하고 같이 읽지 못하고 있는데 큰 애가 재미있다며 건넨

책이다. 작은 애도 이 책 <오총사 협회>를 'TV로 보는 원작 동화'에서 봤댄다.

아이가 건넨 몇 안 되는 책,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일주일 용돈 3,000원 정도를 받는 초3,4학년 또래 아이들.

어느 날 TV에서 '임금투쟁'하는 걸 보고 자신들도 '오총사 협회'를 만들어 부모에게 요구를

한다.

 

오총사 협회 요구 사항

1. 현재 용돈의 50%를 인상해 달라 (지금 용돈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2. 엄마 아빠는 텔레비전 보면서 우리에게 공부하라고 하지마라 (생선 앞에다 두고 고양이더러

     먹기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 하루에 한 시간씩 자유 시간을 달라 (엄마만 앞치마 벗어놓고 쉬고 싶은 거 아니다. 우리도

     가방 던져 놓고 쉬고 싶고, 놀고 싶다)

4. 우리 스스로 학원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아니면 엄마가 학원을 다니든가)

5. 일요일은 쉬게 해 달라 (우리는 365일 돌아가는 공부 기계가 아니다)

 

요구사항과 함께 5명의 아이들은 텐트, 코펠 등을 챙겨 아파트 어디선가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가출생활을 이거가다 고작 하루 반만에 내린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가를 한다.

귀가를 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서슬퍼런 엄마의 얼굴과 20가지나 되는 '엄마협회'

요구사항이었다!

 

그야말로 허걱~!이다.

아이들은 가출하면서 5가지밖에 요구를 안했는데, 엄마는 20가지랜다. 눈에 띄는 요구사항은

'상쾌한 기분으로 7시까지 독서하기, 그날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 두 가지씩 얘기해 주기,

 여자친구 사귀지 않기, 좋아하는 연예인만큼 부모님을 사랑하기' 인데, 마지막 요구사항이

압권이다.

'오총사 협회 해산하기!!!'

가출하고 협회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요구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협상 상대방은 콧방귀도 안

뀐다. 가출까지 했는데 부모는 걱정도 안 하는 눈치다. 10여살 아이들, 거창하게 칼을 뽑아

들었으나 결국. (결국이 이 책의 결말은 아니다)

 

요즘 동화책, 초등학생 책 재미있다. 다양하다.

아이가 독서를 좋아한다면, 다양하고 많은 간접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는 게 눈으로 보인다.

독서의 장점을 알기에 우리 아이가 독서를 좋아했으면, 즐겼으면 모든 부모가 바란다.

그 바램을 가진 부모라면, 부모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는 책 한권 읽지 않으면서 제 아이 책만은 종류, 가격 불문하지 않고 사준다.

난 그들이 욕심을 내는거라 생각, 한다. 욕심은 아이와 부모 자신에게 좋지 않다.

 

독서를 생활화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라해도 아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한때, 책에 나와 있는 '책 좋아하는 아이'의 이론을 충실히 하건만, 기대만큼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었다. 집 여기저기 책이 널려있고, 엄마는 늘 책을 읽고, 어릴 땐

매일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책에 대한 대화도 하고.

그런데 왜 우리 아이는 기대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먹고 기대를 줄이면 어느 순간 책 읽는 아이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엄마는 또 바랜다.

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호기심과 도전심이 끊이지 않기를, 의무감이 아닌

진정한 기쁨을 맛보기를.

엄마는 욕심쟁이다.

 

"엄마, 선생님이 책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에 밑줄 그으래. 엄마처럼 하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

감사한 일이다.

 

큰 애가 밑줄 그은 문구다.

 

"아니나 다를까, 도끼눈을 한 엄마가 냉장고를 등진 채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잘 들어, 엄마가 이 돈 주기는 하는데, 그냥은 안 돼."

 

"눈치 구단 엄마와 그 딸인 누나라도 돈 투입구를 위로 끄집어 올리지 않는 한 눈치채지 못할

 거다. 푸하하, 이것이 바로 완전 범죄라는 거다."

 

"통 뚜껑에는 낯익은 탤런트 아줌마의 얼굴과 함께 '똑앤똑 밀폐 용기'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특대형' 글씨가 꼬리처럼 붙어 있었다."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이다.

 

"'엄마, 돈 좀 줘, 응?'

 '못 줘'

 그러고는 엄마는 도마 위의 무를 칼로 쩍 쪼갰다. 한 번만 더 조르면 알지? 내게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는 나를 무시한 채 뽀얀 무에다 칼질을 다다다닥 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엄마의 마음을

 바꿔 놓기란 채쳐진 저 무 조각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것과 같을 거라는 걸."

 

"'내일 영어 학원 가는 날이지? 숙제는 다 해 놨어?'

 얼핏 들으면 그냥 묻는 말 같지만 그게 아니다. 명령하는 거다. '밥 먹고 영어 숙제 다 해 놔!'

 이런 명령. 목구멍을 넘어가던 밥이 식도 중간에서 꽉 막혔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먹을 때만이라도 공부 얘기 좀 안 하면 안 되나?"

 

역시 아이의 눈과 내 눈은 다르다.

큰 애가 밑줄 그은 '도끼눈을 한 엄마', '엄마가 이 돈 주기는 하는데 그냥은 안돼'

음. 아마도 이 문장에서 큰애는 자신의 엄마를 발견했나보다. ㅠㅠ

 

'이것이 바로 완전 범죄라는 거다.'

음. 아마도 사사건건 엄마에게 들켜버리는 (착한 아이들 ^^), 그래서 완전범죄를 늘 꿈꾸고

있나 보다.

 

간만에 읽은 아이들 책, 큰 애가 재미있다며 건네 준 이 책, 정말 재미있었다.

아이들 시선과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데 역시 책만한 건 없나보다.

 

"애들아, 책 읽고 재미있는 거 있음, 꼭 엄마한테 추천해 줘~~~"

 

읽은 날 2012. 4. 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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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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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올 3월부터 시작된 회사 독서통신.

책 읽고 글쓰기를 생활화하고 있다해도 회사에서 하는 독서통신에 살짝 거부감이 있다. 읽으라고

주는 책의 범위, 예상되고 남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서통신을 신청한 건 박경철의 책, <자기혁명>인 탓이다.

예전에 읽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의 좋았던 이미지와 언젠가 그의 주식투자책을 읽고

싶었기에, 내 돈 주고 사지 않을 성 싶은 이 책을 읽게 됐다.

 

박경철, 그, 너.무. 박학다식하다.

그에게 만 권인가 만오천 권인가 책이 있다쟎은가. 아는 것 너무 많고 책도 너무 많이 읽었다.

글은 논리정연하다. 그렇지만.

 

"필자 역시 나 자신과 무수한 약속을 했지만 그 가운데 실제로 처음에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실행한 적은 거의 없다."

 

이렇게 말하는 그, 내게 좌절이다. 그가 계획 이상 실행하지 못했다면, 그는 도대체 얼마나 높은

우리와 다른 계획을 갖고 있을까.

 

"소극적인 사람들은 나를 초월하기 위한 수단으로 머리를 깍고 산사에 들어가거나 니체처럼

 스스로를 고립시켜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다."

 

자신의 세계 - 철학이나 종교, 명상에 심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주의자가 되어 현실을 등지

기도 하는 것을 '패배주의에 물든 무력한 초월'이라 한다. 나를 초월하기 위한 수단이 꼭 사회

속 '나'여야만 하는 걸까. 그럼 석가모니도 패배주의에 물든 무력한 초월이라는 걸까.

나는 빈 라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는 과연 잘 알고 있을까? 각자의 초월성이 각자가 속한 사회적

한계를 넘어 사회와 창조적인 관계를 수립해야 하는 측면에서, 빈 라덴이 체 게바라에 비해 평가

를 적게 받는 이유라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의 주장대로 '우리는 늘 혁명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안주하는게 늘 회의적이기만 할까?

삶의 다양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이분화하는 그의 태도, 매우 불편했다.

 

"우리 사회는 집단우울증에 걸려 열정이 사라졌다."

 

열정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고 침묵과 사색, 교양, 문화로 호흡을 가다듬으라 한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라 한다. 사회 문제는 없고 개인의 문제와 해결만 요구한다. 계속

언급되는 '각자 잘 해라, 고민해라'...이 책 <자기혁명>의 한계다.

그런데, 이 책 제목 <자기혁명>이 아니던가.

음...나는 사회혁명이 아닌 자기혁명 책을 읽고 있는 거....군.

계속되는 내 불만을 알아챘을리는 없을텐데, 5장에 가니 다음의 내용이 있다.

 

"중세 이전 인류가 척박하게 살아가던 시기에는 노력에서 혹독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절반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차이가

 차별이 되고 기회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 차이는 어디까지나 절반의

 문제이며 나머지 절반의 기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 그래. 절반은 있지. 절반인 자신을 혁명하자는 얘기, 였지.

욱했던 마음, 다소 진정하며 이 책을 읽어낸 노고를 찾는다.

 

"어쨌건 애티튜드 혹은 태도는 전생애에 걸쳐 나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중요한

 것은 결국 말이 아닌 실천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목표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원에

 등록하고 교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 아침부터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번째 발걸음은 무언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책상정리, 작은 화분 하나 키우기, 자세 바로하기, 좋은 언어 골라 사용하기 같은 습관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너무 관념적인 것을 선호한다.

 관념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해오던 습관이 관성이 되고, 관성이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사실은 더 실효

 성 있는 실천의지인 것이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다. 이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의 따뜻함

이 느껴지지 않지만, 좋은 글 옳은 글 넘쳐난다. 그의 충고, 가령 말하고 싶은 때 딱 '2초'를 쉬라

는 얘기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한 해에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40퍼센트가 실업자다.

 중국에 대기중인 저임금 대졸자들이 첨단산업의 일자리마저 중국으로 빨아들일 테니 말이다.

 해법은? 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시장과 사회는 동행할 수 없는가?

 이렇게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하면서 시스템의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 당장의 스펙 쌓기

 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하다."

 

옳은 말, 과연 20대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까?

문제를 제기하고 시스템 개선을 이끌어 내는 거, 중요하다 그 일을 하느라 스펙 쌓기를 멈출 수

있을까? 청춘들에게 하는 그의 말, 이 또한 관념적이지 않은가.

 

음,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걸까.

스스로 안주한다 여기기에 이 책을 부정하며 자기위안, 변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문제보다 개인의 각성,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 책, 앞으로 독서통신을 계속 할지 고민스럽지

만, 무릇 책에는 작은 단점과 많은 장점이 있는 법.

장점을 취하는 건 독자의 몫이기에, 그가 제시한 독서법 중 하나인 '모르는 장르,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한 노력' 으로, 오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주문했다.

 

읽은 날 2012. 3.2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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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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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 이후, 스티븐 제이 굴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유난히 자주 언급된 '다윈', 궁금증이 생겼다.

 

"푹스의 <풍속의 역사>는 '인류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나는 이 책을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와 함께 내가 읽은 번역서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조지 가모브>는 또 하나의 빼어난 과학자 자서전이다. 여러모로 찰스 다윈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에 필적하다."

 

찰스 다윈, 진화론 아닌가.

고교 생물시간에 봤을법한, 그 후로 보지 않을 법한 다윈이 왜 자꾸 언급될까,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됐는데, 간단 소감은 그저 놀라움이다. '진화론'  세 글자에 담긴 무궁무진한 숨은 뜻과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전율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화는 진화(進化)이다. 무언가 좋게 개선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윈의 시대 1800년대에도 그러했단다. 1800년대 일상어로서의 진화는 진보의 개념과

확고하게 묶여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러하듯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고 있으며,

인간 진화를 단순한 변화가 아닌 키의 증가 또는 그 밖의 독단적인 척도로 측정한 개선과 향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여, 초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다윈조차 '진화'라 부르지 않았는데, 다윈이 획기적인 이론을

만들어 놓고도 21년!이나 공개하기를 두려워한 것은,

다윈 스스로 자기 이론 속에 내포된 철학적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기에 21년이나 이론을

책상 서랍에 썩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철학적 유물론 - 인간의 정신이 만약 인간 두뇌의 산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하느님이란

(1800년대임을 감안하자!) 두뇌의 환상이 빚어 낸 또 하나이 환상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다윈 스스로 분명히 인지했을 거라 추정되는 이론의 철학적인 함축성, 그는 공개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개선이 아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개체의 자연 선택의 적응을 메커

니즘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결단코, 개선이 아님을 다윈은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 이다. 굴드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등장할 만큼

대중과 가까웠던 과학자였다. 그가 1974~77년까지 <자연사>에 게재한 연재물을 모은 이 책을

통해 각종 자연과학적 지식과 이해를 넓힐 수 있는데, '과학'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과학이란 객관적인 정보를 냉혹하게 추적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창의적인 인간 활동이며,

과학계의 천재들은 정보 처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술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론의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발견에서 유도되는 결과가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창조적인 상상력의 귀결이다.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실의 확신에 의존해서 과거사를

심판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론의 변화가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이것이 바로 1960~70년대 미국에서

넘쳐났던 '생물학적 결정론' 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책임을 이른바 우리의 육식성 조상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살인자 유인원'의 성향이 아닐까 생각, 흑인과 백인 수많은

인종 차별주의...

하나의 사상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결과를 빚고 있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든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읽은 '다윈 정신'.

사회적.정치적으로 뿌리 깊은 시대의 사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통찰하는 것,

어느 한 시점에서 유용했던 구조가 이후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항상 유용할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전적응'의 원리 - 어떤 구조물이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작고 원시적이며 나무에 살고 있었던 포유류 집단 내부로부터 진화된 이유가 무엇일까?'

굴드의 이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보자.

 

"'아직도 멀었다'는 자연사학자가 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적절한 선언이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 무릎을 끓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점진적

이거나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연의 다양성을 만끽할

것이지만, 확실성이라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괴물은 정치가와 목사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쉽게 만만히 읽혀지는 책은 아니지만,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책의 진가가 가슴과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읽은 날  2011. 12. 2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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