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한 대중의 사회, 김헌태>
어젯밤 울화통 터지는 줄 알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자칫하면 울 수 있었다.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졌다.
당분간 블로그 글도 올리지 말아야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들, 미친 거 아냐, 뇌가 없는 거 아냐!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말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열 받는다.
강원, 충청 사람들과 얘기도 하지 말아야지. (음. 난 강원도 출신인데)
국민들 수준만큼 정치가 발전한다는데, 결국 이 수준밖에 안되는 거군, 안되는 거였어.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지 바보야.
온갖 좌절과 푸념, 원망.
어쩜 이럴 수 있나!
강원, 충청의 민심. '박근혜'다.
아직 대선도 아닌데 '선거의 여왕' 박근혜 힘, 생각보다 너무 셌다.
왜 '박근혜'일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그녀를 넘을 수 없다.
"대중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으로 인한 혜택을
대중들이 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 책, <분노한 대중의 사회>에서 김헌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권력의 힘으로 행한 일들 중 하나는 부자들의 탄압이었다. 부도덕하게
모은 부를 '부정 축재'라 부르며 협박하거나 아예 빼앗아 공기업으로 만들거나 국유화하기도
했고, 땅값이 올라간다 싶으면 구청 공무원과 복부인을 처벌해 집값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일탈을 혼내주는 모습은 군사정권의 민심을 수습하는 사정작업이기도
했다. 많은 서민들은 내 자식만 데모하지 않고 독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정치인들 등 주장에
귀 막고만 살면 일반 서민으로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여겼다.
먹고 살기만 하면 다인가? 배 부른 돼지보다 배 고픈 소크라테스?
난 먹고 살기만 하면 만사 OK 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대중은 확실한
메세지를 보여줬다.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짧은 과거를 통해 성장의 꿈도 자기희생의 의지도 사라진 우리(대중)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스스로 생존' 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돌반지, 금가락지 등 내 집안의 금붙이를 박박 긁어내 '나라를 살리겠다' 나선 대중이
받은 결과가 무엇인가?
세계가 부러워화는 민주화 혁명을 이뤄냈건만, 내 손에 남은 건 무엇인가?
나라가 성장하면 나도 잘 살 수 있겠지 하며 도덕성 보지 않고 뽑은 MB는 어떤가?
좌파, 우파, 기업, 서민 모두 필요없다. 내 밥그릇을 위협하면 모두 적이다.
왜 나보고만 고통을 감수하라 하나.
민간인 불법사찰, 표절, 디도스 온갖 악재가 나랑 무슨 상관이람.
야당이 죽든, 여당이 쪼개지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지금 당장, 내가 죽겠는데!
대중을 위한 정치가 없다는 걸 우리는 진작 알아버렸다.
내가 먹고 살 수 있어야 정의도 보이고 이념도 보이고 복지도 보이고 다 보인다.
정치적 위기가 아닌, 사회경제적 위기다.
MB심판, 위기론, 대중은 매번 논리로 설득당하지 않는다.
논리를 넘어선 공감과 희망이 필요하다.
MB가 잘해서 새누리당을 뽑아준 것이 아니다. MB가 잘못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심판과 위기를 넘어 대중에게 크게 각인되는 '희망'을 박근혜한테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시절,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극히 소수인
재벌조차 권력자 앞에서는 약자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개인적 탐욕도
크지 않을 것 같은 그녀, 과거 이회창과 대선다툼할 때 보여준 결단력 등.
대중이 보고 싶은 건 논리를 넘어선 희망이다.
지금 진보에게 절대 부족한 인식, 대중은 '누가 옳은지보다 누가 우리를 더 잘 살게 해줄 것인가'
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누가 사심없이 우리를 더 잘 살게 해 줄 것인가.
진보고 보수고 그닥 필요없다.
"박근혜의 과거 이미지로부터 미래의 안정을 느껴내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
할 뿐이야.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나날이 견고해져가지. 진보 진영에서 그건 이미지일 뿐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돼."
김어준, <닥치고 정치>
박근혜를 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모든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기대, 희망보다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읽은 날 2010. 3. 28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